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조계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검찰, 100억 수임 최유정 변호사 체포, 구속영장 청구
전관 변호사와 브로커 등을 동원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전방위 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사건에 연루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46) 변호사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는 11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최 변호사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변호사는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했다가 9일 전주 모처에서 체포됐다. 검찰이 지난 3일 네이처리퍼블릭 본사 압수수색 등을 시작으로 정 대표의 로비 의혹 수사를 공식화한 이후 사건에 연루된 법조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정 대표와 투자사기 업체인 이숨투자자문 실질대표 송모씨 등 2명으로부터 각 50억원씩 100억원대의 수임료를 부당한 용도로 받은 혐의를 받는다. 최 변호사는 정당한 변론 활동이 아니라 정 대표와 송씨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와 교제하거나 청탁한다는 목적으로 수임료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작년 10월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 대표의 항소심 변론을 맡았다. 항소심 변론·선고 결과와 이를 둘러싼 고액 수임료 반환 문제로 양측에서 갈등이 불거지면서 이번 사건으로 비화됐다.
정 대표는 최 변호사가 보석 등을 성사시켜 주겠다며 50억원을 받았다가 약속대로 되지 않자 착수금조로 20억원만 챙기고 나머지는 돌려줬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변호사는 항소심 구형량을 낮추고자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서울중앙지검의 S 부장검사를 찾아가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1천300억원대 투자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숨투자자문 송씨 사건에선 정식 선임계를 내지도 않은 채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어 '선처'를 요구하는 '전화 변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송씨에게 지난달 징역 1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송씨는 여러 차례의 투자 사기 전과가 있었는데, 최 변호사는 2013년에 기소된 사건의 항소심에서도 변론에 참여했다.
한편 검찰은 증거인멸 혐의로 체포했던 최 변호사의 사무장 권모씨는 일단 석방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기로 했다. 권씨는 검찰이 3일 최 변호사의 법률사무소를 압수수색하기 전 컴퓨터 하드디스크 포맷, 수임 관련 자료 폐기 등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됐다. 검찰은 권씨의 경우 최 변호사의 지시를 단순하게 수행한 것으로 파악돼 석방했다고 밝혔다. 권씨는 언론에 정 대표와 관련된 로비 의혹 등을 폭로한 인물로도 알려졌으나, 조사 결과 최 변호사와 사실혼 관계를 주장하는 이숨투자자문 이사 이모씨가 권씨인 것처럼 행세하며 이런 활동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논란이 커지자 잠적한 이씨의 행방도 쫓고 있다. 최 변호사의 구속 여부는 12일께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된다. 형사소송법상 체포 피의자에 대해선 지체없이 심문해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의 다음날까지 심문하도록 돼 있다.
최유정 변호사는 누구?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46·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 9일 밤 긴급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조계에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교차하고 있다. 불과 2년 전 법원 안팎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법조인이 전관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현실에 난감해 하는 법조인들도 적지 않다. 한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수갑 찬 최 변호사가 차가운 검찰 조사실 피의자 자리에 앉아 검찰 추궁을 받는 모습이 도무지 상상이 안간다"고 했다.
최 변호사와 함께 근무한 판사들은 “당차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유능한 여성 판사”로 그를 기억했다. 전주 기전여고를 졸업한 최 변호사는 1993년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7기)에 합격,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8년 서울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 서울 남부지원, 전주지법, 수원지법에서 일했다.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2009년~2011년)을 지내기도 했다.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은 대법관이 판례 연구에 이용하는 자료를 수집하고 판례 정보를 정리하는 중요 보직이다.
한 판사는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며 “법원을 이끌 재능이 있는 판사로 인정 받았다는 의미”라고 했다. 감성적인 글쓰기 솜씨도 한 몫 했다. 본인 명함에 ‘법원문예대상수상’이라 밝힐 정도로 자부심을 가졌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세상에는 한 번 보는 것이, 한 번 말하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많다. 하나님이 네게 자랑할 만한 부모님이나 많은 돈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네가 이렇게 말썽을 부려도 지켜봐 주시는 보호자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건강한 몸을 주셨다. 돈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을 네가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마라. 너는 부자다.” 최 변호사가 2006년 수원지법 판사 시절 법원 소식지 ‘법원 사람들’에 쓴 ‘바그다드 카페와 콜링 유’란 글의 한 대목이다. 이 글은 그 해 법원 문예상 대상작으로 뽑혔다.
최 변호사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 주는 것 만으로도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인간의 나약함, 이기심, 잔인함에 대한 연민과 두려움, 범행 뿐 아니라 잊히지 않는 악한 말로 인해 영혼까지 상처 입었을 피해자들의 아픔이 자꾸만 떠올라서 깊은 잠을 못 이루곤 한다.” 2013년 1월 법률신문 기고를 통해 법조인의 고뇌를 털어 놓기도 했다. 활달한 성격으로 방송에도 자주 출연했다. 그랬던 그녀는 지금 대한민국 법조비리의 대형 무대에 100억 수임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구속영장을 받았다.
검찰, 홍만표 변호사 소환예정
검찰은 이와 함께 전날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도 조만간 소환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변호사는 정 대표가 2012년부터 원정 도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때부터 변호에 나서 불기소 의견 송치와 2014년 검찰의 무혐의 처분까지 끌어냈다. 이후 정 대표가 지난해 100억 원대 원정 도박 혐의로 다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된 뒤 1심 재판 때도 홍 변호사는 그의 '방패'가 됐다. 홍 변호사가 재판에는 단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고 준비서면 등 서류 한 장 제출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그의 '역할'은 사실상 기소 전 수사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홍 변호사를 불러 검찰 관계자를 상대로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캐물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와 함께 지난 4일 세무서와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홍 변호사가 탈세를 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 대표를 상대로 홍 변호사가 받은 수임료에 관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세금 신고를 제대로 했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홍 변호사 사무실의 회계책임자를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검찰이 홍 변호사와 정 대표의 연결고리로 지목된 법조브로커 이모씨를 체포조 강화에도 검거하지 못하고 있어 수사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씨 체포에 경찰력을 동원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고 어떤 기능의 문제다. 독립된 수사기관인 검찰이 스케줄에 따라 수사하지 경찰에 수시로 요구할 수도 없다”며 “공조요청 없다고 해서 수사의지 없었다고 단정하는 건 지나친 해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누구인가?
홍만표 변호사는 전직 대통령, 대기업 오너도 봐주지 않고 매섭게 비리를 파헤쳤던 검사장 출신 변호사다. 그런 정의의 사도인 그가 이제 법조비리 연루 혐의를 받아 ‘친정’인 검찰의 칼끝 앞에 위태롭게 섰다. 검찰이 10일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홍만표 변호사(57·사진)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최재경, 김경수 변호사와 함께 ‘17기 트로이카’로 불린 대표적인 특별수사통이었다.
평검사 때 서울지검 특수1, 2, 3부를 모두 거친 데 이어 대검 중수2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대검 수사기획관도 지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굵직한 사건만 해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이 연루된 한보그룹 비리, 노무현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박연차 게이트 등이 있다. “홍만표 반만 하라”고 할 정도로 역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신임도 각별했다.
홍 변호사는 2011년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맡아 검경 수사권 조정과정에서 검찰 측 실무 총책임자로 일했다. 최종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표를 낸 그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큰일을 할 유능한 간부를 잃었다”라는 탄식이 나왔다. ‘박수 받으며 떠난 몇 안 되는 검사’라는 찬사도 받았다. 그러나 변호사 개업 후 평가가 달라졌다. 2013년 1년 동안 그가 수임료로 번 돈은 91억2000여만 원이었다. 이는 당시 국내 개인사업자 중 15위에 해당하는 고액이며, 법조인 중에서는 단연 1위였다.
홍 변호사는 자신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법인을 설립하기 전 개인 변호사로 활동한 2년 반 동안 총 250억 원 안팎을 벌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홍 변호사는 무리한 변론, 과도한 수임으로 주변의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조직을 떠난 지 만 5년이 되기 전에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검사 시절 최고의 검객(劍客)이었던 그가 자신을 옥죄는 칼을 피할 수 있을지 서초동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그는 “음해성 보도로 너무 힘들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연락을 일절 끊고 있다. 이들의 소식을 듣는 시민들은 허탈,분노, 탄식하며 이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은 사법정의가 썩어 시궁창처럼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로 범법자의 운명이 결정되는 나라인가?”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