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도무지 불안해서 못살겠다”
'수락산 여 등산객 피살' 범행동기 모호, 경찰 프로파일러 투입
우리사회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연일 ‘묻지마 살인’같은 끔찍한 범죄가 언론들을 도배하고 있다. 경찰은 서울 수락산 등산로에서 지난 29일 60대 여성 등산객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를 상대로 범행 동기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이 여성을 죽였다며 자수한 김모(61)씨에 대한 조사를 30일 오전 9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씨는 사건 발생 13시간 만인 오후 6시 30분께 사건을 수사 중인 노원경찰서에 찾아와 자신이 A(64·여)씨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김씨가 A씨와는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이번 범행이 '묻지마 살인'인지, 아니면 강도 등 다른 범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인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과거 강도살인을 저질러 15년 복역 후 올해 1월 출소한 김씨의 최근 행적 및 여죄 등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 또 구체적인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서울지방경찰청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종합적으로 확인할 예정이다. 경찰은 전날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자수 1시간 30여분 만에 노원구 상계동의 주택가 쓰레기 더미에서 혈흔이 묻은 29㎝ 길이의 흉기를 확보했다.
흉기에 묻은 혈흔과 유전자(DNA)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맡겼고, 2∼3일 안에 결과가 나온다. 전날 밤 도봉경찰서에 입감됐던 김씨는 이날 오전 조사를 받기 위해 노원서로 돌아오면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렸고, 눈빛은 가끔 불안한 듯 흔들렸으나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앞서 29일 오전 5시 32분께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 초입에서는 주부 A씨가 혼자 등산을 하다 목과 배를 수차례 흉기로 찔려 피를 흘리며 숨진 채 발견됐다. 등산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인가?
29일, 서울지하철 스크린 도어 수리하다 또 사망
또, 휴일, 서울지하철 승강장에서 또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입사 7개월된 만19세 직원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고도 지난해 8월 강남역에서 일어난 사고와 판박이었다. 사망자가 스크린도어를 점검하거나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이라는 점,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이면서 숨졌다는 점이 똑같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사고 때 안전대책을 마련해 발표했었다. 그러나 대책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허술한 안전관리, 외주·하청으로 이뤄지는 작업 구조가 빚어낸 ‘인재(人災)’다.
28일 오후 4시58분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승강장의 스크린도어가 오작동했다. 1분 뒤 서울메트로 본부에 있는 전자운영실이 외주업체인 은성PSD에 수리를 요청했다. 연락을 받은 외주업체 직원 김모(19)씨는 오후 5시52분 혼자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는 스크린도어를 열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 김씨를 보지 못한 듯 열차는 그대로 승강장으로 진입했다. 김씨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였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김씨의 작업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전자운영실은 수리를 요청했지만 김씨가 수리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스크린도어 수리 등 작업을 할 때는 역무실과 전자운영실에 작업 사실을 통보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됐다. 역무실 내 ‘역사 작업 신청 일지’에는 김씨가 다녀갔다는 흔적이 없다. 전자운영실은 역무실에 수리 요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구의역 관계자는 29일 “스크린도어가 고장나면 역에서 직접 업체에 연락해 해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경우처럼 역무실에 보고가 안 되면 수리를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입사 7개월에 불과한 외주업체 신입직원이 혼자 수리를 전담한 것도 문제였다. 김씨는 2주간 기초교육을 거치고 2월 말까지 실습 교육을 했다고 한다. 은성PSD 황준식 노조위원장은 “사고가 난 토요일에는 직원 4명이 강북 전체를 담당해야 할 만큼 인력이 부족해 2인1조 작업은 불가능했다”며 “규정을 다 지키다가는 수리를 제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9일은 김씨의 생일이었지만 가족들은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했다. 김씨의 가방에는 니퍼, 드라이버 등 공구와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김씨의 아버지(50)는 “무뚝뚝하지만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었다”며 “아들이 바쁜 일정에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다. 그래서 생일엔 아들이 좋아하는 피자나 치킨을 양껏 먹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합동으로 안전수칙 준수와 과실 여부에 대해 합동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4년 동안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빚어진 사망사고는 3차례나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11월 스크린도어 특별 안전대책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지켜진 건 없었다. 작업 시 열차 감시자를 동행해 2인1조로 출동해야 하고, 출동 사실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로 통보하라고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서울메트로 측은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철저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면서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업체를 자회사로 전환하는 안건이 의결된 만큼 오는 8월 자회사를 설립하겠다”고 설명했다. 자회사를 만들면 사고가 사라질 것인가? 서울철도노조 김정섭 차량본부장은 “낮은 임금과 인력 부족이 사고를 불렀다. 자회사를 만든다고 열악한 근무 환경이 개선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왜 이런 사고 자주 발생하나?
-자신들은 ‘안전업체’로 상타고 사고는 언제나 외주준 하청업체에서 발생
이런 류의 사례는 서울메트로 뿐만 아니다.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동자 5명을 포함해 모두 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14년에는 현대중공업에서 9명, 그룹 계열사인 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까지 합쳐 총 13건의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에서만 2014년부터 29개월에 걸쳐 총 2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어서, 약 40일에 한 명씩 일하다 사망한 셈이다. 이처럼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원인으로 현장 노동자들은 지난 수년 동안 급격히 늘어난 비정규직 비중과 구조조정 위기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를 들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중소형 조선소가 대거 도산하면서 해고된 노동자들 상당수는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조선소에 이른바 '물량팀'이라는 비정규직 신분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한 끝에 있는 비정규직 가운데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놓인 노동자들로, 정규직들이 꺼리는 용접, 도장 등의 위험한 작업에 우선 투입되면서도 현장 안전 관리 감독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이기 일쑤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중공업 재해율은 0.66%으로 조선업 평균 재해율인 0.69%보다 낮지만, 사내하청업체 재해율까지 포함하면 0.95%로 뛰어오른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2013년부터 현대중공업이 기성(도급비)을 삭감하자 산업재해가 급격히 늘어났다"며 "경영난에 시달리는 하청업체가 안전 관리 인력을 제대로 배치할 리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규직은 1, 2시간씩 안전교육할 때도 하청노동자는 출석확인만 하고 10분만에 현장으로 돌려보낸다"며 "최근에야 정규직 노조와도 연대활동을 벌이지만, 큰 효과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더구나 최근 조선업이 구조조정 위기에 놓이면서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해고의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을 위기에 현장 분위기는 최악의 상태라는 전언이다.
우남용 현대중공업 일반직지회장은 "정상적인 작업환경이라면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있다"며 "구조조정 여파로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분위기도 나빠지면서 현장 노동자들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일하고 있더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사고가 발생해도 서울메트로나 현대중공업 직원이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 사고를 당하는 것은 거의 90%이상 서울메트로나 현대중공업 작업장에서 외주를 준 외주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것이다. 외주나 하청을 준 본사들은 자신들의 직원이 내거나 난 사고가 아니기에 소위 ‘산업재해 안전대상’까지 받는다. 그들은 외주나 하청업체 사고에 아예 관심조차 없다. 산업재해에 있어 이런 구조를 깨거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전사고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전국에 걸친 우리 산업계의 산업안전 문제 이런 사례들 부지기수다. 한 시민은 일하다 희생돤 청년 김씨를 보며 분노하고 울먹이며 말했다. "내 아들같았다. 도무지 불안해서 못살겠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