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4대개혁 절박" 비판, 정의장 "화합이 으뜸" 동문서답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16년 신년인사회에서 4대 구조개혁의 절박함을 강조하면서 정치권에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 등 쟁점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반면 이 자리에 참석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에 대한 언급을 비켜가면서 '화합'을 정치의 최고 가치로 꼽아 눈길을 끌며 동문서답 했다. 박 대통령이 주요 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사실상 다시한번 촉구했지만 그 '키'를 쥐고 있는 정 의장은 완곡히 거부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양측간 미묘한 기류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신년인사회 모두발언에서 "저는 10년뒤 우리나라가 무엇으로 먹고살지, 우리청년들이 어떤 일자리를 잡고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할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들곤 한다"며 "그리고 그때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4대 구조개혁을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바라는 경제활력의 불꽃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고 우리 청년들이 간절히 원하는 일자리와 미래30년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한 4대 개혁과 경제혁신 과제들이 좌초될 경우 국가경제가 깊은 나락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노동개혁 입법은 지금까지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국회와 정치권에서 법안통과를 호소하는 이들의 간절함을 지금 듣고 있는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등 감정을 자극하는 '호소'를 통해 쟁점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대국민 여론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특히 박 대통령은 "정치가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야 하고 국민의 민생에 모든 것을 걸어줘야 한다"며 "저는 지금 정치권이 스스로의 개혁에 앞장서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해 국민의 삶을 돌보는 참된 정치를 실천에 옮겨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금의 국회가 민생을 뒷전으로 미루고 선거구 획정 등 자기 밥그릇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어 국민의 신뢰도 잃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 의장을 앞에 두고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완곡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쟁점법안의 직권상정을 재차 압박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앞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해 12월15일 정 의장을 만나 "선거법만 직권상정한다는 것은 국회의원 밥그릇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라며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 테러방지법 등도 선거구 획정을 위한 공직선거법과 함께 직권상정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건배사를 위해 박 대통령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정 의장은 쟁점법안 등 국회 현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대신 정 의장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청정위천하정(淸靜爲天下正)'를 언급한 뒤 "맑고 고요한 가운데 나라를 다스리면 그 나라가 올바르게 다스려질 수 있다는 그런 의미로 제가 생각을 한다"면서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의장은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이 너무 심한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화합하고 서로 통합의 정신을 가지고 나라를 하나로 마음을 다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박 대통령님께서 지금 추구하고 계시는 4대개혁은 물론이고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이 위기 상황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화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정 의장은 "일찍이 다산선생께서 '식위정수(食爲政首)'라고 했는데 그 식(食)이 지금으로 보면 경제가 아닌가 싶다"며 "경제가 정치의 머리에 있기는 하지만 그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화(和)가 정치의 으뜸이 돼야 한다. 그래서 '화위정수(和爲政首)'를 올해에 제가 생각하는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먹고 사는 것이 정치의 으뜸'이라는 다산 정약용의 식위정수에서 '식'을 '화'로 바꿔 '화합이야말로 정치의 으뜸'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정 의장이 박 대통령 앞에서 화합에 방점을 찍은 것을 두고 쟁점법안 처리는 여야 합의가 중요한 만큼 동문서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장, 여야 대표에 '지역구 246·253석案' 택일요구
한편, 정의화 국회의장은 4일 여의도 에서 새누리당 김무성·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오찬회동을 갖고 제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지연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정 의장은 이 자리에서 선거구가 모두 무효가 된 현재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여야 지도부가 조속히 합의안을 도출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획정위에 제시한 지역구 246석 안(案)과 과거 여야가 잠정 합의했던 253석 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5일까지 합의해달라고 여야 두 대표에게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대표는 정 의장의 이 같은 요구를 자당 지도부와 공유하고 해법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정 의장은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오는 8일 (선거구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하려면 내일 정도까지는 선거구 획정 기준이 합의돼야 6~7일에 뭐가 되지 않겠느냐고 여야 대표에 말했다"고 전했다. 정 의장은 또 "개인적으론 253안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오늘 246안과 253안 둘 다 이야기했는데 결과를 보자"고 말했다. 앞서 정 의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 김대년 위원장으로부터 획정위 내부 상황에 대해 보고받았다.
정 의장은 "가능하면 오늘 내일이라도 다시 회의를 소집해서 나에게 역으로 부탁할 게 있으면 하는 식으로 풀어가자고 김 위원장에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정 의장은 지난 1일 0시를 기해 현행 의석수 비율(지역구의원 246석·비례대표 54석)을 유지하는 선거구 획정 기준을 획정위에 제시했다. 하지만 선거구획정위는 지난 2일 전체회의에서 획정위원간 의견이 맞서 획정안을 마련하는데 실패했고, 다음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