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당국,경기부양 총력
한국경제 패턴-청년실업,고령화,소비풍조 일본 닮아가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지표와 소비패턴 등이 장기불황기의 일본을 닮아가는 원인으로 비슷한 인구분포와 산업구조를 꼽는다. 1990년대 일본을 휩쓴 경기불황 이면엔 '단카이세대', 즉 베이비부머의 퇴직 붐과 저출산 문제가 맞물려 있다.
수명이 늘면서 미래까지 불안해진 단카이세대는 저가상품 열풍에도, 금리 인하에도 꿈쩍하지 않고 소비를 줄이고 예금에만 돈을 꽁꽁 숨겼다. 여기에 유소년 인구 감소는 노인 비중만 기하학적으로 높은 결과를 초래, 성장이 정체된 일본의 현 인구구조를 가속화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저출산 문제를 모두 겪고 있는 한국의 현 상황은 일본의 20년 전과 정확히 겹친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달리 한국은 현재 '자산버블'이 없기 때문에 상황이 덜 절망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진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은 구조적으로 성장 잠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자산버블까지 겹쳐 단카이세대의 디플레이션 심리(물건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져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악순환을 겪었다"며
"그러나 한국은 정부가 밀어 붙이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고, 소비 마인드도 과거 일본만큼 침체된 것은 아니어서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잠재성장능력이 높아져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필요하다"며 "노동과 금융 등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내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쌍끌이 재정·통화정책으로 경기부양 총력
한편, 정부가 경제 흐름의 개선세를 본격화 하기위해 10조원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내놓았다. 정부당국은 기준금리 인하라는 통화정책에 발맞춰 재정정책도 확장적으로 운용해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생각이다.
금리 인하 발맞춘 재정 본격 투입…시너지 효과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경기부양책은 '빨간 불'이 켜진 경기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한국은행이 단행한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화답하는 성격도 짙으며 사상 최초 1%대 기준금리에 발맞춰 재정 정책을 최대한 확장적으로 운용해 재정·통화 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됐던 경기는 올초부터 각종 경제지표가 부진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낳고 있다.
지난 1월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1.7%, 광공업생산은 3.7% 각각 감소했다. 소비와 투자도 전달 대비 감소 폭이 3.1%와 7.1%에 달했다. 유가하락 여파로 1월과 2월 연달아 수출이 줄었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고용 사정까지 악화하는 중이다. 특히 2월 청년실업률이 11.1%로 1999년 이후 15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이에 정책 당국은 가용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일으키겠다는 방침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미 여러차례 소비와 투자 확대 등 유효수요 창출에 정책적인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임금 인상과 민간 투자사업 활성화 등을 거론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부양책에서는 재정과 공공기관 투자 등 공공부문을 최대한 확장적으로 운용해 경기 회복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재정집행·민간투자 유도 등 총 10조원 투입
이번 경기부양책은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과 공공기관 투자확대, 규제완화를 통한 민간투자 유도 등을 총 망라했다. 부양책을 통해 투입되는 규모는 재정 3조1천억원, 공공기관과 민간 투자 유도 6조9천억원 등 총 10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우선 상반기 재정집행규모를 당초보다 2조원 늘리기로 했다. 이로써 올해 상반기 재정 집행률은 58%에서 58.6%로 늘어난다. 지난해 발표한 46조원 정책 패키지 중 올해 상반기에 해당하는 집행분도 기존 규모보다 1조1천억원 늘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안전투자펀드 지원한도를 300억원까지 늘리고, 노후시설 개선 기업 등에게도 혜택을 준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재정 조기집행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주요 정책금융기관의 올해 정책금융도 상반기에 60% 조기집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로 했다. 정부뿐 아니라 공공기관과 민간부문에서 투자를 확대하도록 투자 프로젝트 발굴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지원한다.
공공기관은 유가 하락과 부지 매각 등으로 투자 여력이 있는 한국전력 등을 중심으로 당초 계획보다 연내 1조4천억원을 추가 투자하도록 할 계획이다. 산은과 민간기업의 매칭을 통한 지분투자 방식 기업투자촉진 프로그램 30조원은 올해 원래 계획보다 5조원을 늘려 총 15조원 규모로 진행한다. 여수 산단 내 신규 공장 설립, 경북 영양 풍력발전사업 착공 등 규제에 막혀 있는 현장 대기 프로젝트도 관련 법령을 바꿔 연내 5천억원 가량의 신규 투자를 유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민관 리스크 분담을 위한 새로운 민자사업 방식 도입 등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민간 여유 자금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 "소비·투자 살리는 마중물 역할 기대"
정부의 이런 대책은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올 정도로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이어 추가적인 재정 대책이 나오면서 유효수요 창출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는 시장의 '심리'가 중요하다"며 "정부의 노력이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를 개선시켜 현재의 완만한 경기 흐름이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에도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 확대로 인한 하반기 투입 재원의 감소를 신규 투자액이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4분기 경제 성장률은 세수 부족에 따른 재정 집행 차질 등의 영향으로 전 분기보다 0.4% 증가하는 데 그쳐 9개 분기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맞물려 소비와 투자 심리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성태연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전에 실물경제가 살아나야 하다"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을 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성 교수는 "공공기관이 투자를 확대하면 민간부문의 투자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유가하락으로 생긴 공공기관의 여력은 투자에 쓸 것이 아니라 공공요금을 낮추는 데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적했다. 대외 여건에 취약한 한국 경제의 특성상 세계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지지 않는 이상 정부의 이런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