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 출범후 수정론자 득세…수정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4일로 발표된지 만 20년이 되는 고노(河野)담화가 계승과 단절의 기로에 섰다.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일본 관방장관의 발표를 통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이 담화는 역사의 진보로 여겨졌다.
또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하고 반성한 무라야마(村山) 담화(1995년)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했고 독일과 같은 철저한 전후청산을 거치지 않은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을 일정 부분 씻어줬다.
또 위안부 문제를 인권, 특히 전쟁시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도 국제적 흐름에 부합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상당수가 고노담화를 기념하기는 커녕 '자학사관'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역사책에서 뜯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고노담화가 나올 무렵부터 본격화한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와 2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패전국의 멍에를 떨치길 염원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재집권 등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이끄는 일련의 흐름 속에 고노담화에 담긴 '도덕'과 '양심'보다는 담화가 일본에게 안기는 책임이 더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12월 중의원선거,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잇달아 대승한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이 압도적 힘을 가진 현 상황은 고노담화를 더욱 코너로 몰아가고 있다.
2007년 1차 내각 당시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가 미국의 반발을 사면서 정권의 명줄을 스스로 단축했던 아베 총리는 작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때 고노담화 수정론을 폈지만 총리가 된 이후에는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다'는 제1차 아베 내각 때의 각의 결정을 고수하고 있는 아베 총리는 고노담화의 수정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런 정황은 자민당 참의원 선거 공약집에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반론 논거를 제공하는 연구기관을 신설하겠다고 명시한데서 일부 확인됐다. 지지세력인 보수층의 상당수가 원하는 고노담화 수정에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또 일본 보수세력의 '샛별'로 주목받았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는 지난 5월 '일본군 위안부가 당시에 필요했다'는 망언을 한 뒤 국제적 파문이 일고 당 지지율이 급락하는데도 끝내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미국 등도 전시에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했다며 '물타기'에 나서고, '국가의 의지에 따른 조직적인 강제연행을 입증하는 증거는 없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의 의지로, 조직적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했는지에 대해 고노담화가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며 고노담화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달 30일 미국 글렌데일시의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 행사는 아베 정권 입장에서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 됐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지극히 유감"이라고 밝혔고, 최대 발행부수의 보수신문인 요미우리는 1일자 사설에서 소녀상을 빌미로 고노담화의 수정을 주장했다. 신문은 소녀상이 설치되기까지 고노담화가 논거를 제공했다면서 "'성노예'라는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고노담화의 재검토가 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론으로 들어가면 고노담화가 수정될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인다. 우선 아베 총리로서는 1차 내각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수정주의를 섣불리 꺼내들었다가 정치적 치명상을 입은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또 6년전과 마찬가지로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류의 일본 정부 인식은 국제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
이와 관련, 미국 조야의 대표적 지일파 인사인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5월 도쿄에서 행한 강연에서 일본 정치가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발언해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위안부 문제를 건드렸다가 한국, 중국 등의 강한 반발을 삼으로써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미국 조야의 우려를 전한 것이었다.
고노 전 장관 본인도 지난 6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고노담화와 무라야마담화가 수정된다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소외될 것"이라며 경고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연립정권 파트너 공명당의 존재, 세력이 크게 약화하긴 했지만 고노담화 수정에 반대하는 일본 내부의 양심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
아울러 참의원 선거 2주전인 지난달 7일 마이니치 신문이 소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자민당 후보 중 고노담화에 대해 17%만이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했고, 45%는 '재검토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고노담화 수정 자체에 반대한다기보다는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자민당 내부에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03 12: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