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바꾸겠다"던 김종인, 자신은 '비례2번'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3일 당무에 복귀하며 대표직 유지를 선언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긴급 상경 사과와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우윤근·표창원·김병관 비대위원 등의 '백기 투항'을 받아내고서다. 김 대표는 이날 비례대표 명단에도 2번 순번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벌어진 김 대표의 '셀프공천' 사태가 김 대표의 승리로 봉합됐지만 아직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대표직 유지를 천명하면서도 주류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등 총선 이후 당권 경쟁과정에서 주류와의 갈등이 예상된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 며칠 동안 깊이 고민을 해봤다"며 "나의 입장만을 고집해서 우리 당을 떠난다면 선거가 2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고 복귀를 선언했다. 김 대표는 지난 22일까지 대표직 사퇴설을 흘리며 주류를 압박해왔다.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의 서울 구기동 자택을 급히 예방해 예우를 갖췄고 김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을 2번에서 14번으로 배치하자고 주장했던 비대위원들도 22일 자정까지 김 대표의 자택에 머물며 "대표를 모시지 못한 책임이 크다"며 되레 비대위원 사퇴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당 관계자는 "김 대표는 싸울 줄 아는 분"이라며 "자신의 복귀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항복 선언을 받고 당에 복귀한 김 대표는 주류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노출했다. 그는 "(자신이 확정했던 비례대표 명단에 대해) 상당수가 당의 정체성 운운을 했는데 그 표결 결과로 보면 말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며 "아직도 더민주는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주류 의원들이 비례대표 1번을 받은 박경미 홍익대 교수 등에 대해 정체성과 도덕성 시비를 문제 삼았지만 결국 청년·노동·취약지역 등 각 운동권 성향의 인사들을 비례대표 명단에 집어넣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였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사퇴 만류가 당 잔류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며 문 전 대표와의 거리감도 나타냈다.
김 대표는 자신이 비례대표 2번 순번을 받은 것에 대해 "내가 당을 끌고 가는 데 필요했기에 선택한 것"이라며 "내가 당을 떠남과 동시에 비례의원직 사퇴를 던진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총선 이후 20대 국회에 들어가 진영 의원과 자신이 선정한 비례대표 의원 등으로 '김종인 사단'을 구성해 오는 5월 당 전당대회에서 정식 대표 자리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총선은 치르고 보자"며 김 대표 앞에 일단 항복을 선언한 주류도 당권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 치열한 내전이 예고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가 23일 당에 잔류하기로 하면서 중앙위에서 애초의 비례대표 명단을 뒤집은데 대한 불만을 여전히 드러냈다. 그는 "이번 중앙위에서 더민주가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승인한, 칸막이를 친 비례대표 명단이 중앙위에서 거부당하면서 리더십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이를 놓고 국민의당 정동영 전 의원은 "18세기 조선시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 도대체 김 대표와 비대위원들 사이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복수의 더민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문제가 된 비례대표 명단 작성에 비대위원들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당선 가능성에 따라 A,B,C 그룹으로 분류한데 대해 김 대표는 "중앙위에서 통과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나타냈지만, 비대위원들은 별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 명단에서 당선 안정권인 10위권 안의 A그룹에는 일정 부분 비대위원들이 원하는 후보들도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김 대표가 직접적으로 원한 인물은 본인을 포함해 비례대표 1번을 받은 박경미 홍익대 교수, 최운열 서강대 교수 등 3명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21일 열린 중앙위에서는 이 명단이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도록 한 당헌을 위배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비대위원들은 이에 대해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김 대표가 동의한 명단이라면 무사 통과할 것이란 기대가 어긋난 것이다. 비대위원들은 긴급히 새로운 대안을 내놨다. 비례대표 2번이었던 김종인 대표를 14번으로 미루고, 당선 안정권의 20%인 7명을 대표 전략공천 몫으로 하되 칸막이를 없앤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김 대표에게 보고되기도 전에 언론에 흘러나오면서 김 대표는 또다시 모양이 구겨지게 됐다.
더군다나 김 대표에게 7명의 전략공천 몫을 주려는 것도 중앙위에서 또다시 논란이 됐다. 7명에는 김 대표와 두 명의 대학 교수외에 김숙희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문미옥 전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기획정책실장, 이수혁 전 6자회담수석대표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당선 안정권 의석수를 35석으로 비현실적으로 늘려잡은 것이 다시 반발을 샀다. 특히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김 대표와 통화한 결과 김 대표가 원한 사람은 7명이 아닌 3명 뿐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중앙위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이에 소위까지 구성해 어렵사리 당선 안정권을 20석으로 결정하고 대표 몫을 4석으로 줄였다.
그러면서 김 대표를 포함해 박 교수와 최 교수, 그리고 김성수 대변인이 김 대표의 전략공천 대상으로 지정됐다. 결국 김 대표의 의중이 실린 사람은 칸막이를 친 A그룹의 10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4명으로 축소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김 대표의 의도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김 대표에게 돌아갔다. 비대위원들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 핵심 당직자는 "비대위원들이 사퇴하겠다는 것은 비례대표 사태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내가 임명한 사람들이지만 비대위원들 행동에 대해 100% 신뢰하는 게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김 대표는 비대위를 전면 개편할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출신의 진영 의원을 전면에 내세운 선대위 본부장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복지부 장관 출신인 진 의원은 국민연금 관련 정책을 담담할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더민주 김종인 대표 거취문제가 주목을 받는 사태가 지나면서 당내의 문제야 당내에서 해결할 일이지만 바깥의 시선은 매우 곱지 않다. 한 전문가는 “저것은 다 국민기만 쇼다. 김종인이 뭐라했나? 처음에 자신은 비례대표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고 관심없다 하지 않았나? 강경운동권 몰라내고 전문가 공천하겠다는 그의 의지도 퇴색되어 버리고 타협한 것 밖에 더되나? 저당은 여전히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또 이번 사태를 보면 전형적인 좌파 운동권의 공산주의 전략전술이 드러난다. 바로 인기없고 힘없을 때 필요한 정치요소로 주목과 관심을 끌고 난뒤 힘모아 권력잡으면 가차없이 토사구팽하는 것이 그들의 전형적인 전술이다. 김종인, 늙은이가 추잡스럽기도 하지만 너무 오만불손한 것도 사실이다” 라고 지적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