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지금은 은행업무를 제대로 배우기도 바쁘지만 나중에 인도에서 일하면서 한국기업들의 인도 진출도 돕고 네팔에도 한국의 금융노하우를 전하고 싶습니다."
인도를 여행하던 한국인 부인을 만나 2004년 한국에 온 네팔 출신의 한국인 박로이(35) 씨는 16일 "은행원이 되고 싶은 꿈을 한국에 와서 이뤘다"며 이렇게 말했다.
2007년 귀화한 박 씨는 지난해 4월 결혼이주민 특별채용 때 기업은행에 입사했고 1년3개월 만인 지난달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이태원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특별채용된 이들 13명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는 그가 유일했다.
그는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경기도 안산 등지에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근로자 연수가 있을 때마다 출장을 다니며 수많은 외국인 고객들을 유치했고 네팔 현지은행과의 환거래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 자못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일했던 서여의도지점이 마침 외국인근로자 초청 및 연수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중앙회 건물에 자리 잡고 있어 외국인 근로자 연수 때마다 출장을 갈 수 있었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은행업무가 힘들지 않으냐는 말에 "우리 은행은 무조건 7시에 퇴근해야 한다"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니 좋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 생활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한국사람들처럼 일하는데 익숙해졌다"고 덧붙였다.
기업은행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상담센터에서 1년여, 주한네팔대사관에서 약 2년간 일했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영어강사나 통번역 일도 했다.
그래도 덜 바쁘게 움직이는 네팔이나 인도가 그립지 않으냐는 물음에 그는 "젊은 시절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며 "나중에는 기업은행 델리지점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는 지금 막 인도에 진출하기 시작한 한국 중소기업들을 현지에서 도우면서 네팔에도 한국의 금융노하우를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아버지 세대에는 인도로 일하러 가는 이들이 많았고 그 역시 인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청소년기는 네팔에서 공부한 뒤 인도 델리대학으로 유학했다.
그곳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며 은행원이 되려는 꿈을 키우던 중 우연히 고향에 돌아가는 열차에서 부인을 만났고 한국에 와 은행원이 된 것이다. 네팔에서는 의사와 변호사와 함께 엔지니어와 은행원도 인기 직종에 속한다.
박 씨는 인도에서 태어나 공부한 덕분에 모국어인 네팔어와 자신이 속한 부족어인 셀파어 외에 인도 공영어인 힌디어와 영어에도 능통하다.
그는 "결혼이주민들도 자신들의 이중언어 능력을 잘 발휘하면 한국과 출신국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도 곧 인도로 보내 힌디어와 네팔어 및 영어를 익히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도와 네팔은 얼마 전까지는 신분증 없이도 국경을 오갈 수 있었고 지금도 신분증만 있으면 자유왕래가 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네팔어와 힌디어는 말은 서로 달라도 문자는 똑같이 쓴다.
박 씨는 창구에서 일하는 동료에게 미안하다며 서둘러 인터뷰를 마쳤다. 확인할 것이 있어 전화를 걸자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IBK(기업은행) 홍보대사'인 방송인 송 해 씨의 목소리가 컬러링으로 흘러나왔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16 15:0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