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국회법’ 거부권 행사, (정치권 작심 비판)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위헌 논란에 휩싸인 개정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국회 재의 요구권)을 행사했다. 여야 정치권, 국회와 정면충돌을 불사하는 행정통치행위를 못박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위헌 소지가 있는 국회법을 충분한 논의도 없이 하룻밤 사이에 통과시키고, 일자리창출ㆍ경제살리기 법안은 3년 째 통과시키지 않은 채 서로 반목하며 정부만 비판하는 여야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는 청와대가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는다고 성토한 정치권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박 대통령은 특히 개정 국회법 통과를 주도한 “여당 원내사령탑”을 직접 겨냥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체제를 곤란하게 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 정부 행정입법 수정 권한을 강화한 개정 국회법을 거부하는 이유를 거듭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국회법은 국회가 사실상 정부 시행령 등의 내용까지 관여할 수 있도록 하고 법원이 아닌 국회가 시행령 등의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게 했다”며 “이런 점에서 정부 입법권과 사법부 심사권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국회의 입법권 남용을 지적했다.
또 “이는 사법권을 침해하고 정부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것으로, 역대 정부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안”이라며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야 함에도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다시 시도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회법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공무원연금법 개혁안 처리와 연계해 하룻밤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면서 “국회가 행정입법 수정 변경을 강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법을 통과시킨 여와 야, 그리고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통일되지 못한 채 정부로 이송됐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중재자를 자처한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가 행정입법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원안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바꿔 정부로 보낸 것에 대해 “요청과 요구는 국회법 등에서 같은 의미로 혼용해 사용되고 있다”고 말해 위헌성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이어 “야당에서는 여전히 강제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여야가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합의했다는 방증”이라며 “개정 국회법은 국가행정체계와 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는 엄정한 사안으로, 여야의 주고받기식 입법이나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진행할 사안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박 대통령은 정부의 민생 법안 처리 요구는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국회법 졸속 통과 등 정쟁에만 몰두한 여야를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는 정부 정책이 잘되어 국민들이 잘 살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정부와 정부 정책에 대해 끊임 없는 갈등과 반복, 비판만 거듭해 왔다”며 “일자리창출ㆍ경제살리기 법안들을 언제까지 통과시켜주지 않으면서 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또 “국회와 정치권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묶인 것들부터 서둘러 해결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며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그것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기가 막힌 사유들로 국회에서 처리 못한 법안들을 열거하는 것이 어느덧 국무회의의 주요 의제가 된 현실 정치가 난감할 따름”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1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고 이후 처리가 시급했던 영유아보호법과 무관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을 여야가 연계 처리하기로 했다가 후자인 특별법만 처리한 사례 *지방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법안과 행정부 목적예비비 집행을 연계한 사례 *관광진흥법과 무관한 내용인 최저임금법 처리를 연계하려 했던 사례 등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은 당리당략으로 묶어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은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언제나 정치권은 정부의 책임만 묻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정치 개혁을 다시 한 번 화두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 계신 분들이 당선되기 전에는 ‘다시 기회를 준디면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신뢰 정치를 하겠다’고 맹세에 가까운 말을 했고, 저도 그렇게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또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삶을 돌보는 것으로, 정치가 오직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런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 뿐이고, 국민들께서 선거에서 잘 선택해 주셔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도 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여당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며 “정치는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의 대변자가 되는 것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