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 일광공영 수사, 과거정권도 연루된 듯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11일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에 대한 압수수색과 이규태 회장의 체포를 시작으로 이 업체의 로비 의혹 수사를 본격화했다. 작년 11월 합수단이 출범한 이후 무기중개 업체를 정조준해 강제수사에 들어간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업계에서 명성이 높은 '메이저 업체'로, 합수단의 활동 개시 이후 수사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줄곧 제기돼 왔다.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
합수단은 소문 단계에 머물던 일광공영 로비 의혹을 뒷받침할 범죄 단서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첩보 수집에 집중해오던 합수단이 이 회장을 전격 체포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일광공영을 둘러싸고 제기된 각종 의혹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 업체는 경찰 출신의 이규태 회장이 1985년 설립했다. 국내 무기중개 업계 1세대로, 군이 해외 군수품을 국내로 도입하는 과정을 중개해 왔다. 큰 계약을 성사시키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중개 수수료를 챙기기도 한다.
수수료 지급 내역이 불투명한 경우가 많아 중개업체들이 이 돈을 세탁해 납품계약을 따내기 위한 로비자금으로 활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이 회장은 옛 소련에 제공한 경협차관 일부를 러시아제 무기로 상환받는 '불곰사업'에서 챙긴 중개 수수료 등 800만 달러를 회사 수익으로 처리하지 않고 빼돌린 혐의로 2009년 구속기소돼 1·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번 수사에서 합수단이 우선 주목하는 것은 일광공영이 중개한 1천365억원 규모의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도입 사업이다. 터키 무기업체 하벨산과 방위사업청 사이의 거래를 중개한 일광공영이 장비 가격을 부풀려 로비자금을 조성했는지, 해당 장비가 군의 요구 수준에 맞는 것인지 등이 수사 대상이다. 만약 업계에서 제기된 주장처럼 이 장비의 성능이 기대에 못미치고 책정된 납품단가가 부풀려졌다면 합수단은 다각적인 계좌추적을 통해 일광공영 측이 계약 성사를 위해 방사청과 군 고위 관계자 등에게 금품을 뿌렸는지를 집중 규명할 방침이다.
일광공영의 전자전 장비 관련 로비 의혹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례로 방사청이 군단급 정찰용 무인기(UAV) 능력보강 사업과 관련해 국방부 검찰단에 수사의뢰한 기밀 유출 의혹에도 일광공영이 연루돼 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이스라엘 업체 제품의 중개를 맡은 이 회장이 다른 경쟁사 제품에 대한 투서를 방사청에 보냈는데, 이 서신에 군 내부회의 내용 등 각종 기밀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합수단의 확인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이 회장과 일광공영의 로비 의혹이 증폭되는 것은 정부와 군 출신 인사들이 이 업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황들 때문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기무사 관계자의 아내가 일광공영 관계사에 근무하고 있고 전직 기무사령관 김모씨 역시 퇴임 후 일광공영 계열사 대표이사를 지낸 점, 방사청 사업부장을 역임한 예비역 준장 권모씨가 일광공영 자회사 고문인 점 등을 거론하고 있다.
방산비리합수단, 前 SK C&C 상무 체포
한편, 권모 전 SK C&C 상무가 방위사업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됐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예비역 준장 출신인 권 전 상무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11일 밝혔다. 합수단은 권 전 상무가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과 공모해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사기를 저지른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체포된 이 회장은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도입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려 리베이트를 조성하고, 군 작전 요구 성능에 미달하는 무기를 중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과거정권들까지 연루된 듯
일광공영이 군은 물론, 정권 고위층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 만큼 수사가 정ㆍ관계 로비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상한’ 사업 과정에는 일광공영과 국군기무사령부, 방위사업청의 커넥션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군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2006~2009년 방사청 기무부대 소속으로 방위산업체 담당 직원이었던 변모 서기관의 부인이 바로 일광공영 산하의 복지재단에 근무한 것도 의심받고 있다. 변씨는 당시 이 회장을 수시로 만나 방사청 및 업계 동향, 무기사업 진행 과정 등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11일 이 회장과 함께 체포된 권모 전 SK C&C 상무도 일광공영과 군 당국의 끈끈한 사이를 보여준다. 예비역 공군 준장인 권씨는 방사청 감시정찰사업부장으로 일하면서 EWTS사업을 담당하다 2007년 전역 직후 SK C&C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SK C&C는 L사와 경합 끝에 하벨산의 국내 협력사로 선정돼 500억여원의 수주액을 따냈다. 권씨는 현재 이 회장의 차남이 대표인 일광공영 계열사 일진하이테크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김영한 전 기무사령관이 일광그룹에 영입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김 전 사령관은 2010년 8월 일광그룹 산하 연예기획사인 일광폴라리스 대표에 올랐는데, 당시는 기무사가 일광공영 보안측정에서 내린 ‘부적격’판정을 6개월 만에 뒤집은 직후였다. 한 군 소식통은 이 회장에 대해 “30년 동안 정권을 넘나들며 권력의 후광을 업고 사업을 확장해 온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 시작돼 MB정부에서 마무리된 EWTS사업과 관련해서도 이 회장과 정권 실세들 간 유착관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