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국감증인 출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7일 오후 2시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신동빈 회장은 짙은 회색계열 정장에 보라색 타이를 메고 6층 국감장에 나타났다. 호텔 롯데와 관련된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표정은 밝았다. 신동빈 회장은 입장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해맑게 웃으며 국회의원들에게 인사했다.
신 회장은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 의원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인) 왕자의 난이 끝났는가”라는 질문에 “네 끝났습니다”라고 답했다. 호텔 롯데를 상장하는 과정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반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총괄회장에게 왜 롯데 호텔을 상장해야 하는지 설명했고 승인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일본 롯데를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전 부회장, 한국 롯데를 신 회장이 맡아서 분리 경영하는 것은 불가능한지 김 의원이 묻자, 신 회장은 “주주로부터 위임 받고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제가 경영하는 것이 훨씬 효과 있고, 주주가치를 올릴 수 있다. 분리 경영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동빈 회장에 쏟아진 질의 '수위는 낮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때론 밝고 여유 넘치는 미소로, 때론 긴장한 듯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국정감사를 무사히 마쳤다. 결과적으로 신동빈 회장과 롯데의 국감 예행 연습과 수비가 통했고, 신동빈 회장을 증인으로 부른 의원들의 질의는 참으로 무뎠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감 시작 6일째에 접어드는 17일 재계의 관심은 오전부터 신동빈 회장의 발걸음에 주목했다. 10대그룹 재벌 총수 최초로 신 회장이 국감에 직접 출석하면서 올해 국감 최고 '핫이슈'로 꼽혔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이날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은 신 회장 한명에게 의원들의 질의가 집중됐다. 다른 증인들은 대부분 병풍에 불과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중되지 못했다. 수많은 취재진과 국회 관계자, 업계의 눈과 귀는 살벌한 국감 현장에서 과연 신 회장이 어떤 표정과 자세를 보일지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그간 롯데그룹이 신 회장 국감 출석을 앞두고 의원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위가 약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은 적중했다.
"한일 축구는 어디 응원?" 등 이어지는 농담에 신동빈 '활짝'
당초 국감장은 신 회장에 대한 의원들의 송곳 같은 질문과 추궁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돌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졌다. 그러나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신 회장의 얼굴에선 파안대소까지 터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마디로 맥 빠진 모습이었다. 누군가 "롯데 로비력이 통했네"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의원들 질의 수위는 낮았다.
여야 의원들은 하나같이 그간 지적된 롯데그룹의 정체성과 순환출자 해소 여부, 베일에 싸인 지분 구조 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신 회장에 대한 신랄한 비난은 차치하더라도 거센 추궁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함께 출석한 신 회장의 가신(家臣)황각규 롯데그룹 사장의 조력도 필요 없어 보였다. 신 회장은 예상 질문에 대한 연습 효과 때문인지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해 쉽게쉽게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처음 국회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도 물을 마시거나 자리를 고쳐 잡는 등 꼿꼿한 자세를 보이곤 했다. 그러나 국감이 돌발 변수 없이 같은 질문의 반복과 가벼운 농담까지 계속되자 어느새 얼굴엔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옆 자리에 앉은 황 사장과 웃음 띤 얼굴로 대화하며 답변을 준비하기도 했으며 팔짱을 끼고 국감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특히 롯데그룹의 국적 논란에 대해 '한국 기업'임을 강조하다가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의 한일 축구 응원 질문에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자리에서 박 의원은 신 회장에게 "한국인으로서 한국 기업을 운영한다는데 한국과 일본이 축구 시합을 하면 한국을 응원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신 회장은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며 애매한 답변만 한 뒤 어이없다는 웃음을 보였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이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의 뉴스 편향성 등에 대해 거센 비난을 가하다가 질문의 화살을 신 회장에게 돌렸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왕자의 난' 종료를 묻는 다른 의원들 질문에도 미소를 잔뜩 머금고는 "그렇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롯데도 롯데 초코파이를 롯데마트 앞쪽에만 진열하진 않는다"며 "그렇지 않나요. 신 증인?"이라고 갑작스럽게 신 회장을 불렀고 신 회장은 짐짓 놀라는 듯 했다가 밝은 미소와 함께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국감이 속개됐을 때도 신 회장은 자신에게 주목된 카메라의 앵글과 사람들의 시선에 관계없이 환한 웃음으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의원들이 그를 '증인', '회장', '회장님'으로 호칭할 때도 엇갈린 표정 속에 간혹 웃음을 터트렸다. 신 회장의 웃음은 소리는 거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신 회장의 반응에 일각에선 "여야 의원들이 너무 살살 진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 한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의 다소 어눌한 한국말과 이해하기 힘든 웃음이 겹쳐져 국감의 팽팽한 긴장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꼬집었다.
신동빈, '친일', '자영업자 죽이는 롯데'…의원들 지적에는 '진땀'
그러나 신 회장은 간간히 쏟아지는 의원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지분을 98% 이상 갖고 있는 일본기업 광윤사 등의 주주 지분율을 공개하라는 여야 의원들의 압박에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굳어있었다.
앞서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신 회장이 등장하기 전인 오전에 "공정위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롯데그룹이 한국 기업인지 일본 기업인지 파악하는데 관심이 없었느냐"며 "광윤사, 일본롯데홀딩스, 12개로 이뤄진 L투자회사 등 일본기업이 신동빈 회장이 한국기업이라고 주장하는 호텔롯데의 지분 98%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런 회사의 지분과 주주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공정위가 지금껏 자료도 갖고 있지 못하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한 바 있다.
김태환 새누리당 의원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으로 가서 힘든 과정을 견디며 기업을 일구면서 오늘날의 롯데가 있기까지 열심히 했다"며 "그런데 두 아들이 경영권 다툼을 해 온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롯데그룹 직원들과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할 용의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신 회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할 용의가 있다"며 "죄송하다. 부끄러운 모습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입국 당시와 대국민 사과에 이어 세 번째 공식 사과다.
신 회장은 이어지는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문에도 굳은 표정으로 답변했다.
김 의원은 신 회장에게 "재벌들의 볼썽사나운 집안 싸움으로 문제가 됐다. 이러한 이유로 신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하며 기업 개선 및 문제가 된 순환출자 해소를 약속했다"며 "이를 지킬 수 있겠느냐"고 몰아붙였다. 이에 신 회장은 "대국민 사과에서 발표한대로 순환출자 해소 반드시 하겠다"며 "호텔롯데를 내년 상반기까지는 상장 시킬 계획으로 연말까지는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80% 정도를 해소할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이밖에 자녀들의 승계 문제, 증여세 납부 여부, 롯데시네마 매점 독점 문제, 특약매입 등 중소상공인에 대한 '갑질' 논란 등 롯데그룹의 각종 횡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질 때마다 신 회장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답변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체로 신 회장이 편안하게 답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의원들이 조성해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의원 관계자는 "팽팽한 긴장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신동빈 회장이) 예행 연습을 열심히 한 노력의 결과물이기 보다는 의원들이 질의 수위가 높지 않은 것 같다"고 답변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의 다소 어눌한 한국말과 이해하기 힘든 웃음이 겹쳐져 국감의 팽팽한 긴장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면서 "정평이 난 롯데의 대관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엄원지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