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국악으로 현지인에게 한국 문화 알리는 일에 앞장
(대전=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한 한국 친구가 '싸이가 이미 한국을 다 알렸는데 네가 뭘 더 알리냐'라고 농담 삼아 묻더라고요. 한국에 싸이 말고도 다양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더욱 한국적인 콘텐츠로 알리고 싶어요."
싸이를 비롯한 K팝 주역들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세계에 알렸다면 시조, 국악 등 한국 전통문화의 씨앗을 세계에 뿌리고 있는 단체가 있다.
미국 주류사회에 한국 문화를 전파하겠다는 목적으로 2003년 시카고에서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 '세종문화회'다.
28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하는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참가를 위해 방한한 박종희(루시 박·63) 세종문화회 사무총장은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전통문화가 친근한 방식으로 미국 주류사회에 전달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1967년 미국에 건너가 현재 일리노이 주립대 의과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세종문화회 설립 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지금까지 10년간 사무총장으로 실무를 도맡고 있다.
"2003년 무렵 미국에서 중국인들이 공자를 기리는 음악회를 여는 것을 봤어요. 미국 현지인뿐만 아니라 한인들까지도 많이 참석했죠. 공연을 보면서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대하며 우리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슷한 뜻을 가진 한인들이 모여 세종문화회를 탄생시킨 후 이듬해부터 매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세종음악경연대회를 열었다. 한국의 선율이 들어 있는 음악을 서양 악기로 연주하는 대회다.
2006년부터는 한국의 동화나 단편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세종작문경연대회도 시작했다.
"우리 전통문화를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은 이미 다른 분들도 하고 계시잖아요. 우리는 서양 사람들이 친근한 매체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어요. 바이올린, 피아노로 한국 멜로디를 연주하거나 한국 동화에 대한 글을 영어로 쓰는 식으로요. 미국 문화에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심는 것이죠."
2008년부터는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후원으로 작문경연대회에 시조 부문을 추가했다.
한글로도 짓기 어려운 시조를 영어로 쓸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규칙적이고 운율이 살아 있는 새로운 장르 '시조(Sijo)'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미국 내 영어 교사들을 대상으로 시조를 주제로 한 워크숍을 열고 교재도 제작해 학생과 학부모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알려지도록 했다.
"미국의 한 영어 선생님이 운동에만 관심 있는 남학생들에게 '시를 써보자'고 하니까 처음에 전혀 관심을 안 보였다고 해요. 그런데 '딱 세 줄만 쓰는 시'라고 하니까 조금 흥미를 보이더래요. 여기서 더 나아가 음절 수를 맞춰야 한다고 하니 굉장히 재미있어하며 시를 썼대요."
시조 대회 참가자도 처음 150명 정도에서 올해 1천 명 가까이로 늘었다. 미국 전역과 캐나다에서까지 참가하고 90% 이상이 비한인이다.
"일본 단시 하이쿠(俳句)는 미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어요. 하이쿠는 매우 짧아서 생각을 다 담기 어려운데 시조는 그보다 분량이 많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잘 쓴 시조는 종장에 반전의 묘미도 있고요."
세종문화회 설립 초기에는 뜻있는 동포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마련해 운영했지만 활동이 알려지면서 기업이나 기관에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박 교수는 "정부나 민간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시조를 비롯한 한국 전통문화가 좀 더 넓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더욱 활발히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28 07:2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