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탈당, 무소속 출마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대구에서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유승민 의원은 23일 밤 대구시 용계동 지역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권력을 천명한 헌법 1조 2항을 거론하며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저의 정든 집을 잠시 떠난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이번 공천에 대해 당이 보여준 모습은 정의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보복"이라며 "정의가 짓밟힌 데 대해 분노한다"고 강하게 당의 공천과정을 비판했다. 유 의원은 "권력이 저를 버려도,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다.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결코 멈추지 않겠다. 보수의 적자, 대구의 아들답게 정정당당하게 가겠다"며 "국민의 선택으로 반드시 승리해서 정치에 대한 저의 소명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유승민 의원이 사실상 새누리당에서 '강제 탈당'당한 후 20대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23일 오후 5시30분쯤. 대구 동구에 위치한 유승민 의원 선거사무소에 모여있던 지지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TV속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기자회견으로 쏠렸다. "대구 동구을은 오늘 7시 공천관리위원회에서 합당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오늘 12시까지 꼭 출마하려면 탈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린다." 유 의원을 공천하라는 압박이었지만 공관위를 움직이기엔 역부족인 발언이었다. 사실상 '사퇴 권유'나 마찬가지였다.
실망감을 드러낸 지지자들은 갑자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유승민 대통령! 유승민 대통령!" 길게 이어진 구호는 이내 눈물로 이어졌다. 한 여성의 흐느낌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옆에 앉은 남성은 "이건 대구의 눈물, 동구의 눈물"이라고 말했다. 이 여성은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링거를 맞고 선거사무소를 오갔다고 했다. 그는 누가 제일 원망스럽냐는 질문에 "원망스러운 건 없다. 그냥 가슴이 아프다"며 흐느꼈다. 옆에서 다른 지지자는 "없긴 왜 없어 많지. 다 원망스러운데. 이한구는 대구 사람인데 원망스럽고"라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지지자는 "대구에 3선이 서이(3명) 있는데 서상기 들어내고 주호영 들어내고 유승민 들어내려고 저난리 쳐놓고 오도가도 못하고. 남자가 칼을 뺐으면 치든지 살려주든지 그래야 되지. 대구에 초선 의원만 주면 뭐한단 말입니까. 부산은 5선, 6선 많은데 대구엔 박근혜 대통령 거수기만 있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중년 남성은 "이번에 혁신 못하면 대구 사람들 다 죽어야 돼. 유승민이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 잘 되라고 한 말 아냐? 그럴 거면 국회의원 300명 왜 있어. 자기 입맛에 맞는 100명만 하지"라고 말했다.
한 70대 남성은 "일자리 없어가 서울로 간 젊은 자식들이 이번에는 유승민 찍으시소 하는 전화가 온다고"라고 보탰다. 이날 유 의원의 선거사무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지지자들과 대구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져 북새통을 이뤘다. 유 의원을 공천배제(컷오프)하지도 못하고 끝내 탈당을 유도하는 새누리당의 행태에 대한 분노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날 여의도 국회는 여전히 지지부진이었다. 오전 비공개 최고위에서 유 의원의 공천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으며 오후 7시 열린 공관위 역시 공천 결정을 다음날로 미뤘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관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대구 동구을에 대해서는 논의를 했지만 아직 결론을 못 냈다"며 "내일(24일) 오전 9시 다시 공관위를 열고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탈당 시한인 23일 자정을 한 시간 반 가량 남겨놓은 시점에서 결국 유 의원에 대한 공천을 결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셈이다. 이 공관위원장의 브리핑이 들려오던 거의 같은 시각,유 의원의 선거사무소는 유 의원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기자회견을 위해 정돈된 대회의실에 오후 10시20분쯤 새누리당 로고를 뺀 새 현수막이 걸렸다. 흰 배경에 '대구의 힘! 대구의 미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자택에 있던 유 의원은 공관위의 마지막 브리핑을 듣고 이동했다.
"유승민! 유승민! 유승민! …" 10시45분쯤, 유 의원이 사무소에 도착함과 동시에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당 관계자들이 유 의원의 이름을 연호했다. 빨간 넥타이를 메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유 의원은 "언론인 여러분 그동안고생 많이 하셨다. 좁은 누추한 사무실까지 와서"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제가 쓴 회견문을 낭독하고 마치도록 하겠다"며 담담히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이내 목소리가 흔들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유 의원은 선거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수의 지지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유 의원은 그들을 말없이 안아주고 손을 부여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선거사무소를 나온 유 의원을 둘러싸고도 유의원의 이름을 연호하는 응원이 한참 이어졌다. 유 의원은 "예예. 고맙습니다"라며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의원님 힘내세요,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유승민 화이팅! 끝까지 하십시오." "광주에 사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랑합니다. 잘 될 거예요." 유 의원은 지지자들의 응원을 뒤로 한 채 차를 타고 자택으로 향했다. 이어 오후 11시20분쯤 유 의원을 대신해 보좌진이 탈당계를 제출했다. 이제 그의 앞에는 '무소속' 의원으로서의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유승민 지지자들도 아무도 유승민이 당을 버린 것이 아니라 더러운 당이 유승민을 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위, 선거후 책임이 무서워 질 것으로 보인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