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이란 방문 예정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이란 방문 출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문이 서방의 경제 제재 해제 이후 신흥시장으로 급부상한 이란을 발판 삼아 ‘제2의 중동 붐’을 조성하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양국 관계를 결속하고 최대한의 경제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고 29일 청와대의 한 인사는 전했다. 이란 국빈 방문 기간엔 역대 최대 규모인 236개사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한다. 우리 기업들은 서방의 경제 제재 해제 후 예상되는 에너지·인프라 등 대형 프로젝트 수주와 함께 중동 최대 신흥시장으로 떠오른 이란과의 장기적 협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에너지, 건설 등 업계에서 특별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란 현지 정보기술(IT) 인프라 시장 진출, 금융 및 보건·의료분야 등에서의 협력도 기대된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 기간 북한이 5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에 나설 가능성과 관련해 “(대통령이 없을 때에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대행해 주재한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개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 기간 총리 주재 NSC뿐만 아니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하는 NSC 상임위도 수시로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민의당 신임 박지원 원내대표와 김성식 정책위의장에게 난을 보내 축하의 뜻을 전달했다. 박 대통령이 야당 정책위의장까지 챙기며 축하 난을 보낸 것은 처음이다.
사상최대의 경제사절단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에 동행하는 경제사절단은 대기업 38개, 중소·중견기업 146개, 공공기관·단체 50개, 병원 2개 등 총 236개사로 역대 최대 규모다. 기업들은 중동 최대 시장인 이란 시장을 선점해 수출 부진 해소의 돌파구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경제사절단은 방문 기간 이란의 기업들과 일대일 상담회 및 양해각서(MOU) 체결, 프로젝트 협력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이란은 인구 8180만 명(2015년), 국내총생산(GDP) 4594억 달러(약 523조7160억 원·2016년 전망)의 큰 시장이다.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2위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자랑한다. 국내 기업들은 경제 제재 해제 후 봇물처럼 쏟아질 에너지·인프라 등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는 이란 특수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란 정부는 2020년까지 약 1850억 달러(약 211조 원)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를 발주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제 제재 기간에 진행하지 못했던 철도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시설과 석유플랜트 건설 공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건설업계는 박 대통령의 방문으로 최대 200억 달러(약 22조8000억 원) 규모의 수주가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일부 프로젝트는 계약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산업은 이란 알와즈와 이스파한을 잇는 540km 구간의 철도 건설 공사 가계약을 앞두고 있다. 공사비가 49억 달러(약 5조586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약은 수주를 확정하기 전 단계에 체결하는 것으로 MOU보다 구속력이 강하다. 이 외에 20억 달러(약 2조2800억 원) 규모의 바흐티아리 댐·수력발전소 건설 공사도 가계약을 눈앞에 둔 상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36억 달러(약 4조1040억 원) 규모의 ‘사우스파(South Pars) 프로젝트’ 12단계 공사를 노리고 있다. 사우스파는 단일 기준 세계 최대 매장량을 가진 가스전으로 이곳에서 추출한 가스를 처리할 액상처리시설(액체와 가스를 분리하는 시설)과 유틸리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현대건설과 포스코대우는 이란 보건부가 발주한 5억 달러 규모의 시라즈 의대 병원 건설 공사 수주를 위한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방문에 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대거 이끌고 가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현지 기업들의 최고위 경영층과 회동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SK에너지 관계자는 “경영진이 평소 중동을 자주 찾지만 이번 경제사절단 참여로 현지 네트워킹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GS그룹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자격으로 사절단에 포함된 허창수 회장 외에 임병용 GS건설 사장, 이완경 GS글로벌 사장, 하영봉 GS에너지 사장 등이 이란으로 향한다. 현지 재건 사업 참여 또는 에너지 부문 협력 등의 기회를 찾기 위해서다. 이란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에 참여하는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이 직접 나선다. 이번 방문에는 중소·중견기업인들도 대거 경제사절단에 합류해 이란 시장에 대한 기업인들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했다.
박대통령, 미묘하고 세심하게 ‘북핵압박’ 예정
이란은 외교적으론 베일에 싸인 나라다. 핵개발 의혹에 대한 혹독한 제재를 받아 2006년부터 올 1월까지 10년 간 국제사회와 단절돼 있었다. 1962년 우리 정부가 이란과 수교한 이후 정상회담ㆍ상대국 방문 등 정상 외교가 이루어지는 것도 이번이 54년 만에 처음이다. 때문에 청와대는 ‘미지의 상대국’을 배려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관계자들이 29일 전했다. 우선 박 대통령은 외교ㆍ경제 행사장에서 ‘경제 제재’라는 표현을 일절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란의 아픈 과거인 데다, 제재라는 개념 자체가 이란의 핵 개발 포기를 압박한 서방 세계 중심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양국 경제 협력 강화를 강조하기 위해 ‘제재 해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경우엔 ‘핵 협상 타결’ 등의 말로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란에서 북핵 외교를 이어간다. 박 대통령은 “이란처럼 북한도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라”고 촉구하고, 이란의 대북 압박 협조를 구할 전망이다. 다만 이란의 원로 지도자들이 북한을 호의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는 만큼, 수위 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 이란ㆍ이라크 전쟁 때 이란을 지원하는 등 이란의 우방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란식 히잡(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의 머리와 목을 가리는 스카프)인 루싸리를 두르고 이란 지도자들을 만나게 된다. 외국 여성 지도자의 히잡 착용을 면제해 주는 다른 중동 국가들과 달리 이란은 복식 규정이 엄격하다.
박 대통령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과 만나 인사할 때 악수를 할 수 없다. 공식 행사에서 여성과 남성이 악수하는 것이 철저한 금기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 목적이 경제 성과에만 집중되는 것으로 비치는 것도 정부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정부 관계자는 “문화와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토대를 닦아야 하는데, 자칫 ‘오일 머니’만 노린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이란특수 너무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다만, 결과가 좋았으면 한다”라고 지적했다.
엄원지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