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명차? ‘폭스바겐’,기계조작 사기차로 추락중
美환경청 리콜명령 이후 줄소송
친환경 고급형 자동차 전략으로 고객 기만
독일 자동차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배출가스 조작파문으로 직면한 집단소송이 22일 최소 25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 환경보호청(EPA)이 폭스바겐의 디젤 차량에서 배출가스를 조작하는 장치를 달았다며 리콜과 판매중단을 명령한지 나흘만이다. 이처럼 빠른 시간에 집단 소송이 이어진 것은 폭스바겐의 고급형 친환경 전략 덕분이다. 집단 소송을 맡은 변호인들은 피해자들을 굳이 찾아 다닐 필요도 없다. 폭스바겐의 고급 디젤 차량을 가진 가족, 친구, 동료만 모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집단손해배상과 관련한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회사 '헤이건스 버먼'도 이번 집단 소송에 뛰어 들었다. 버먼의 스티브 버먼 공동 파트너는 EPA의 발표 소식을 듣자 마자 "폭스바겐 자동차를 구입한 지인들과 소송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버먼 파트너는 자신의 아들 2명에게도 폭스바겐의 디젤 차량을 선물했다며 "폭스바겐의 똑똑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이라는 이른바 '클린 디젤' 전략에 낚였다"고 말했다. 버먼 대표는 EPA의 발표 직후 사무실로 소송 관련 문의전화가 2000통을 넘었다고 덧붙였다.
버먼의 시애틀 법인은 EPA가 18일 관련 성명을 공개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처음으로 관련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버먼은 소장에서 폭스바겐이 자사 자동차의 연비와 배출가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로 고객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헤이건스 버먼은 일본 자동차 토요타의 대규모 리콜과 관련한 집단 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파문이 미국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폭스바겐의 본사가 위치한 독일은 물론 한국에서도 관련 조사가 시작되면서 이번 파문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폭스바겐은 전 세계에서 이번 파문에 연루된 자사 차량이 1100만대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폭스바겐의 주가는 이틀 사이 40% 가까이 빠졌고 EPA의 발표 이후 2거래일 동안 사라진 시가 총액만 300억달러(약35조5200억원)에 달한다. 또 증권 집단소송까지 이어지면 폭스바겐의 관련 비용은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날 수 있다. 증권집단 소송이란 기업의 허위 공시나 분식 회계 등으로 피해를 입은 소액 주주 중 한 명이 해당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경우 동일한 피해를 입은 나머지 주주도 추가적 소송 없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독일은 개인 주주의 증권관련 집단소송을 허용하지 않지만 기관 주주는 가능하다. 폭스바겐은 미국 주식시장에서 보통주를 상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권관련 집단소송은 아직 제기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 상장된 폭스바겐의 예탁증서 보유자는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폭스바겐은 이번 파문에 따른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3분기에 65억유로(약8조6100억원)을 준비금으로 마련했다. 폭스바겐은 이번 조작파문을 해결하기 위한 비용이 추후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EPA는 폭스바겐이 이번 조작으로 최대 180억달러(약 21조2400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 폴크스바겐 '문제 차종' 연비 재조사
한편, 우리 정부는 폴크스바겐 디젤승용차의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커지자 문제 차종에 대해 연비 조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정부가 자동차 연비 검사를 합격 처리했다가 재조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정부도 폴크스바겐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의 올해 연비 조사 대상은 21개 차종인데 이 가운데 폴크스바겐그룹의 아우디 A3, A7이 포함돼 있었다. 아우디 A3과 A7이 모두 국토부의 연비 조사를 통과했으나 최근 '배출가스 조작'이라는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에 이 점을 고려해서 국토부는 재조사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단은 배출 가스 문제이기 때문에 환경부와 협력하고 있다"면서 "문제가 있는 폴크스바겐 차종에 대해 이미 연비 조사에 통과했더라도 다시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도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에 대한 검증에 들어간다. 환경부 관계자는 폴크스바겐그룹이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속임수를 썼는지에 대해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면서 "문제가 된 차종의 배출가스가 어느 정도인지 국내에서도 검사해볼 계획"이라고 21일 말했다. 환경부는 내달 폴크스바겐 골프와 제타, 아우디 A3 등 3개 차종의 배출가스를 검증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의 배출 가스 조작과 관련해 미국 내 리콜 차량은 모두 유로 6 환경기준에 맞춰 제작된 차량으로 이 가운데 국내에는 이들 3개 차종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이다. 국내에서는 지난달까지 골프 789대, 제타 2천524대, A3 3천74대 등 모두 6천387대가 판매됐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이 전세계적으로 1천100만대의 자사 디젤차량에서 배출가스 차단장치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인정함에 따라 국내 대상 차량도 수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이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폴크스바겐그룹은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디젤 승용차가 검사를 받을 때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실제 도로에서 주행할 때는 이를 꺼지도록 했다가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적발됐다. 국내의 경우 폴크스바겐그룹의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28%에 달한다. 올해 들어 8월까지 폴크스바겐이 15.61%, 아우디가 12.56%다.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 1위는 BMW로 20.02%이며 메르세데스 벤츠(19.25%)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폴크스바겐 사태가 확산하자 국내 수입차 업계는 신뢰도가 동반 하락하면서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국내 수입차 디젤 모델 중 최다 판매 차종은 폴크스바겐의 파사트 2.0 TDI(854대)며 아우디 A6 35 TDI(795대), 폴크스바겐 골프 2.0 TDI(740대)도 시장을 주름잡고 있기 때문이다. 디젤 모델을 내놓는 BMW와 벤츠, 푸조 등도 향후 판매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폴크스바겐 사태로 수입차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 있어 몸을 낮추고 있다"면서 "특히 독일차 명성에 금이 가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토로했다. 현대기아차, 한국GM, 르노 삼성, 쌍용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계는 국내 시장에서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에 따른 이득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입차를 사려는 고객이 폴크스바겐을 사지 않더라도 다른 수입차를 구매하지 국산차로 시선을 돌리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국산차와 수입차를 사는 고객층이 달라서 폴크스바겐 사태로 국내 자동차 판매 시장에서 완성차 업체들이 보는 이득은 사실상 없다"면서 "다만 현대차처럼 해외 판매 비중이 큰 업체는 해외 시장에서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와 관련, 폴크스바겐 리콜 사태로 현대차그룹이 유럽과 국내에서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연구원은 "현대기아차가 누리는 반사이익의 규모를 산정하기에는 다소 이르지만 긍정적인 방향성만은 뚜렷하다"며 "특히 유럽과 국내에서는 반사이익이 확실시된다"고 분석했다.
최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