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공천 살생부(殺生簿)’
중진들은 살생부, '486'은 제외
새정치민주연합 현역의원들을 떨게 했던 '혁신위발(發) 공천 살생부'가 23일 실체를 드러냈다. 혁신위는 이날 오전부터 부정·비리 의혹 인사에 대한 공천배제 방침으로 '물갈이'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오후에는 계파수장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살신성인을 요구했다. 다만 그동안 거론되던 '486그룹 하방론'이나 '호남다선 물갈이' 등 특정그룹에 대한 쇄신론은 언급되지 않았다.
전과자 줄줄이 '리스트'에, 대상은 엿장수 마음대로
가장 먼저 '리스트'에 사실상 이름을 올린 인사들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나 김재윤 의원 등 하급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인사들이다. 혁신위는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대신 "후보신청 자체를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기소 상태인 신계륜 신학용 의원 역시 사실상 배제 대상으로 분류됐다. 특히 혁신위가 과거 유죄판결에 대해 '반복적용'을 하기로 하면서 안희정 충남지사 역시 공천 배제명단에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한때 흘러나왔지만, 혁신위에서는 "안 지사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혁신위 임미애 대변인은 "정치자금법의 경우 본인의 선거운동 중 부정행위가 적발됐을 때에만 공천배제 대상에 포함된다"며 "안 지사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혐의가 적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훈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본인의 선거운동이 아닌 16대 대선 선거운동으로 기소됐기 때문에, 부적격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혁신위는 정치적 탄압으로 해석되는 기소의 경우 구제절차를 밟아 공천배제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정채웅 혁신위 대변인은 "국정원 여직원 사건 문제로 현재 기소돼 재판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부정부패 청산을 앞세운 강력한 물갈이는 2008년 총선에서 박재승 전 공천심사위원장이 보여준 모습과 닮은꼴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 객관적 공정성의 기준을 벋어나 너무 편파적이었다. 박 전 위원장은 '포청천', '공천특검'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부정부패 전력자에 대한 엄격한 배제를 강조, 결국 11명의 의원을 배제했었다. 이로 인해 박 전 원내대표나 신계륜 의원이 배제되면서, 이들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등 진통을 겪었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 역시 활동 마지막날 박 전 위원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력히 칼을 휘둘렀다. 일각에서는 "환부에 메스를 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신당의 위협속에 당의 통합을 강조하는 시기에서 '개인플레이'를 해 화합을 저해한 것 아니냐며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아니고 무척 편파적이다’ 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혁신위 활동 백서 작업을 병행하며 정치개혁 연구작업을 계속하겠다는 계획이다.
"살신성인?" 계파수장들 정조준, 미묘한 개인차,
정세균, 이해찬, 문희상, 김한길, 안철수가 주요대상
꾸준히 터져나오던 '중진용퇴론', '중진 적진차출론'도 실체를 드러냈다. 혁신위는 문재인 대표에게 부산 출마를 요구하는 동시에, 2007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후 당 대표를 지낸 정세균 이해찬 문희상 김한길 안철수 의원에 "백의종군, 선당후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다만 각 인사들에 대한 요구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는 23일 정세균, 이해찬, 문희상, 김한길, 안철수 의원을 언급하며 “열세(劣勢) 지역 출마를 비롯한 당의 전략적 결정을 따라 달라”고 했다. 부산 등 야당세(勢)가 약한 지역에 출마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혁신위는 이날 국회에서 발표한 혁신안에서 이 다섯 명에 대해 “2007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후 우리 당을 이끌었던 전직 대표들”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범(汎)친노인 정세균, 이해찬, 문희상 의원의 지역구는 현재도 열세·경합 지역”이라며 “결국 비주류인 김한길, 안철수 의원을 향해 ‘총선 출마는 하되, 돌아오지 말라’는 최후통첩처럼 들린다”는 해석이 나왔다.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정세균 의원은 고향인 전북에서 4선까지 지내다, 2012년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겨 새누리당 홍사덕 전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그 전까지는 새누리당이 줄곧 당선되던 지역이다. 이 때문에 정 의원 측은 이날 “종로가 언제부터 우리 당 우세 지역이었냐”며 “당에서 전략적 판단을 해도 결국 정 의원이 출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친노 좌장이라 할 수 있는 이해찬 의원 측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 의원은 서울 관악을에서 13~17대 국회에 걸쳐 내리 5선을 했다. 18대 총선은 불출마한 뒤 19대 때 세종시에서 자유선진당 심대평 전 대표와 붙어 승리했다. 이 의원 측은 “세종시에 나가서 당선될 수 있는 야권 인사가 있느냐”며 “출마 여부는 우리가 정할 것”이라고 했다.
역시 범친노계인 문희상 의원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두 차례 비대위원장을 지냈다. 고향인 경기 의정부갑 지역에서 5선을 했다. 그러나 통상 경기 북부의 이 인근 지역은 여당 우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문 의원은 이날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친노계 전직 대표들은 옮길 필요가 별로 없는 것이다. 반면 비주류 좌장 격인 김한길 의원은 다르다. 4선 의원인 그는 15·16대에서 비례대표를 지냈고, 17대 총선 때 서울 구로을에서 당선된 뒤 19대 때 지역구를 서울 광진갑으로 옮겼다. "약세 지역으로 옮기라"고 요구받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김 의원 측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2013년 4월 보궐선거 때 출마해 지역구가 된 서울 노원병은 야당세가 강한 곳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이날 “지역 주민과 한 약속을 저버리라는 거냐"며 “혁신하라고 했더니 선거 전략만 짜고 있다”고 했다. 안 의원은 고향인 부산 출마 가능에 대해서도 “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당에서는 “결국 김한길, 안철수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기라는 얘기”라는 말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구색 맞추기를 위해 섞어놓았을 뿐 친노의 입지는 강화되고, 살생부에서 빠진 486운동권이 친노를 떠받치는 형국”이라고도 했다.
친노(친문) 486들은 빠져있고 호남,수도권표는 눈치
실제 이날 ‘열세 지역 출마 대상’에서 486 정치인 이름은 다 빠졌고 호남 다선 의원들도 빠졌다. 이는 친노(친문)주류 중심이 작성, 호남다선은 호남표를 인식하는 것으로 보였다. 작년 8월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던 박영선 의원이 제외된 것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박 의원 지역구는 야권 지지가 강한 서울 구로을이다. 이는 수도권 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혁신안에는 “공개적으로 탈당 및 신당 창당이나 합류를 선언한 사람은 당적을 박탈하는 것은 물론 어떠한 형태의 복당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천정배, 박주선 의원 등이 해당한다. 박 의원은 이날 “새정치연합은 결국 ‘문재인 1인 독당 체제’로 가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이해찬 전 대표에게는 최인호(친문) 혁신위원이 앞서 '백의종군'을 촉구, 이번에도 유사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486그룹'이나 '호남 3선 이상'에 대한 언급 등 지역이나 선수를 기준으로 한 일괄적인 쇄신요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486그룹'의 경우 '혁신안 실천에 앞장서 달라'는 내용이 포함될 뻔 했으나 최종 삭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 지탄받는 형사범' 등 해석 모호
일각에서는 혁신위가 내놓은 일부 기준의 경우 매우 자의적으로 적용될 여지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공천 배제대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형사범 중 금고 및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라는 항목은 해석하기에 따라 누가 포함될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어디까지가 국민의 지탄을 받는 행동인지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칫 '여론재판'으로 공천탈락 여부가 갈릴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조경태 의원에 대해서도 혁신위는 "당의 정체성을 흔들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해당행위자로,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이례적인 공개 비판을 쏟아냈다. 다만 일각에서는 "어디까지가 해당행위인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식을 접한 민주당때부터 오랫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해온 한 지지자는 말했다. “ 참 놀구들 있네,,,저게 새시대 친노(친문) 패권 인민재판이지 뭐가 인민재판인가? ”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