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핵,경제 병진노선’ 고려연방제 통일” 천명.
김정은의 핵보유국 천명 노림수는?
김정은이 북한의 노동당 7차 대회에서 '핵·경제 병진노선 고수'와 핵보유국 지위를 천명하면서 핵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정은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비확산과 '세계 비핵화'에 노력하겠다고 자처하며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북한의 선(先)비핵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므로 자기모순된 기존 논리를 주장 천명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 6∼7일 열린 당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결산)보고에서 핵무력·경제 건설 병진노선은 '북한이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로선(노선)'이라고 선언했다.
아울러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리행(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핵보유국에 오른 만큼 그에 맞는 비확산 책임을 이행할 것이고,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다른 핵보유국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핵군축' 노력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8일 "기본적으로 핵보유국 입장에서 대외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이전에도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세계 비핵화'를 거론해 왔다. 북한은 2013년 4월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채택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에서 "핵무력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 격퇴하고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 데 복무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우리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비핵화'라는 긍정적 수사(修辭)를 동원함으로써 일종의 '착시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북한의 전략적 노림수를 바꾸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기조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김정은이 사업총화 보고에서 대남 평화공세를 폈고, 대형 정치 이벤트인 당대회가 끝난 이후 대내외 정치적 국면전환을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전술적' 대화 공세에 나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장 연구원은 "북한도 '누울 자리'가 없다는 것은 알 것"이라고 전제하며 "향후 정세 변화와 연계돼 어떤 태도변화를 보일지도 지켜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6일 방송 인터뷰에서 "대화가 재개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며, 행동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못 박은 바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따른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외교적 저변 확대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이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선린우호·친선협조 관계를 확대 발전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우리 정부의 한 소식통은 "(한미일과 중러의) 5자 공조를 붕괴시키겠다는 뜻까지 내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분석 하고 있다.
김정은, “주한미군 철수, 고려연방제로 통일”
또, 김정은은 제7차 노동당 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결산) 보고를 통해 대남 평화공세를 펴면서도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김정은은 지난 6일 개막한 당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미국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오늘에 이르는 60년 이상 남조선과 그 주변에 방대한 침략무력을 계속 끌어들이고 해마다 각종 북침 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리면서 조선반도와 지역정세를 격화시켜왔다"며 미국을 비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8일 보도했다.
김정은은 "미국은 핵강국의 전렬(대열)에 들어선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며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미국을 향해 핵동결과 평화협정 체결의 맞교환을 주장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정일 시대' 때도 거의 요구하지 않았던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낸 것이다.
김정은은 나아가 "우리 민족을 분렬(분열)시킨 장본인이며 통일의 기본방해자인 미국은 반공화국제재압살책동을 중지하고 남조선당국을 동족대결에로 부추기지 말아야 하며 조선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야 한다"며 미국을 배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반면 남측에 대해서는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 당 앞에 나선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업"이라고 적극적인 위장 평화공세를 폈다.
김정은은 "북과 남이 통일의 동반자로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나가자면 상대방을 자극하는 적대행위들을 중지하여야 한다"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는 불신과 대결을 조장하고 관계개선을 방해하는 기본장애물이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심리전방송들과 삐라살포를 비롯하여 상대방을 자극하고 비방중상하는 일체 적대행위들을 지체없이 중지하여야 한다"며 심리전 중단을 제안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군사회담의 개최도 제안했다. 김정은은 "지금처럼 북남 군사당국간 의사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여있고 서로 총부리를 겨눈 첨예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언제 어디서 무장충돌이 벌어질지 모르며 그것이 전쟁으로 번져지는 것을 막을수 없다"며 "북과 남은 군사분계선과 서해열점지역에서부터 군사적긴장과 충돌위험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며 군사적신뢰분위기가 조성되는데 따라 그 범위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우선 북남군사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며 "북남군사당국 사이에 회담이 열리면 군사분계선일대에서의 충돌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상태를 완화하는 것을 비롯하여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협의,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1980년 제6차 노동당 대회 때 김일성 당시 주석이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재차 제시했다.
김 제1위원장은 "북과 남은 상대방에 존재하는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우(위)에서 온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련방국가를 창립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남조선당국은 '제도통일'의 허황한 꿈을 버리고 내외에 천명한 대로 련방제방식의 통일실현에로 방향전 환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제1위원장이 최대 정치행사이자 최고 결정기구인 당 대회에서 대남 평화공세를 펴면서 주한미군 철수 등 미국을 배제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북한이 '통남봉미'(通南封美)'라는 전략을 구사하며 한미 동맹의 균열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김정은이 박근혜 정부보다는 차기 정부를 겨냥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현재 남북 관계는 금강산관광 폐쇄에 이어 개성공단 가동까지 중단돼 최악의 전면 단절상태이지만, 김정은은 의외로 남북한을 '통일의 동반자'로 간주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했다"며 "김정은이 과연 박근혜 정부와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이런 입장을 밝혔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정 실장은 "북한이 당 대회에서 천명하는 노선이나 정책은 대략 향후 5~10년을 염두에 두고 발표되는 것인 만큼 이 같은 입장은 박근혜 정부보다는 한국의 차기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입장 표명으로 판단된다"며 "당 대회 직전에 한국에서 있었던 총선에서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야당이 압승을 거둔 것이 김정은이 당 대회에서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대남 입장을 표명하게 한 배경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남한에 대해 위장평화 공세를 취하며 자신들의 ‘고려연방제’로 통일하자는 기존의 자신들 전략을 한 치도 수정하지 않았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