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안보, 중국눈치 안본다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로 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사드 문제가 중국에 휘둘릴 경우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최악의 선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군 고위 소식통은 18일 “북핵 위협은 날로 고조되는데 중국 눈치를 보느라 한국이 사드 문제를 미적거린다면 미국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이 한국 방어를 위해 전략무기를 들여올 때마다 중국이 딴죽을 걸고, 북한이 ‘맞장구’를 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는 중국의 ‘사드 간섭’을 방치할 경우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이 더 노골화될 것으로 보고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다른 소식통은 “특히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한국 언론에 공개적으로 사드 배치 반대 뜻을 밝힌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은 다음 달 워싱턴에서 제7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고위급 회의를 열어 사드 문제 등 주요 안보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KIDD는 안보정책구상회의(SPI)와 확장억제정책위원회(EDPC) 등 다양한 한미 국방회의체를 조정 통합하는 차관보급 회의다.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가 각각 수석대표로 참가한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사드 문제의 주도적 결정을 공언한 만큼 미국과 본격 협의에 나설 것”이라며 “KIDD에서 사드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달 말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육군 대장)의 방한에 이어 다음 달 초에는 애슈턴 카터 신임 미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의 방한이 예정돼 있어 한미 외교국방당국 간 사드 문제에 대한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텍사스 주(3개 포대)와 괌 기지(1개 포대) 등에 총 4개의 사드 포대를 실전 배치 중이다. 1개 포대는 6대의 이동식 발사대로 구성되고, 각 발사대에는 8발의 요격미사일이 탑재돼 있다. 미국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3개 포대를 해외 미군기지에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2016년에 주한미군 기지의 총본산이 될 경기 평택시에 1개 포대가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머지 2개 포대는 미 7함대와 주일미군사령부가 주둔 중인 일본 도쿄 인근과 미군기지가 밀집한 오키나와,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중동 지역 등이 배치 후보지로 거론된다.
배치 및 운용 유지비 문제
한편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다음 달 중 미 국방·국무장관이 방한하고 미 워싱턴에서 한·미 국방 고위급 협의체 회의가 열리면서 고(高)고도 요격 미사일인 사드(THAAD)의 주한 미군 배치 문제가 처음으로 공식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는 외교가 아닌 안보 차원에서 사드 필요성을 검토하고 '우리 정부의 판단'에 따라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중국 측을 최대한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앞으로 사드 배치 지역과 규모, 비용 부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그래픽 캡쳐
국방부 주변에선 사드 포대가 경기도 평택 기지에 배치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드 배치의 주목적은 유사시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주한 미군 기지 및 시설·병력을 보호하는 것이다. 평택의 캠프 험프리엔 내년까지 용산 기지 내 주한미군사령부, 미 8군사령부 등과 전방 지역의 미 2사단 사령부가 모두 옮겨 온다. 명실상부한 주한 미군의 두뇌이자 심장부가 되는 것이다. 오산 기지 등에 배치돼 있는 패트리엇 PAC-3 미사일로는 북 탄도미사일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사드 배치를 통해 다층(多層)의 방어망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드 요격미사일 제원 및 배치실태.
일각에선 강원도 원주, 부산 기장 지역 등이 미군의 비공식적인 사드 배치 후보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부산 기장은 유사시 우리 원자력발전소를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배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드 배치의 최우선 목적이 주한 미군 보호이기 때문에 우리 후방 지역에 배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군 소식통은 "전면전 땐 우리 원전 보호 등을 위해 사드 증원(增援) 부대 일부가 후방에 배치될 수 있지만 평상시엔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한 미군에 64기가 배치돼 있는 패트리엇 PAC-2·3 미사일도 주한 미군 보호를 위해 오산·수원·왜관 등 미군 기지에 배치돼 있다. 배치 지역 결정에는 사드 레이더가 내는 강력한 전파 문제도 고려 요소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레이더는 수송기나 트레일러로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2만5344개에 달하는 송수신 소자(素子)가 쏘아대는 강력한 전파 때문에 2.4~5.5㎞ 내에 있는 차량과 항공기 전자 장비가 훼손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레이더 주변에 안전지대를 설치해야 한다. 인구 밀집 지역 인근에는 사드 레이더를 사실상 배치하기 힘든 것이다.
배치 규모는 1개 포대가 유력하다. 미군은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4개 포대를 미 텍사스 포트 블리스와 괌 등지에 실전 배치했다. 5번째 포대는 현재 실전 배치가 진행 중이며, 6번째 포대는 작년 제작이 발주됐다. 미군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미국이 조만간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 사드 포대를 배치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한국에 2개 포대 이상을 배치할 여유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미국은 유사시 남한 전역을 방어하려면 사드 2개 포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비용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드가 배치되더라도 주한 미군용이고 우리가 구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비용 부담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입장이다. 사드 1개 포대에 들어가는 비용은 1조~2조원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포대 기반 시설 건설과 운용 유지 비용 일부를 미군이 우리 측에 요구할 가능성은 있다. 정부 소식통은 "사드 배치 및 운용과 관련된 비용은 기존의 방위비 분담금 내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후속 외교조치 조정 잘해야, (중국, 청와대서도 사드 꺼낼 가능성)
사드 논란에 불길이 번지면서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 초점도 한중 관계로 옮아가게 됐다. 2012년 4월 이후 약 3년 만에 열리는 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과거사 문제 등 한일, 중일 관계였다. 하지만 사드 논란으로 주목 대상이 바뀌게 됐다. 특히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청와대 예방 때 이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도 있어 박근혜 대통령도 부담을 안게 됐다.
한미 간 사드 논의 본격화의 후폭풍도 예견된다. 지난해 한중 교역규모(2354억 달러)와 무역흑자(552억 달러)는 대미, 대일 무역량과 흑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만큼 중국은 한국을 겨냥한 경제적 대응 수단을 갖고 있다. 러시아도 사드를 반대하는 만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올해 중점 외교정책으로 정한 정부로서는 러시아의 협조를 끌어낼 대비책도 필요하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