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실패, 5차핵실험 가능성 커, 유엔 등 국제사회 규탄
북한이 지난 15일에 이어 28일에도 무수단급(사거리 3000~4000㎞)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실패해, 이를 만회하기 위해 5차 핵실험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 군과 정보당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다음달 초 이란 방문 기간(5.1~4) 중 북한이 기습적인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고 보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9일 "북한이 (28일) 하루에 두 번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선 건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조급하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음달 6일 열릴 당대회를 앞두고 군사적 성과물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으로서도 같은날 두 차례 모두 실패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실패 원인에 대해서는 분석이 필요하다"면서도 "지난 15일 첫 실패 이후 충분한 준비 없이 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측은 연이은 발사 실패로 당혹스러울 것"이라며 "오히려 도발 가능성이 더 높아졌으며 당대회 전까지 탄도미사일 발사나 5차 핵실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예측하기 어렵고 감정적·호전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핵실험 버튼을 누르는 시기가 더 앞당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연이은 미사일 발사 실패로 체면을 구긴 만큼 이를 만회하려면 핵실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1월 4차 핵실험 당시 이미 5차 핵실험 준비까지 마친 상태라는 관측도 있다. 정보 당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시기를 단정할 수 없지만 5차 핵실험 가능성은 여전하다"며 "이번 주말부터 다음달 초가 중대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이번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실패로 핵실험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핵무기(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이를 멀리까지 보낼 미사일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사일 기술력의 밑바닥이 드러난 상황에서 핵실험을 강행할 만한 명분이나 대내외 선전효과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중 정상들, 북한 핵위협 강력경고
김정은의 핵 폭주 위협을 저지하려는 한국과 미국 정상의 경고에 더하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가세했다. 내달 6일 36년 만에 열리는 당 대회를 앞두고 북한이 5차 핵실험 준비를 마친 것으로 파악되면서 한미중 3국 정상이 직접, 그것도 이례적으로 강력한 톤으로 경고 신호를 잇따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당 대회에서 자신의 권력 공고화와 우상화를 위한 치적으로 내세울 게 핵ㆍ미사일 밖에 없다는 점에서 브레이크가 걸릴지는 미지수다.
중국 시 주석은 28일 제5차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기조연설에서 대북 제재의 전면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에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경고한 것은 그만큼 한반도 정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왕이 외교부장 선에서 나올 경고를 시 주석이 직접 공개 언급한 점은 극히 이례적이다. 북한이 중국의 통제와 관리 밖으로 벗어나고 있고, 중국은 이에 대해 상당한 의기의식을 갖고 있다. 전통적 혈맹인 북중 관계는 시 주석이 2013년 취임 후 김정은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아 냉각기에 접어들었다가 4차 핵실험 이후 아예 단절되다시피 한 상태다. 5차 핵실험까지 임박하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정은의 핵 야욕, 위협에 시 주석의 불만도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예측 불가능한 핵 질주는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도 격분시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6일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은 매우 변덕스럽고 그들의 지도자는 너무 무책임해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며 김정은에 대한 염증을 드러냈다. 그는 특히 “우리는 우리의 무기로 북한을 확실히 파괴할 수 있지만, 인도주의적 대가 외에도 중요 동맹국인 한국이 옆에 있다”고도 했다. 북한을 선제 공격할 수 있지만, 우방국인 한국을 고려해 참는다는 뉘앙스다. 오랜 적대 관계였던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 등의 외교 업적을 쌓은 것과는 결이 다른 발언이다. 그는 당초 전임 부시 행정부와 달리,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 2012년 2ㆍ29 합의를 이루기도 했으나 갓 정권을 잡은 김정은이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나서면서 뒤통수를 맞았다.
이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손을 뗀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유튜브 인터뷰에선 북한에 대해 “야만적이고 억압적”이라며 “그런 독재 체제는 다른 어디에도 복제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혐오감을 나타냈다. 다른 국가와 달리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만큼 협상하고 싶지 않다는 심경이 누적돼 온 것으로 보인다.
미중 두 정상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체제 붕괴’ 등을 언급하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쏟아내 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도 “북한이 핵개발에 몰두하면 자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오후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는 추가 핵실험을 감행하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같은 한미중 정상들의 경고가 김정은의 핵 폭주를 제어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이날도 비록 실패에 그쳤지만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나서 치적 쌓기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은 또 유일영도체제 공고화를 위해 자신의 우상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비공식 협의'(informal consultations)를 갖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는 북한이 28일 무수단(BM-25)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2발 발사한 것과 관련해 소집된 긴급회의였다. 회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안보리 4월 의장국인 중국에 요청해 이뤄졌다.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발사 자체만으로도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며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안보리는 결의안 1718호(2006년), 1874호(2009호), 2087호(2013년), 2094호(2013년), 2270호(2016년) 등을 통해 거리에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못 하도록 북한을 제재하고 있다. 안보리는 1시간 이상 진행된 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추가 도발 중단을 촉구하는 언론성명을 채택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국이 본국과의 협의 시간을 요구함에 따라 언론성명은 이날 밤이나 29일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성명은 결의안이나 의장성명보다는 수준이 낮지만, 안보리가 사안을 중대하게 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변인인 스테판 두자릭 대변인은 이날 정오 브리핑에서 북한에 추가 도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