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사의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에 필요한 핵심 기술 이전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순방 직전 사의를 표명했다고 여권의 핵심 관계자가 18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방위사업청이 지난 4월 미국측으로부터 4개 핵심 기술을 이전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뒤 두 달이 지난 6월에야 청와대에 늑장 보고를 했다”며 “하지만 이마저도 박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청와대 내부에서 문책론이 일자 주 수석이 책임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했다. 주 수석 책임론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늑장 보고 과정을 조사하던 중 나왔다고 한다.
또 다른 여권 고위 관계자는 “순방에서 돌아온 뒤 박 대통령도 주 수석의 거취에 대해 숙고하고 있으며,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 수석은 정부 출범 후 박 대통령을 보좌해 온 원년 멤버다. 특히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을 만나 기술 이전을 요청했는데도 거절당한 뒤 새누리당에서 KF-X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박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선 외교안보라인의 대대적인 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한 장관의 굴욕외교로 빛이 바랬다”며 “외교안보라인의 수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운영위는 청와대의 새해 예산안을 논의하기 위한 전체회의를 23일 소집해 놓고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 “굴욕외교 아니다” 변명
한편,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 중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을 만나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관련 4가지 핵심기술에 대한 이전을 요청했다가 재차 거절당한 것에 대해 국방부는 19일 "굴욕외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사의설이 나오는 것이 한 장관 굴욕외교의 결과라는 지적에 대해 "굴욕외교라는 일부 보도가 나오는데 결코 굴욕외교가 아니다"라며 "한미 동맹 차원에서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워킹 그룹'(협의체)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앞으로 협조해 나가자는 입장이니까 상당한 성과를 얻어냈다고 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한 장관의 미국 방문 배경과 KF-X 기술 이전 재요청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통령께서 펜타곤(미 국방성)에 가셨기 때문에 그 현장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갔던 것"이라며 "국회 국정감사나 언론 등에서 '미국에 더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고, 방위사업청장이 해야 하지만 국방부 장관이 전체적으로 지도·감독하는 차원에서 미 국방장관에게 다시 요청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KF-X) 4가지 기술은 이미 미국 정부 차원에서 한꺼번에 모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 상황이었다"며 "이와 관련한 미국 입장은 서한으로 왔었기 때문에 한 장관은 그에 대한 복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갔고, 그 생각대로 미국과 협상해서 한미 양국 간 방위산업 관련 기술협의체를 협의해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한 장관이 미국에 서한을 보내기 전에 청와대와의 사전 협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협의한 부분은 제가 말씀드릴 바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김 대변인은 "시험을 본 초등학생에게 '100점 맞을 수 있냐, 99점 맞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자꾸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국방부나 방사청이 물론 초등학생은 아니지만 R&D 사업이라는 것은 힘들고 불확실성이 큰 만큼, 반드시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이뤄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한 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현지에서 카터 장관을 만나 KF-X 개발을 위한 4개 핵심기술 이전 문제를 협의했지만 카터 장관으로부터 "조건부로도 KF-X 사업과 관련한 4개 핵심기술 이전은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 장관은 지난 8월 기술 이전을 요청하는 서한을 카터 장관에게 보냈다가 미국 측의 거절 입장을 담은 회신을 뒤늦게 전달받은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 장관이 실질적인 대안이나 별다른 협상전략 없이 무리하게 기술 이전을 요청함으로써 '굴욕외교'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이런 가운데 주 수석의 사의설까지 제기되면서 한 장관의 행보가 외교·안보라인의 교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