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김만복 “남북 정상간 핫라인” 언급논란 일파만파
지난 참여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비화를 담은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회고록이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회고록 일부 내용이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깎아내렸다는 반발이 나오기도 해 야권 일부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또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정책실장 등과 함께 쓴 회고록이 정식 출간도 하기 전에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내용을 놓고 회고록을 출간한 참여정부와 직전 DJ정부의 대북 핵심 라인 간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회고록에는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의 발언이라며 '6·15 공동선언이 빈 구호가 되고, 빈 종이, 빈 선전갑이 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DJ정부 때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였던 6·15 공동선언을 당시 당사자였던 김 위원장이 5년 뒤 폄훼하는 듯한 내용이다. '좋은 거 하나 내자고 자꾸 독촉을 해서' 6·15공동선언을 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 역시 도마에 올랐다. 이에 대해 DJ정부 당시 남북 정상회담 막후 조정을 했던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발끈했다. 박 의원은 SNS를 통해 "참여정부가 대북송금 특검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며 6·15 공동선언이 지켜지지 않은 원인을 지적했다. 이어 "왜 지금 이 순간 DJ를 폄훼하는지 정치적 의도가 있다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이 가동됐었다고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1일 중앙일보를 통해 밝혔다. 김 전 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선 ‘백채널’(비밀창구)을 활용할 필요가 없었다”며 “이미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상시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핫라인이 뚫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주고 있다.
김 전 원장은 “기밀사항이지만 핫라인은 24시간 가동됐다”며 “핫라인과 연결된 우리 측 전화기 벨이 울리면 김정일 위원장의 전화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핫라인을 통해 남북 정상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북관계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내용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원장은 “핫라인은 현재 통일부 라인(판문점 남북 연락사무소 직통전화)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양 정상 간의 직접 통화를 위한 것”이라며 “양국 정상이 어디에 있든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한 상태로 운영됐다”고 설명했다. 남북 정상이 상시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이 개설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전 원장은 “핫라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잘된 남북관계로 인해 개설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미리 닦아놓은 길을 활용할 수 있었기에 훨씬 수월하게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핫라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안 돼 끊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라인이었는데 없어져 아쉽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 당시 김만복 발언,,,중 일부,,,,,
-2차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백채널(비밀창구)을 활용했나?
▶김만복=“이미 양국 정상 간 핫라인이 개설돼 있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울과 평양에) 직통으로 연결된 전화기 앞에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었다. 따라서 양 정상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했다. 핫라인을 통해 남북 정상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다. 물론 그 존재는 비밀이었다. 지금은 남북 간 핫라인이 없어져 참 아쉽다. 그 라인을 통해 북측이 불만도 많이 표출했고 오해라는 설명도 많이 했다.”
-핫라인이 개설된 과정은?
▶김만복=“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남북 간 백채널이 없어 (재일동포 사업가인) 요시다 다케시(吉田猛)를 활용해 북한과 접촉했다. 나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기에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측에선 우선 요시다를 통한 대북 접촉을 해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 제2, 3, 4선을 통해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요시다를 통한 대북접촉이 원만하게 성사됐다. 이렇듯 김 전 대통령 시절 잘된 남북관계로 인해 핫라인이 개설돼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 이어졌다.”
핫라인 외의 남북 간 직통전화는 1971년 처음으로 개통됐다. 그해 9월 남북 적십자회담 제1차 예비회담에서 처음으로 합의돼 판문점 내 양측 지역을 연결했다. 72년에는 7·4 공동성명을 계기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노동당 김영주 조직지도부장 사무실에 직통전화가 각각 설치됐다. 이후 판문점 남북 연락사무소와 군 상황실, 항공관제센터 등에 직통전화가 개설됐으나 모두 실무진을 위한 라인이었다. 정상 간 핫라인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이 자주 쓰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10·4 선언에도 들어가 있는데?
▶김만복=“말 그대로 받아들이자.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북한이 먼저 이 말을 쓰고 선전에 활용하니까 문제가 된 것이다. 2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10·4 선언 제1항 ‘…남과 북은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에선 이 문구를 받아들였다. 2007년 사전협의를 위해 두 번째로 평양에 갔을 때 북측에서 갖고 나온 합의문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한민족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돼 있었다. ‘우리 민족끼리’는 넣고 ‘힘을 합쳐’는 빼자고 했다. 우리가 반미전선에 합류하는 듯이 북측이 선전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밤 12시가 됐는데도 안 빼더라. 그래서 내가 ‘끝내자. 짐 싸라. 서울 가서 대통령 지침 받은 후 다시 얘기하자’고 한 뒤 침실로 갔다. 그랬더니 새벽 4시에 날 깨우더라. 내가 확고하단 뜻을 다시 밝혔고 결국 그 표현은 빠졌다.”
논란일자 김만복, "노무현-김정일, 직접 통화한 적 한차례도 없었다"며 말바꾸는 것인지?, 이상한 쐐기 박아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은 2일 자신들의 회고록과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이 논란이 일자 "남북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이 있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직접 통화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을 바꾸는 것인지 이상한 쐐기를 박아 더욱 충격과 혼란, 더 큰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김 전 원장은 이날 노무현재단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 국제심포지엄'에서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위원장이 수시로 전화통화를 했느냐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심포지엄에 함께 참석한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도 "내가 안보실장을 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 간 전화나 대화에 모두 배석했는데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전화한 적이 없고 배석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지만 노빠들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김 전 원장은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의사소통 구조가 있었다"면서 "남측 핫라인은 국정원에 있어 24시간 상시 대기하면서 그 라인으로 온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뜻으로 알고 바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무현·김정일이 수시로 직접 통화했다'는 언론 인터뷰 보도와 관련, "두 정상 간 의사가 쉽게 즉각적으로 교환될 수 있는 라인이 있었다는 의미로 설명했는데, (직접 통화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설명하며 희안한 해명을 했다. 김 전 원장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10·4 남북정상선언이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의미가 퇴색됐다며 "10·4 선언은 이행돼야 하고, 이를 위한 결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소식이 전해지자 소식을 접한 정치권 각진영은 아연실색했다. 특히,국민들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완전히 북에게 나라팔아먹을 뻔 하지 않았나? 저런 짓들이 저자들 머릿속이다. 미친 것들,,,,이미 죽었지만 김, 노대통령 뿐만 아니라 관련, 연루된 자들 모조리 국민앞에 낱낱이 국정조사 또는 특검을 포함, 어떤 형태든 국가적 수사를 해야 할 사항이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