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만에 크루즈선, 쿠바 아바나항 입항
세계 최대 크루즈 선사인 카니발 사의 대형 크루즈선 '아도니아'호가 미국 마이애미에서 출항한 배로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57년만에 처음으로 아바나에 들어왔다. 배가 들어오기 전인 오전 7시 쿠바 아바나 항은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항구 근처 곳곳엔 벌써 나와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먼바다를 바라보던 한 시민은 "오전 7∼9시 사이에 배가 들어온다고 들어서 일찍 나왔다"며 "역사가 이뤄질 순간 아닌가. 내 눈으로 꼭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9시 2분께, 항구 왼쪽에서 아도니아 호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명으로 불어난 인파는 휘파람을 부르고 소리를 질러대며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페인트로 단장한 아도니아 호를 환영했다. 대형 쿠바 깃발은 물론 미국 성조기를 두르고 나타난 사람들도 있었다. 700여 명이 승선한 아도니아 호 갑판에서도 승객들이 줄지어 서서 손을 흔들며 '금기의 땅' 쿠바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항구로 들어온 아도니아 호는 약 3시간에 걸쳐 항구에 접안할 수 있도록 방향을 돌렸다. 애초 이만한 큰 배가 아바나 항에 정박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 부속선으로 승객들을 실어나를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아도니아 호는 아바나 항 '시에라 마에스트라 터미널' 옆에 무사히 자리를 잡았다.
오랜 기다림이 지난 오전 11시 50분께, 마이애미발 미국 크루즈선의 승객이 터미널의 어두운 통로를 통과해 마침내 쿠바의 햇살 아래 첫발을 내디뎠다. 길 건너편에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던 쿠바인들은 "쿠바 만세!"를 외치며 승객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배를 맞이하러 나온 아바나 시민 마리아나 멘데스(37)는 "이 짧은 거리를 지나오는 데 57년이 걸렸다"며 "쿠바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뻐했다. 터미널 맞은편의 산 프란시스코 광장에는 환영 인파는 물론 색색의 옷을 차려입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여성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몰려들어 자연스레 환영 공연이 펼쳐졌다.
배에서 내린 승객들도 감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미국인 여성은 눈물을 흘리면서 "놀라운 순간"이라며 "나는 쿠바인도 아닌데 이 순간의 아름다운 광경과 역사적인 감동에 압도돼 눈물이 나온다"고 연방 눈가를 훔쳤다. 이날 역사적 사건에 환호하는 인파 한쪽에선 작은 소동도 있었다. 다니엘 미란다(52)라는 남성이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미국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쿠바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자 주변에서 "어릿광대", "거짓말 마라", "돈이라도 받았나" 등의 야유가 쏟아졌다.
주변 쿠바인들과 목소리를 높여 논쟁을 벌이며 삿대질을 하던 이 남성은 곧 출동한 쿠바 경찰에 연행됐다.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쿠바 간 여행제한 조처를 사실상 해제했을 때 미국에서 배가 들어온 적은 있지만 쿠바와 지척인 마이애미에서 배가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아도니아 호는 아바나를 거쳐 시엔푸에고스, 산티아고 데 쿠바 등 쿠바의 다른 도시들을 들르고 일주일 후 마이애미로 돌아간다. 카니발 사는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아도니아 호를 쿠바로 보낼 예정이다.
국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