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당내갈등 갈수록 점입가경
문재인-당내중진 심야회동 '결렬’
새정치민주연합 중진의원들이 문재인 대표와 11일 밤 심야회동을 갖고 재신임 문제를 국정감사 이후에 논의하자고 요청했지만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박병석 의원은 이날 밤 9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약 두 시간 가량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문재인 대표와 회동을 가졌지만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중진의원들은 16일로 예정된 중앙위원회와 대표 재신임 투표를 국감 이후로 늦춰달라고 요청했고, 문 대표는 재신임은 미룰 수 있지만 중앙위 소집은 예정대로 해야 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중진 의원들이 공천혁신안을 논의하는 중앙위를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논의는 결렬됐다. 앞서 새정치연합의 3선 이상 중진의원 17명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약 두 시간에 걸쳐 국회 이석현 부의장실에서 회동을 갖고 문재인 대표 재신임 사태에 대한 해법을 고민했다. 5선의 문희상·이석현·정세균 의원, 4선의 김성곤·박병석·원혜영·신기남·이종걸·김영환·신계륜 의원, 3선의 오영식·강창일·주승용·최규성·김동철·신학용·이상민 의원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모임에 참석한 박병석 의원은 "중진들이 지금은 국민을 대변해 국감에 전념해야 할 때니까 당내 문제는 국감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석현 국회 부의장도 "국감 기간에 자동응답전화(ARS)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나중에 논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모았다"고 밝혔다.
문의 '재신임 불똥' 수습될 것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9일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과 관련한 기자회견 이후 '재신임 정국'이라는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헤매고 있다. 문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내 친노(친노무현)·주류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 등 비노(비노무현)·비주류는 재신임 정국이 조성된 이후 상대에게 반격에 재반격을 가하며 치킨게임식의 극심한 분열상을 나타내고 있다. 당내 중진들이 이같은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중재를 시도하고 있지만, 양측간 갈등의 골이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데다 오는 16일 혁신안 처리를 두고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설(說)만 무성하던 분당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시선마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천정배 무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론도 중앙위를 전후해 가시화될 것으로 보여 당내 원심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 대표는 9일 혁신안 중앙위 통과와 연계한 재신임 카드를 꺼낸 데 이어 11일엔 재신임투표를 13~15일 사흘간 전(全)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를 각각 실시해 하나라도 불신임을 당하면 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표의 이같은 행보는 최근 안 전 대표를 필두로 한 비주류가 혁신안에 대해 강도 높게 반발하고, 자신의 거취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신임' 카드로 정면 돌파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문 대표는 비주류가 자신의 재신임 카드에 '조기 전당대회 개최'로 맞불을 놓자, 11일 당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신임 투표시기를 예상(16일 중앙위 이후)보다 앞당겼고, 투표방식도 당초 거론했던 '전당원투표 50%+국민여론조사 50%' 안(案)에서 이를 각각 실시한 뒤 하나라도 과반을 넘지 못할 경우 사퇴하는 안으로 속도와 강도를 끌어올렸다. 이와는 별도로 부산지역 친노 그룹의 핵심인사로 꼽히는 최인호 혁신위원은 지난 10일 개인 자격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이해찬 용퇴론'을 촉구, 주류발(發) 인적쇄신론의 불씨를 던지며 비주류를 겨냥했다.
비주류도 문 대표의 일격에 허를 찔리긴 했지만, 가만히 있진 않았다. 그동안 '혁신 실패'를 앞세워 문 대표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해온 기세를 늦추지 않고 문 대표의 사퇴 및 조기 전당대회 개최 요구로 공세를 이어갔다. 비주류는 또 문 대표가 전날(11일) 다수의 최고위원들이 반대했음에도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재신임 투표시기와 방법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데 대해 개별 또는 그룹별 성명을 내고 "독선", "정당민주주의 위배"라고 하는 등 날선 비판을 쏟아 부었다.
양측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세균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한 범주류는 문 대표의 전격적인 재신임안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선 것을 넘어 문 대표의 결단까지 촉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지난 2·8 전당대회 때 문 대표의 손을 들어줬던 범주류가 사실상 문 대표의 사퇴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당내 역학구도마저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흐름이다. 당내 제 세력간 긴장감이 급격히 상승함에 따라 당내 중진들은 전날(11일) 긴급 회동을 갖고 '중앙위 소집과 재신임투표 등 당내 문제는 국정감사 이후 본격 논의하자'는 중재안을 제시하며 가열된 양측의 분위기를 가라앉히는데 주력했다.
중진들은 '재보선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문 대표와 전날 심야회동을 갖고 중재를 시도했지만, 문 대표가 재신임투표는 추석 전까지 연기가 가능하되 중앙위 소집은 연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꺾지 않으면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정치권에선 당내 제 세력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리고 있는 만큼 이번 ‘재신임 정국’이 해소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이르면 내주중, 늦어도 내주 주말께 가시화될 신당론과 겹치면서 양측간 갈등의 수위는 최고조로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3선 의원은 12일 "이미 서로가 어떤 말을 해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이번 갈등은 사실상 내년 총선 공천권이라는 민감한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어 어느 한쪽이 물러서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더욱이 혁신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문 대표 재신임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당은 구심력보단 원심력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내 신당파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재신임 정국'으로 인해 비주류는 사실상 (분당의) 명분을 상당히 축적한 셈"이라며 "문 대표가 안 전 대표와 천 의원이 9일 오전 회동하고 난 뒤 오후에 곧바로 재신임 카드를 꺼낸 것은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다만, 문 대표가 전날 중진들과의 회동에서 재신임투표 연기 가능성을 열어둔 것을 감안하면 추가 논의를 거쳐 이날중 극적인 합의를 도출할 경우, '재신임 정국'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