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진단, 오락가락
정부의 경제진단이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를 이끌어가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불과 한 달 새 위기론과 긍정론 사이를 오갔다. 정부의 발표도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대외경제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장에 안정적인 시그널을 보내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혼란을 부추기는 꼴이다. 이러다보니 일부에서는 정부가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논리에 휘둘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재부는 8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우리 경제에 대해 지난달보다 개선된 진단을 내놨다. 정부는 “수출 부진 완화로 생산이 반등하며 연초 부진에서 점차 개선되는 모습”이라면서 “경제심리 반등에 힘입어 긍정적 회복 신호가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월 광공업 생산은 전월 대비 3.3% 증가해 6년5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나타냈다. 수출 감소폭도 1월 -18.5%에서 3월 -8.2%로 확 줄었다. “세계경제 회복 지연 등 대외 리스크가 상존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정부의 시각은 지난달보다 한층 낙관적으로 변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기 회복세가 공고화될 수 있도록 경제혁신과 구조개혁, 투자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 과제들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는 전날 유일호 부총리의 발언과는 차이가 크다. 유 부총리는 지난 7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최근 수출 감소폭 둔화 등 긍정적 신호의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4일 기재부 확대간부회에서는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경제 상황이 여전히 어려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수장과 기재부의 발표 간에 ‘간극’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실 정부의 경기 진단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은 유 부총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유 부총리는 ‘제비 발언’ 전에는 “봄이 오고 있다. 최근 경제지표를 보면 어려운 가운데 긍정적 신호가 보인다”(3월7일 확대간부회의)고 말했고, 같은 달 1일에도 “최근 일각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해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며 경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달 새 정부의 경기 진단이 냉·온탕을 오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총선을 의식해 과도하게 정치권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총선을 앞두고 당과의 정책적 호흡을 맞추느라 일관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둘러싼 유 부총리의 행보도 미심쩍다. 새누리당 강봉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내놓자 그는 애초 “개인 소신을 말한 것 같다” “통화정책은 한은이 하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유 부총리는 그뒤 “공약을 존중한다” “일리가 있다”며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였다. 금융계 고위인사는 “한국판 양적완화는 이미 청와대와 여당 핵심부에서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졌던 사안”이라며 “유 부총리가 이러한 기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안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한국은행이 채권을 대량 매입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돈이 돌게 하자는 게 핵심이다. 한은에서는 “통화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다. 당장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할 뿐 아니라 ‘돈 풀기’로 나타날 수 있는 효과 자체도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