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밤샘접촉, 결론못내, 23일 오후3시 2차접촉 예정
남북은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 등으로 촉발된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22일 저녁부터 판문점에서 우리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고위급 접촉을 진행했으나 이번 지뢰,포격도발로 일어난 사태 해결과 관련한 최종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북은 고위급 접촉을 일단 23일 새벽 정회한 상태에서 서로 입장을 검토한 뒤 23일 오후 3시에 고위급 접촉을 재개키로 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23일 새벽 긴급 브리핑에서 "남북은 22일 오후 6시30분부터 23일 새벽 4시15분까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을 진행했다"면서 "남북은 오늘 새벽 4시15분에 정회했으며 쌍방 입장을 검토한 뒤 오늘 오후 3시부터 다시 접촉을 재개해 상호 입장의 차이에 대해 계속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고위급 접촉 의제와 관련, "이번 접촉에서 쌍방은 최근 조성된 사태의 해결방안과 앞으로의 남북관계 발전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고 밝혔다.
남북은 고위급 접촉을 정회, 재개키로 하면서 서로 조율한 발표 문안을 만들었고, 이를 민 대변인이 그대로 전했다. 남북은 고위급 접촉 초반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과 서부전선 포격도발, 북한의 지뢰도발에 대응해 우리가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우리측은 북한에 지뢰도발과 포격도발에 대한 사과·재발방지를 요구했을 것으로 예상되며 지뢰도발 등을 부인해온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우리측은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주의적 사안과 북핵문제 해결필요성 등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방안을 설명했을 것으로 보이며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의 중단을 요구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 5·24 조치 해제 문제를 제기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주요 사안에 대한 이런 입장차로 남북은 10시간 가까이 진행된 마라톤협상에도 불구하고 최종 합의문 채택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오후 재개될 고위급 접촉의 전망도 불투명하지만 남북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정회한 상태로 '서로간의 입장을 검토한뒤 상호 입장차이를 계속 조율'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합의문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남북간 대화가 이어지면서 지뢰도발(4일)과 이에 따른 우리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대북 확성기를 겨냥한 북한의 포격도발(20일)과 최후통첩 등으로 최고조로 치달았던 한반도 긴장 국면은 약간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문점 고위급 접촉에는 우리측에서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에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참석했다.
남북 고위급 접촉속 한미군은 워치콘 격상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대북 확성기 철거를 요구한 시한인 22일 남북 고위당국자접촉이 열린 가운데도 최전방부대에 최고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북한군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했다. 특히 합동참모본부는 한미연합사령부와 협의를 거쳐 대북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을 '3'에서 '2'로 한 단계 더 격상해 북한군 동향을 정밀 감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군은 북한군의 포격 도발 사건이 발생한 지난 20일 발령한 최고경계태세를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이라며 "북한군은 남북간 대화 중에도 도발을 해 올 수 있기 때문에 군은 만반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대북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을 3에서 2로 높여 북한군 동향을 감시하면서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대북 정보 판단·분석 요원들도 대폭 증강된 상태"라고 전했다. '워치콘 2'는 북한의 도발 위협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때 취해지는 단계이며 첩보위성과 정찰기, 지상 정찰장비 등을 총동원해 대북 정보 분석과 감시활동을 강화하게 된다. 군은 워치콘을 평상시인 '4'로 유지하다가 목함지뢰 도발 사건 이후 '3'으로 격상한 다음 이번에 또 '2'로 한 단계 더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5단계로 발령되는 워치콘은 평시에는 '4'를 유지하지만, 상황이 긴박해지면 점차 3, 2, 1로 단계가 올라간다.
북한은 대북 확성기 철거요구 시한(22일 오후 5시)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근처로 76.2㎜ 평곡사포(직사화기)를 일부 전개했다. 이 직사화기는 확성기 타격에 동원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군은 분석하고 있다. 이어 북한군 전방지역의 포병부대에서 갱도 속의 포를 밖으로 전개하고, 소속 부대(주둔지)에서 즉시 사격할 수 있는 개활 진지로 포를 이동시켜 사격준비를 마친 포병부대도 다수 관측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전방지역 북한군 포병이) 진지 전개를 한 뒤 사격훈련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며 "우리 군은 전방 북한군 움직임을 샅샅이 보고 있다. 거의 다 파악하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군은 남북 접촉 결과와 관계없이 당분간 최고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도 계속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난 4일 발생한 북한군의 지뢰도발에 대한 대응 조치"라며 "북측이 책임 있는 조치를 하지 않는 한 방송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21일 대국민 담화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뢰 도발에 따른 우리의 응당한 조치"라고 강조한 바 있다.
남북한 양측이 고위급 접촉 논의를 하던 전날 밤과 이날 새벽에도 군은 11개 지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은 포격도발 직후 국방부에 보낸 전통문에서 이날 오후 5시까지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며 이에 불응하면 '군사적 행동'에 나서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계속하자 북한은 전방 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전면전'까지 거론하며 군사적 긴장 수위를 끌어올렸다.
북한이 긴장 수위를 계속 고조시키자 최윤희 합참의장과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은 이날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군이 추가 도발에 나설 경우 한미동맹 차원에서 강력히 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합참은 "한미 합참의장은 한반도의 현 상황 평가에 대해 공감하고 앞으로 긴밀한 협의를 통해 북한의 추가 도발 억제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면서 "북한군이 추가 도발하면 한미동맹 차원에서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뎀프시 의장은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모든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공군은 북한이 대북 확성기 철거를 요구한 시한인 이날 전투기 8대를 동원해 한반도 남측 상공을 비행하는 대북 무력시위 기동을 벌였다. 우리 공군 F-15K 4대와 미 7공군 소속 F-16 전투기 4대 등 8대가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무력시위 비행을 했다. 이들 전투기는 정오께 강원도 동해 해상에서 서로 만나 경북 예천 북쪽 수십㎞ 축선에서 서쪽의 경기 오산으로 오후 1시까지 편대 비행을 했다. 전투기가 비행한 경로에서 북한까지는 전투기로 5~6분이면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북한 공군이 레이더로 전투기 기종을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 거리라고 군은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이번 비행은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응해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도발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미동맹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무력시위"라며 "북한이 충분히 위협을 인식할 수 있는 경로로 비행했다"고 설명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