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외교장관회담-정상회담까지 험로, 한,미 사드문제 엇박자
지난 21일 한·중·일 3국 외교장관은 빠른 시기에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뜻을 모았다. 최근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한중 양국 간 갈등으로 비화된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는 왕 외교부장이 구체적 언급을 피해 일단 봉합됐다. 반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서서는 양국 외교장관 간 진전된 입장 교환이 있었다. 이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3국 모두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시다 외무상이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여러 차례 촉구했지만 왕 외교부장은 이보다는 역사인식을 언급하며 일본측을 밀어붙였다. 총론에서 정상회담 개최에는 합의했지만 각론에서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가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한국 측은 연내 3국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하고 있지만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음 달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이 예정돼 있고 8월에 과거사와 관련된 아베 담화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어 정상회담은 아베 총리의 연설과 담화 내용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드문제 수면아래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있었던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중국 측 왕 외교부장은 사드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왕 부장은 "우리 입장은 이미 여러 차례 말했다"면서 "모두가 아는 것이며 공개된 것"이라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에 따라 사드 문제로 불거진 한중 갈등은 봉합 수순으로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칙이 지배적이다. 이날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한중 양자회담에서 사드 문제는 의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언급이 없었다"며 "오후 3국 회담도 기본적으로 3국협력 복원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때도 사드 협의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앞서 이달 중순 방한한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사드 문제와 관련 "중국의 우려와 관심을 중요시해달라"고 공개 압박했고 우리 국방부는 "주변국이 우리 안보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해 양국 간 갈등 양상으로 비화하며 이번 외교장관회담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날 양자회담에서는 사드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사드 문제가 수면 아래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당국자는 "이날 한중 양자회담에서는 전반적으로 한중 외교장관회담은 양국 간 호혜적인 분야에서 관심사항을 주로 논의했다고 보면 된다"고 언급했다.
AIIB 진전
AIIB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 양국 외교장관 간 진전된 논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왕 부장은 한국의 AIIB 가입을 희망한다는 의견을 밝혔고 윤 장관은 "종합적으로 여러 측면을 감안해서 검토 중"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왕 부장은 회담 후 AIIB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미 한국 정부가 진일보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히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왕 부장의 '진일보한 연구'라는 발언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측은 그런 표현은 쓰지 않았다"며 "AIIB 가입 문제를 여러 측면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AIIB에 대해서도 언급을 자제해왔던 우리 정부에서 '검토 중'이라는 의견을 받은 중국 측 입장에서 한국의 AIIB 가입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중국 측이 민감한 현안인 사드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AIIB를 집중 거론한 것은 외교적 파장을 줄이면서 경제적 실리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사 문제는 난항
한·중·일 3국 외교장관은 그동안 과거사 문제 등으로 소원했던 관계를 복원하자는 데에는 큰 틀에서 합의했다. 그러나 왕 외교부장은 일본 측에 '역사 직시'를 요구하면서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시각차가 있음을 드러냈다. 이날 기시다 외무상은 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정세가 역동적으로 변화되고 있어 긴밀한 공조를 통해 3국이 직면한 여러 도전과 과제에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며 "조기에 정상회의도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도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은 전부터 일·한·중 정상회의의 조기 개최를 중시해왔다"며 "3국이 협력해 정상회의 개최를 위해 노력하자"고 재차 촉구했다.
그러나 왕 외교부장은 3국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공동발표문 외에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채 역사인식에 무게를 뒀다. 왕 부장은 외교장관회의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3국 관계 정상화는 8자의 글자로 요약된다"며 "그것은 정시역사 개벽미래(正視歷史 開闢未來·역사를 바로 보고 미래를 연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이 '정시역사 개벽미래'라는 표현은 2010년 3국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비전 2020'에 나와있다"며 "이에 대해서는 중국은 물론 일본도 인정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한,미 사드문제 엇박자
한편,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육군 대장)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DD·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를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미 합참의 데이비드 스틸웰 아시아담당 부국장(공군 준장)은 최근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미일동맹 관련 토론회에서 “뎀프시 의장이 26∼28일 방한 중 (최윤희 합참의장과) 사드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22일 보도했다. 이어 “사드는 지역방어의 핵심 수단으로 한국 안보에 더 기여할 수 있다”고 언급해 미 정부의 사드 한국 배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마틴 뎀프시 미합참의장
한국 군은 이를 정면 부인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사드는 이번 한미 합참의장 회담의 공식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양국 간 공식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양국 군 수뇌부가 사드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드 이슈’가 한미중 3국의 대형 안보 현안으로 부상한 만큼 뎀프시 의장이 비공식 의제로라도 사드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양국이 사드 문제와 관련해 딴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로버트 워크 미 국방부 부장관은 미국외교협회 주최 간담회에서 “사드 포대의 배치 문제를 한국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한국 측은 “어떤 협의도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올 2월엔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한국과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발언했다가 사흘 뒤 한국과 공식 협의나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고 번복하기도 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