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시진핑에 큰 실망’ “중국 역할 기대치 말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처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태도에 크게 실망하고 참모들에게 "더 이상 (중국의 역할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고 한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중국 보아오 포럼 불참 검토도 이 같은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직후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이 대북 제재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며 "그러나 이후 전화 통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시 주석에 대해 큰 실망감을 보였다"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첫 통화는 지난 5일 이루어 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분노'에 가까운 실망감을 나타냈다 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측은 양 정상의 통화를 한국 시각으로 4일 밤 12시에 하자고 요구했다. 북한 핵실험 후 한 달 넘게 지난 시점에 통화를 하면서도 외교 관례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간을 지정한 것이다. 이에 우리 측에선 "그 시간에는 통화할 수 없다"고 했고, 중국 측은 다음 날 저녁 9시를 다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중국 측과 통화가 확정된 뒤에도 "어차피 중국 측에서 별 의미 있는 얘기를 하지도 않을 텐데 언론에는 사전에 알릴 필요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청와대 참모진들도 '비공개'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그러나 이후 다른 참모진들이 "그래도 그럴 수는 없다. 사전에 알려는 주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을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사전에 통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하지만 통화 이후에도 우리 측은 시 주석 발언에 대해서는 "중국 측이 알아서 공개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통화에서 말한 내용만 전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 예상대로 시 주석 태도는 기존 중국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에 곧바로 중국이 강하게 반대했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THAAD)' 배치 협상 개시를 결정했다. 외교가에서는 이 결정의 배경에도 중국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분노'가 깔려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외교 당국자는 "박 대통령에게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도 참석했는데 중국이 이럴 수 있느냐'는 섭섭함이 최근 결정에 묻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박대통령, 통일부 성명 직접 고치며 ‘분노’담아
또 대통령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지난 10일 발표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성명을 통일부가 올렸던 원안(原案)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직접 고쳤다. 청와대 관계자는 "성명 상당 부분은 대통령의 육성(肉聲)이나 다름없다"며 "신뢰를 저버린 상대(북한)에 대한 분노가 담긴 것"이라고 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용어도 최종적으로 박 대통령이 선택했고 발표 후 외신에서 이를 어떻게 번역할지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3년간, 북한의 지뢰 도발 등에서도 어찌 됐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란 이름의 대북 대화 기조는 이어 나가려 했다. 하지만 올해 벽두부터 북한은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했고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드레스덴 선언, 경원선 복원, 비무장지대(DMZ) 평화생태공원 등 박 대통령의 대북 제안을 나열한 뒤 "그렇게까지 했는데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응답했다"며 "이제 대통령은 '참을 만큼 참아왔고 더 이상 북한 정권을 신뢰할 수 있는 대화 상대로 여기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참모들에게 "북한이 유엔 제재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과거와 차원이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난 10일 발표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성명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같은 날 윤병세 외교장관이 미·중·일·러의 유엔 주재 대표를 만나 "5차, 6차 핵실험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 결의가 '마지막 결의(terminating resolution)'가 돼야 한다"고 밝힌 것 역시 사실상 박 대통령의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한편 청와대는 현 안보 상황과 관련해 내주 초쯤 박 대통령이 국론 통합을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직접 한반도 정세의 엄중함과 개성공단 전면 중단의 불가피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한 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일반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는 만큼 국가원수이자 국군 통수권자로서 국민을 안심시키고 앞으로 남북 관계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통 분담을 호소하면서 우리 내부의 분열이 없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울러 국지 도발 또는 기간 시설에 대한 테러 등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커진 만큼 테러방지법 처리 등 정치권의 협조도 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권 관계자는 "공항·철도 등에 대한 사이버 테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야당이 국가정보원에 테러 대비 기능을 두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어느 나라도 그 기능을 국민안전처와 같은 정부 기관에 두진 않는다"고 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