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무엇이 문제인가?
올해 정부의 서민금융 지원 정책으로 개인 85만 명이 채무조정을 받았다. 정부 정책은 계속 확대돼 내년에는 구제 대상이 90만 명을 넘고, 내후년에는 1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빚 탕감’에도 서민들은 지속되고 있는 경기 불황에 따른 고용 악화 등으로 여전히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 등 서민금융 지원은 확대될 예정이어서 도덕적 해이 우려와 함께 대다수 서민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캠코, 신용회복위원회 등 각종 기관을 통해 우리국민중 85만명의 개인 채무를 줄여주었다. 이는 당초 예상했던 60만~70만 명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민행복기금을 포함한 서민구제지원사업이 생각보다 잘 진행돼 수혜자가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년에는 한국장학재단 채권매입을 통한 대학생 구제 등 대상자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말 시작된 행복기금의 경우 11월까지 26만4362명이 신청했고 23만1622명이 지원을 받았다. 연말까지는 지원받는 사람이 1만여 명 정도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행복기금의 또 다른 형태인 저금리 대환 대출 ‘바꿔드림론’은 올해 들어 지난 11월까지 5만2940명이 혜택을 봤다. ‘서민금융 3종 세트’인 미소금융(2만9191건), 햇살론(19만8578건), 새희망홀씨(17만2239건)의 저리 대출을 통한 채무 조정 수혜자만 올해 들어 11월까지 40만 명에 달한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과 개인워크아웃도 대상이 확대되면서 수혜자가 올해 말까지 9만7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보증기금의 지원도 연말까지 1만 명이 예상된다. 하우스푸어(내집빈곤층) 지원을 위한 은행권 자체 프리워크아웃과 경매 유예제도 활성화로 하우스푸어 2만여 가구가 지원을 받았다. 주택금융공사의 채무정리 특별 캠페인으로 2694명이 혜택을 봤다. 기술보증기금의 ‘재도전 기업주 재기 지원보증’도 74개사에 달했다.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도산한 중소기업의 연대보증 채무 조정도 올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정부는 1125명의 연체 정보 등 불이익 정보를 삭제했고 140명은 개별 채무 조정을 해주었다. 내년에 정부의 서민 구제는 올해보다 확대돼 93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행복기금의 경우 한국장학재단 채권매입을 통한 대학생 5만5000명, 민간배드뱅크 33만 명 등 대상자가 38만5000명이나 늘게 된다. 신용회복위의 사전채무조정 및 개인워크아웃은 10만 명, 기술보증기금의 재도전 기업주 지원보증은 90개사로 확대된다. 신용보증기금은 내년에 지원 대상을 1만1천명으로 늘린다.
서민금융 확대, 그러나 서민은 여전히 빚
정부의 서민금융에 대한 지원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서민들은 여전히 빚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 불황으로 고용 환경이 나빠져 일자리를 잃으면서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거나 고금리 대출에 내몰리는 상황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지난 10월 정부가 파악한 금융채무연체자만 351만 명,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1명 이상이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려 쓴 뒤 갚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에는 채무조정 등 금융지원만으로는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서민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기 불황에 고용 상황이 악화되면서 아무런 수입이 없이 빚만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대부분은 더 이상 은행에서는 대출을 받지 못해 제2, 제3 금융권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은행권의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 혜택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고, 이에 원금에 이자까지 계속 늘어나면서 불법 채권 추심으로 고통받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2013 가계금융·복지조사’에도 서민 가구의 부채는 잘나타난다.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부채는 5818만원으로 지난해조사보다 6.8%증가했다.
저소득층의 빚이 지난 한 해 동안 25% 가까이 늘었고, 재무건전성도 나빠져 서민의 살림살이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 특히, 소득이 하위 20%인 저소득 계층의 부채가 많이 늘면서 고금리 대출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빚을 진 10가구 중 4가구는 만기내 상환이 불가능하거나 영영 갚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장기 연체자의 채무를 낮춰 자활 의지를 북돋우고 이를 통해 구직까지 연결해 경제의 선순환을 유도하기 위해 채무조정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정부가 채무의 일부를 변제해 주는 셈이어서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불감증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는 계속 제기된다.
갚을 능력이 되는데도 고의적인 장기 연체를 통해 다시 채무조정을 받으려고 할 수도 있고, 자신의 재산은 ‘은닉’하는 얌체짓을 할 수도 있다. 앞으로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이른바 ‘버티기 채무자’가 늘어날 우려도 있다. 실제로 올해 미소금융의 연체율은 7%를 넘고, 햇살론 연체율은 10%에 육박하는 등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역차별의 문제도 있다. 빚을 갚기 버겁지만 없는 살림으로 원금을 꼬박꼬박 갚아나가는 성실 상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다. 신제윤 위원장은 12월23일 열린 서민금융의 날 행사에서 국민행복기금 등 개인 채무조정에 대해 “시행 초기의 ‘도덕적 해이’ 우려가 불식되고, 취약계층의 자활을 위한 의미있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행복기금, 또 다른 추심기관인가?
한편 일각에서는 국민행복기금이 채무자들을 쥐어짜면서 금융기관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국민불행기금’ 제도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금융정의연대 공동대표인 이광철 변호사는 최근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1121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조직위원회 주최로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가계부채 공약 평가 토론회’에서 “현 정부의 대표적 서민지원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이 채무자들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면서 금융기관의 이익만을 챙기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결국 국민행복기금의 적나라한 맨 얼굴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소득 계층을 10년 동안 빚 절반이라도 받아내고자 하는 채권추심업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행복기금이 저소득층 ‘금융피해자’의 채무를 면책해주고, 이들의 소득을 늘려야 할 판에 쥐어짜도 나올 게 없는 저소득층을 쥐어짜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는 게 이광철 대표 주장이다. 문제는 행복기금이 금융기관에서 일괄매입한 채권에 대한 관리를 23개 신용정보사에 맡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채무 조정 성과에 따라 22%의 수수료를 받게 된다. 이광철 대표는 “신용정보 회사들의 추심원들은 대부분 실적이 없으면 소득이 없는 개인 사업자 신분”이라며 “당연히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서는 채권추심액수를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배고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기준 금융위는 추심업체에 수십억원의 수수료를 지급했다. 당시 현재 위탁 추심수수료 지급현황을 보면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금융위가 23개 추심업체에 지급한 수수료는 20억7200만원이다. 자산관리공사는 과도한 채권추심을 한 경우에 수수료를 차감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등 벌칙을 적용한다고 밝혔으나 자산관리공사의 업체 현장방문은 월 1회뿐이다. 특히 23개 업체 중 4곳은 2011년 이후 ‘부당한 방법에 의한 채권 추심 업무’로 과태료 등을 부과받은 바 있다.
추심업체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는 건 은행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2018년 말까지 총 10조8000억원의 채권을 은행으로부터 매입할 계획이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실에 따르면, 회수율이 15%라면 채권 회수액은 1조6200억원이 된다. 여기서 사업비용 2700억원과 인수원가 4500억 원을 제외하면 수익 규모가 9000억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국민행복기금은 국가가 대부업자로 변신하고, 그 수익을 은행 등 금융기관에 나눠주는 방식이다.
금융기관은 총 3단계에 걸쳐 돈을 벌게 된다. 우선 국민행복기금은 시중가격보다 더 비싸게 채권을 매입했다. 부실 신용채권의 시중가격은 3%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국민행복기금이 매입한 9조9100억원의 채권 매입가는 평균 3.72%다. 이후 금융기관은 돈을 회수해 은행에 돌려주고, 만약 국민행복기금에 당기순이익이 발생할 경우 주주로 배당을 받게 된다.
금융정의연대는 △국민행복기금을 청산하고 공적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운영한 뒤 △금융기관 수익배분을 전면 금지한 뒤 이를 복지 재원으로 전환하고 △채무 조정대상을 채무 상황이 가능한 계층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철 대표는 “특히 세금으로 최저생계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채무 조정은 전면 금지해야 한다”며 파산·면책제도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금융위 이형주 서민금융과장은 “국민행복기금은 (채무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라며 향후 지원 대상을 대폭 늘리고, 취업·창업 지원 대출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형주 과장은 “애초 5년 동안 30만 명이 지원할 것으로 봤는데 올해만 24만 명이 신청했다”며 “지원자들의 연소득과 평균 채무액이 나온 뒤 언론과 금융기관에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형주 과장은 ‘국민행복기금이 저소득자를 쥐어짜 금융기관과 채권추심업체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관점의 차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행복기금은 정부 재정 사업이 아니고,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출연한 돈”이라며 “왜 은행에 돈을 주느냐고 하는데 더 많은 부실채권을 사오기 위해 금융회사의 손해를 최소화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심업체 위탁’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추심의 강도가 낮다”고 주장했다. 상당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한 가난은 국가도 구제하지 못한다” 라는 격언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노력해도 어쩔수 없는 시스템이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가경제 활성화는커녕 그것의 온기가 냉방에 체전해지지도 않는 저성장과 돈맥경화, 경제사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 이완구 총리처럼 국가지도자의 윤리마저 문제라면 정부신뢰는 없어진다. 경남기업 문제, 금융권과의 비리 커넥션도 짚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저축은행비리는 물론이거니와 아울러 서민들 울리는 “불법사금융”들도 문제지만 국민행복기금의 철학적, 정책적 문제들도 되짚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권맑은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