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사태, 한국에서도 첫소송
폭스바겐 디젤차량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과 관련해 미국 등지에서 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첫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법무법인 바른에 따르면 폭스바겐과 아우디 경유차를 소유한 2명이 폭스바겐그룹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등을 상대로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원고의 소송 대리인인 바른은 "피고들의 기망행위(속임수)가 없었다면 원고들은 제작차 배출허용 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는 자동차를 거액을 지불하고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 민법 제110조에 따라 자동차 매매계약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폭스바겐 티구안 2.0 TDI 아우디 Q5 2.0 TDI
바른은 또 "매매계약이 소급적으로 무효가 됐으므로 피고들은 원고들이 지급한 매매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면서 "구입 시점부터 매매대금에 대한 연 5%의 이자도 반환하라고 덧붙였다. 원고들이 구입한 차량은 각각 2014년형 아우디 Q5 2.0 TDI와 2009년형 폭스바겐 티구안 2.0 TDI으로 가격은 6천100만원과 4천300만원이다. 바른은 소장에서 "피고들이 적은 배출가스로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휘발유 차량보다 연비는 2배 가량 좋고 시내 주행 시 가속 성능이 훨씬 낫다고 광고해 이를 믿은 원고들로 하여금 동종의 휘발유 차량보다 훨씬 비싼 프리미엄을 지불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가에 차량을 구입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원고 측은 부당이득 반환과 함께 예비적으로 각 3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바른은 "대기환경보전법상의 배출허용 기준을 충족하게 하려면 차량의 성능을 저하시키고 연비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어 추가적 손해를 입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 제기로 폭스바겐의 디젤차량 배기가스 조작과 관련한 국내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바른 관계자는 "폭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을 리스 방식으로 이용하는 소비자들까지 포함해 소송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폭스바겐 코리아 "모든 고객에 피해 주지 않도록 조치"
한편 폭스바겐 코리아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내에서 시판된 모든 차종에 대한 확인작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폭스바겐 코리아는 홈페이지를 통해 '북미 디젤 엔진 이슈에 대한 폴크스바겐코리아의 입장'을 싣고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폭스바겐 코리아는 "폭스바겐은 한국 시장에서 시판 중인 모든 차종에 대해 면밀히 확인할 것"이라면서 "한국 내 모든 고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모든 조치를 할 것이며 우리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수입차협회 통계 등에 따르면 폭스바겐 조작 의심 차량은 이번에 미국에서 문제 차종으로 지목된 골프와 제타, 비틀, 파사트 외에 티구안, 폴로, CC, 시로코까지 8개 차종 약 11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우디는 미국에서 적발된 A3를 비롯해 A4, A5, A6, Q3, Q5 등 6개 차종 약 3만5천대가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 코리아는 이번 사태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자 판매 방식을 소극적 세일즈로 전환하고 있다. 온라인 등 국내 각종 매체의 광고를 중단했고, TV광고도 곧 내릴 예정이다. 10월 차량 할인폭은 이달보다 축소할 계획이다. 어느 시민은 “사기와 거짓은 명차도 똥차를 만든다”고 말했다.
폭스바겐, 국내 소송 핵심 쟁점은?
폭스바겐그룹 디젤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 때문에 국내에서도 소송이 시작되면서 법원이 이번 사안을 배상 대상으로 인정할지가 주목되고 있다. 전 세계로 논란이 확산 중이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손해가 있다면 그만큼 배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직은 폭스바겐그룹이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리콜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고, 국내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을 소유한 국내 고객도 이번 사건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소송전에 참여하는 게 맞는지 등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국내도 첫소송, 결과는 ‘글쎄’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폭스바겐과 아우디 경유차를 소유한 2명이 폭스바겐그룹 등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들은 폭스바겐 측 속임수가 없었다면 환경기준에 미달하는 차를 사지 않았을 것이니 매매대금 등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박주민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결과적으로 폭스바겐 차종에 대한 브랜드가치 하락으로 해당 차종이 중고차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전망에 대해 다룰 것”이라며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과 중고차 시장에서의 차 값 하락 사이에 연관관계를 입증해야 하지만 차 값 책정에는 계절적 수요변동이나 중고차 시장 경기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할 수 있어서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소재 대형로펌 소속 한 변호사도 “브랜드 가치 하락이라는 문제제기 자체가 모호해서 법정에서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이번 사건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입증하려면 오랜 시간에 걸친 데이터 축적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소송이 본격화한 후 폭스바겐과 아우디 측과 합의하는 방향으로 최종 정리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소송을 제기한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클린 디젤’을 슬로건으로 홍보한 폭스바겐의 이번 행위는 명백한 소비자 기망”이라며 “중요 정보를 허위로 고지하면 기망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피해 규모 아직 ‘오리무중’
환경부는 추석연휴 직전 폭스바겐그룹 측에 “전체 문제 차량 가운데 한국에서 팔린 차종·엔진별 연간 판매 현황, 배기가스 조작을 위해 임의 설정한 구체적인 내용, 국내 개선 조치계획 등을 마련해서 오는 30일까지 제출하라”고 통보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 폭스바겐그룹이 전 세계 리콜 규모를 밝히는 10월 중순쯤이 돼야 국내 피해 규모도 파악될 공산이 크다. 10월 1일 시작되는 환경부 조사 결과는 11월에 나오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문제를 일으킨 측으로부터 피해규모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을 보유한 국내 고객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네이버 카페 ‘폭스바겐 TDI클럽’ 등 비슷한 카페 회원들은 이번 사안을 놓고 소송을 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한창 논쟁 중이다.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주장하는 회원도 있고, 연비 손해분 정도는 가능해도 위자료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폭스바겐 카페 한 회원은 “다른 나라는 국가가 소송을 주도하는데, 우리나라는 소비자가 직접 소송을 거는 게 씁쓸하다”며 “부품 하자가 아닌 사기조작 판매여서 (해외에서는)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디젤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이번 사건도 흐지부지 넘길 것이라는 억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최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