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면피용 사과, 소비자 분노 더 끓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옥시의 공식사과에도 들끓은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초 이번 공식사과 기자간담회에서 옥시 영국 본사 임원이 참석해 구체적인 피해보상안을 제시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피해보상안은 없었고 영국 본사 임원의 참석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공식사과에 대한 영국 본사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아타 샤프달 옥시 한국법인 대표는 “이번 사과는 한국법인과 영국 본사를 모두 대표하는 것”이라며 “영국 본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을 대신해 사과해달라고 전했으며 향후 피해보상 관련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피해보상안 계획에 대해서 아타 샤프달 대표는 “7월 중으로 패널을 구성해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한 보상 금액을 정할 것”이라며 “영국 본사와 한국법인이 함께 지침을 짜고 있다. 기구는 여러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종합해서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피해 보상을 위한 재원 역시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22명의 사망자를 낸 롯데마트가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한 것에 반해 옥시는 103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롯데마트와 같은 100억원을 출연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아타 샤프달 대표는 “1·2등급 피해자에게는 별도의 보상안을 제공하고 인도적 기금100억원은 다른 등급(3·4등급) 피해자를 위해 쓰겠다”며 “이런 모든 발표로도 과거의 잘못을 완전히 청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해명했다. 공식사과와 언론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하고 완전한 보상안을 마련하느라 늦어졌다”며 “준비가 될 때까지, 완벽하고 포괄적인 보상안을 마련할 때까지 지연된 것이므로 때를 기다렸다고 생각해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과를 받아야 할 주체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옥시 측은 이번 간담회 일정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 유가족 연대 관계자는 “이번 사과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내놓는 기자간담회 형식의 옥시 사과는 수사 면피용 사과”라며 “실제로 이번 간담회에 대해 옥시 측으로부터 연락받은 것이 전혀 없으며 전일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면 언론을 이용한 검찰 수사 면피용 형식적인 사과가 아닌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피해자들이 납득할 때까지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옥시 측은 전적으로 회사의 잘못이며 피해자들과 소통을 통해 피해 보상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단체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가피모)'과 환경보건시민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는 서울중앙지검에 라케쉬 카푸어 최고경영자(CEO) 등 레킷벤키저 이사 8명을 살인과 살인교사, 증거은닉 등 혐의로 고발했다.
여야, 옥시 사과에 "진정성 없다"
한편, 여야는 2일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의 가습기 살균제 파동 사과와 관련, "진정성이 없다"며 모처럼 한 목소리로 비판에 나섰다.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은 이날 옥시 측의 공개 사과 직후 논평을 내고 "한국 보건당국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확인한 지 5년 만에 이뤄진 늦장 발표"라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그동안 진실을 감추고 증거를 은폐했던 옥시 측의 무책임한 행위가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을 적극 발굴해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검찰 역시 한치의 의혹 없이 철저하게 수사하고 (사실관계를) 낱낱이 밝혀 업체 측에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경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옥시의 사과는) 너무 때가 늦은 데다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옥시는 검찰 수사가 급진전되고 국민들이 불매운동에 나서는 등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사과에 나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아타 샤프달 대표는 오늘 기자회견에서도 옥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런 태도로 과연 옥시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이라며 "옥시의 잘못과 책임을 밝혀낼 책임은 검찰의 몫이다, 한 점의 국민적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당 김경록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부정적 여론에 밀려 5년이 지난 후에야 하는 사과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조차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검찰도 늦었지만 조속하고 엄정한 수사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의당은 진상 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 법제도 보완을 포함해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구조적 접근방법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수원지역 시민들, 옥시불매 운동
"가습기살균제 피해 특별법 제정에 힘 모으겠다"
"가습기살균제 업체들을 살인죄로 처벌하라. 옥시 상품 불매한다." 경기환동운동연합과 수원YWCA 등 경기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는 2일 오후 수원역 남측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 처벌 촉구와 옥시상품 불매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2011년 4월 첫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이후 가습기살균제 업체들의 처벌촉구 및 옥시제품 사용 금지와 불매운동 동참을 위한 자리로, 관계자 30여명과 시민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옥시 제품 십수종을 거리에 펼쳐 놔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 중 사망자의 70% 이상을 발생시킨 다국적기업 '옥시'에 대한 처벌촉구와 불매운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무이자 권리행사"라며 시민들에게 옥시 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했다. 이어 "(옥시는)제품의 독성을 알고서도 상품을 생산 유통하고, 판매 초기부터 사용자들의 피해신고가 잇따랐지만 이를 무시하고 피해를 확인한 연구결과를 은폐했다"며 "우리 사회와 미래를 존속시키기 위해 옥시의 처벌과 추방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1528명이며, 사망자는 239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옥시 제품으로 인한 사망자는 103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또 "1994년부터 2011년말 정부에 의해 퇴출되기 전까지 18년 동안 매년 20만병씩 판매돼 경기지역 240여만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800여만명(환경보건센터 추산)의 시민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며 "현재까지 제품 사용 후 폐질환 등으로 확인된 사망자 239명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소비자들이 보유중인 제품을 폐기하는 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자치단체와 유통판매업체 등의 옥시제품의 유통과 판매를 중단시키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와 정치권에 사건의 원인규명과 피해자 지원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특별법을 제정하고 힘을 모으겠다고 발표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