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언론사 오찬 간담회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45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4.13총선 이후 국회권력이 여소야대로 재편된 데 대해 민의를 잘받들어 협치정치를 선언하며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 3당 지도부에 이르면 내달 초 회동할 것을 제안했다. 또 국회와 지속적인 소통을 위해 3당 지도부와의 회동을 정례화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란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빠른 시일 내에 3당 대표를 만나도록 하겠다"면서 "3당대표를 만나는 것을 정례화하는 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4·13 총선 참패이후 정치권 안팎에서 국정쇄신과 소통 강화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국회와의 협치에 본격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 일정이 내달 1∼3일로 잡혀 있고,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원내대표 선출 절차가 조만간 완료돼,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지도부와의 회동이 이르면 내달 초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동안 선거 민의를 잘 반영해 변화와 개혁을 이끌면서 각계각층과의 협력, 소통을 잘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민생을 살리는데 집중하고 국회와 계속 협력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대야 협력방안을 놓고 "사안에 따라 여야정 협의체를 만들어 집중 연구하고 (여야가) 정부와 소통해 가면서 일을 풀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적쇄신론과 야권과의 대연정, 개헌 논의 공론화 등 다양한 국정쇄신 방안에 대해선 현 국면에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내각을 바꾸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면서 "안보가 시시각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내각을) 변화하고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야권인사의 총리 기용 등 대연정 가능성에 대해서도 "총선을 통해 국민이 만들어준 틀안에서 서로 협조하고 노력해 국정을 이끌어가고 마감을 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서로 정책, 생각, 가치관이 굉장히 다른데 막 섞이게 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고, 책임질 사람도 없게 되니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은 개헌론에 대해서도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 지난번 선거 때도 (정치권에서) 개헌을 주도하겠다는 '개'자도 안나왔다"며 "경제가 살아났을 때 공감대를 모아 (개헌을 논의)하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반대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국회와의 협치를 내세우면서도 대대적인 국정쇄신책에는 거부감을 보임에 따라 향후 국정운영의 각론을 놓고 논란과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해석이 많다. 박 대통령은 선거패배 책임론과 관련,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과 국가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고 밝혔으나 "우리나라 체제가 대통령 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대통령 역할한계론'을 토로했다.
나아가 "여소야대보다 사실 더 힘든 것은 여당과 정부가 수레의 두 바퀴로서 계속 서로 협의해 가면서 같이 굴러가야 국정운영이 원활해 지는데, 내부에서 그게 안맞아 삐걱거리는 것"이라면서 "이 바퀴는 이리 가는데 저 바퀴는 저리 가려고 하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이라고 그동안 당청간 갈등이 적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박대통령은 총선 민의에 대해선 "양당 체제에서 3당 체제를 민의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본다"면서 "양당체제에서 서로 밀고 당기면서 되는 것도 없고, 국민 입장에선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박대통령의 이날 언론사 간부 오찬간담회를 통한 언급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야권총리처럼 황당하게 국정의 인사를 섞을 수는 없어도 박대통령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소아적 감정’을 넘어서 확고한 박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더해 국가지도자로써 가져야할 대범하고 유연한 국정인식을 아직 가지시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점이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판 양적완화 긍정검토, 김영란법 재검토” 요구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가계 부채 문제 해결과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총선 선거 과정에서 강봉균 전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이 제시했지만, 정부가 신중한 입장을 나타내며 사실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아울러 한국판 양적완화를 위해 ‘한은법 개정안’을 추진해야 할 새누리당이 선거 참패로 동력도 상실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를 계기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판 양적완화’에 다시 시동을 걸지 주목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또 현재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라는 대기업 집단지정 기준을 반드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구조조정 실업 대책에 파견법 등을 강조하며 노동개혁이 구조조정의 보완책이라는 새누리당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박 대통령은 대한상공회의소가 건의한 5월 6일 임시공휴일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질문에 "저는 이건 한번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야 된다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추진이 되도록 힘을 쓰겠다"고 말했다. 강 전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3월 말 처음 내놓은 한국판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가계 부채와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자는 구상이다. 한은이 주택금융공사의 주택담보대출증권(MBS)과 산업은행 발행 채권을 직접 인수함으로써 필요한 곳에 돈을 수혈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고 한국판 양적완화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정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우리가 나설 게 아니라고 본다"며 "현재 금융시장 여건을 볼 때 산은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 조달이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는 "한은이 구조조정을 지원하더라도 법 테두리 내에서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 내에서 하겠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내가 아는 새누리당의 양적완화 공약은 산은의 산업금융채권을 사줘서 그 유동성이 시장에 흐르게 하는 내용이었다"며 "자본 확충은 이것과는 전혀 별개다.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유동성이 아니라 손실부담 능력"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판 양적완화가 총선 후 힘을 잃었던 것은 새누리당의 참패 때문이었다. 현행 법령상으로는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이나 산업은행 채권을 인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새누리당은 당초 총선 후 ‘한은법 개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려고 했으나 ‘여소야대’ 구도에 따라 동력을 상실한 상태였는데 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한국판 양적완화’에 다시 힘이 실릴 가능성이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김영란법’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제안했다. 그는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다"며 "위헌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은 오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공직자와 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이 직무 연관성과 상관없이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직무 연관성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일정 금액(현행 공직자윤리강령은 3만원, 김영란법 시행령에서 일부 상향 조정 가능성) 이상 식사대접이나 선물을 받아도 처벌 대상이 돼 급격한 소비 위축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날 박 대통령의 우려 표명에 따라 시행 유예 또는 법안 개정 등이 검토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공직자 골프'에 대해서도 사실상 '해금령'을 내렸다. 그는 "국내에서 얼마든지 칠 수 있는데 눈총에다가 마음이 불편해서 전부 해외로 나가니까 내수만 위축되는 결과를 갖고 온다"며 "자유롭게 공직사회에서도 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 자산총액 5조원인 대기업 집단 지정 기준도 손질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대기업 집단 지정기준은 지난 2008년부터는 9년째 자산 5조원이다. 이에 따라 올해 카카오, 셀트리온 등 창업한 지 15년이 채 되지 않은 기업들이 대기업 집단에 지정되면서 지정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논의가 불붙고 있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카카오, 셀트리온, 한솔 등 비교적 몸집이 작은 기업이 같은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며 “옛날 것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먹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카카오 같은 기업이 뭘 좀 해보려 하는데 대기업으로 지정돼 아무것도 못하게 되면 누가 더 크려고 하겠느냐”며 “그런 차원에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반드시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아울러 대한상의가 건의한 5월 6일 임시공휴일제 지정에 대해서도 “대한상의가 건의한 5월 6일 임시공휴일로 이번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렇게 되는 방향으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대한 재원 마련으로 야당이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거듭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박 대통령은 증세 논란과 관련해 “세금을 올리는 문제는 항상 마지막 수단”이라며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선택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대통령은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실업대책으로 노동개혁 처리의 중요성도 거듭 호소했다. 그는 파견법에 대해 “노동개혁 법안 중 파견법을 빼자고 하는데 파견법은 기업 구조조정에서 밀려나는 실업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용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