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AIIB, 외무부-주체외교, 국방부-제목소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7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에 대해 "사드와 AIIB 문제는 사안의 성격과 본질이 다르다"면서 "사안의 성격과 본질에 따라 우리 국익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드는 한미간 공식적으로 협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고 현재로서는 이론적인 측면이 많은 반면 AIIB는 현재 협의가 진행 중"이라면서 "사드의 경우 현재 아무런 상황 변화가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사드 문제와 관련, "지금 특별히 어느 시점에 (미국이)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신호를 받은 것은,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없다"면서 "일부 여론의 관심이 지금보다 조금 더 차분하게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한중간 사드 입장이 대립되는 것과 관련, "서로 생각하는 측면이 다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동안 잘 유지돼 온 신뢰관계를 본질적으로 손상하거나 그럴 것으로 생각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AIIB 가입 결정 시기에 대해 "3월31일이 창설 멤버로 참여할 수 있는 시한인 것을 염두에 두고 할지 그와 별도로 할지 그런 것도 다 종합 판단에 들어갈 것이며 이 시점에서 시한과 관련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윤병세 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한일 국장급 협의에 대해 "7차에 걸친 협의를 통해 회담이 개최될수록 분위기 면이나 내용 면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은 있다"면서 "그러나 아직 어떤 결과를 예단하긴 이른 측면 있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현재 진행 중인 군 위안부 협의와 8월경으로 예상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새로운 담화, 이 두 가지가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라면서 "(아베 담화의 경우) 일본 정부가 발표할 내용이 과거 일본 정부가 발표했던 내용 중 핵심 사안인 식민지배·침략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만큼 새 담화가 발표되면 그런 공언이 진정성이 있다고 믿을 수 있게 충분히 주변 국가에 납득이 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발표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5월 러시아가 개최하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문제에 대해 "4월 중에는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외교일정 포함해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쿠바 관계와 관련, "우리가 쿠바와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시기적으로도 타당하다"면서 "이런 방향으로 가능한 좀 빨리 갈수록 양국한테 서로 도움이 되겠다 하는 인식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밖에 북핵 6자회담와 관련해 "(5자간) 공통인식이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보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이런 인식을 누가 북측에 한번 전달하면서 탐색적 대화라는 것을 한번 모색해 보는 것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성사 전망에 대해 "다자를 통해 화해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게 서로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있다는 인식을 점점 더 공유하게 되면 향후 적절한 시점에 정상회담 가능성을 우리가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간만에 제목소리
한편,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작심한 듯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관해 미 정부가 결정해서 협의를 요청해 올 경우 군사적 효용성과 국가안보 이익을 고려해 우리 주도로 판단하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가 최근 사드 논란과 관련해 ‘미 측의 요청도 없고 어떠한 협의도 결정도 없다’고 밝힌 ‘3NO’에 비해 진전된 입장이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 “주변국이 우리의 국방안보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방한 중인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전날 “중국 측의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밝힌 입장에 대해 우회적이지만 강한 어조로 반박한 것이다.
국방부는 류 부장조리의 발언 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라 강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의 압박에 ‘전략적 모호성’을 앞세워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군사주권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해 이를 적극적으로 차단하려 한 흔적도 엿보인다. 이날 외교부를 찾은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중국의 과도한 개입을 비판하면서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과시했다. 러셀 차관보는 기자들과 만나 “아직 배치되지도 않은 안보시스템(사드)에 대해 제3국(중국)이 주제넘게 거세게 항의하는 것이 별나다(curious)”고 밝혔다. 또한 러셀 차관보는 사드 배치와 관련 “언제 어떤 조처를 할지는 한국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셀 차관보의 발언은 중국의 불만 표출에 대해 반박하면서 우리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방부의 입장 정리에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사드 만큼은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이날 국방부의 대응을 두고 부처간 혼선을 빚기도 했다. 국방부 브리핑 직후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와 사전 조율이 없었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김 대변인의 발언 수위가 너무 셌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는 “중국을 상대로 대놓고 치받은 사안인데 청와대, 외교부와 조율하지 않은 메시지가 나갈 수 있었겠느냐”며 외교부 지적을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외교ㆍ안보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반발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불필요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NSC를 통해 정부 방침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경제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생존안보는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더 많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