반기문, 안동서 '제왕(주목)나무' 심고 언론에는 “확대해석 하지마”?
1년 만의 고국 방문에서 사실상 대선 출마를 시사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주말(28~29일) 일정 내내 자신의 '대선 출마론'에 대해 함구했다. 가는 곳마다 "출마 의향이 있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웃어넘기거나 "말씀드릴 상황이 아니다"고만 했다. 하지만 서울과 일산(경기도 고양시), 경북 안동과 경주를 돌며 보여준 동선(動線) 자체가 대선을 향한 그의 뜻을 보여줬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반 총장은 28일 오전 숙소인 서울의 한 호텔 앞에 기다리던 취재진을 따돌려가며 김종필 전 국무총리 자택을 찾았다. 30여분간 배석자 없이 대화가 오갔고, 대화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충청 출신인 김 전 총리를 찾아갔다는 사실만으로 '충청 대망론'이 화제가 됐다.
반 총장은 "대(大)원로이자 대선배를 인사차 방문한 것이고, (김 전 총리로부터) 마지막까지 (유엔 사무총장) 임무를 잘 마치고 들어오라는 격려를 받았다"고 했고, 김 전 총리는 "우린 비밀 얘기만 했다"고 했다. 반 총장은 김 전 총리와 만난 뒤 기자들로부터 '충청 대망론'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내년에 와서 계속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다음 날(29일) 오후엔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지역 정치인들을 만났다. 직전 일정인 국제로타리 세계대회 기조연설을 소화한 뒤 경기도 일산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인 경북 경주의 '유엔 NGO 콘퍼런스'는 30일에 열린다. 그런데도 하루 먼저 헬리콥터까지 타며 안동을 찾은 것은 "경북 지역을 의식한 대선 행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반 총장은 이날 하회마을에 있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고택 충효당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권영세 안동시장, 장대진 경북도의회 의장 등과 오찬도 했다. 반 총장은 "서애 선생은 조선 중기 재상을 하시면서 아주 투철한 조국 사랑 마음을 가지시고, 어려운 국난을 헤쳐오신 분"이라며 "서애 선생님의 숨결, 손길, 정신이 깃든 하회마을을 방문해 그분의 나라 사랑 정신, 투철한 공직자 정신을 기리면서 다 함께 나라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했다"고 했다.
반 총장은 '서애 선생에 대한 언급이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질문에는 "허, 허"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반 총장은 한글 방명록 외에 영어로 방명록을 따로 썼다. 거기에는 '충효당은 시간을 초월한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으로, 나에게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일깨워주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시대를 위한 유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해 준다'고 남겼다.
하회마을에서는 '제왕 나무'로 불리는 주목(朱木)을 기념식수하는 등 2시간 일정을 마친 뒤엔 예정에 없었던 경북도청 신청사 방문 시간을 갖고, 도청 입구에 '적송(赤松)'을 심었다. 도청 관계자는 "꿋꿋한 절개와 의지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어 경주로 이동해 유엔 NGO 콘퍼런스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이곳에서는 젊은이들을 향한 메시지를 던졌다. 만찬사를 통해 "당신(청년)들은 미래의 리더이고, 이미 리더"라며 "당신들이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왔고, 저 역시 그 수혜자 중의 한 명"이라고도 했다. 고학을 했던 반 총장은 영어 교재를 통째로 외워가면서 학창 시절 내리 수석을 했다.
만찬장 테이블에서 반 총장은 주변에 경상북도 국회의원 수와 도의원 수, 정당 분포에 대해 물어봤다고 참석자가 전했다. 여권의 심장부의 정치 지형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이날 반 총장은 일정 내내 시민들의 환호와 '사인 공세'를 받았다. 일부 시민은 유엔기를 흔들며 "파이팅"을 외쳤고, 서로 악수를 청하는 과정에서 혼잡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 총장은 의전(儀典)에 없던 시민들과의 만남에 일일이 응대했고, 기념 촬영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방한 이후 자신의 행보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과 관련해 "국내에서 행동에 대해 과대해석하거나 추측하거나 이런 것은 좀 삼가, 자제해 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30일 경주화백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NGO(비정부기구) 콘퍼런스'에 참석, 기조연설을 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관훈클럽 비공개 간담회를 했는데 그런 내용이 좀 과대확대 증폭이 된 면이 없잖아 있어, 저도 좀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면이 많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반 총장은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이런 데 대해 많이 추측들 하시고, 보도하시는데 제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는 저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사람일 테고, 제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방한 중 활동과 관련해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면서 "정치적 행보와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적 행사에 참여하고, 주관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 총장은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저는 아직도 (임기가) 7개월, 정확히 오늘로 7개월이 남았다. 제가 마지막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면서 "국민 여러분께서 제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의 이날 기자회견 언급은 지난 25일 관훈클럽 간담회 발언이 대권도전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큰 파장이 일자 수위조절을 하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앞서 반 총장은 방한 후 첫 일정으로 열린 관훈클럽과의 간담회에서 "유엔 사무총장에서 돌아오면 국민으로서 역할을 제가 더 생각해보겠다",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임기종료 후) 가서 고민, 결심하고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언급, 대선 출마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반총장의 휴일행보에 대해 시민들과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하는 행보는 대선행보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시민은 “하시는 행동은 대선행보면서 아무리 임기가 7개월 남았다지만 늘 말씀은 여전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기름장어식 발언’이다. 그러시면서 언제나 언론 탓이다. 정말 어떤 때는 짜증이 난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기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