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겪은 냉전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었죠"

posted Jun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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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겪은 냉전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었죠"

 

 
 

권헌익 교수, '또 하나의 냉전' 출간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세계적인 인류학자로 평가받는 권헌익(51)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가 냉전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첫 현지조사를 떠난 곳은 러시아 시베리아였다. 1989년 10월에서 1991년 4∼5월까지 이곳에서 구소련 시베리아 원주민 수렵사회 환경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그는 소련이 해체되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당시 유럽에서는 미디어는 물론이고 학계 전반에 걸쳐 이것으로 냉전이 끝났다고 간주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권 교수의 마음속에는 기초적인 의문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과연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해서 전 지구적으로 냉전이 종식됐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냉전의 공간성은 통일된 공간성인가? 그러면 시간성 역시 통일된 공간 속에 하나의 시간밖에 없는가?

 

권 교수가 2010년 컬럼비아대 출판사를 통해 펴낸 '또 하나의 냉전'(The other Cold War)은 냉전과 관련해 그가 오랫동안 천착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지적인 여정을 담은 책이다.

 

최근 민음사를 통해 한국어판을 낸 권 교수를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에 있는 민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유럽에서는 냉전이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이전 시기와는 구분되는 '오랜 평화'로 인식되는 반면 한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내 가족과 이웃의 목숨이 걸린 폭력적인 전쟁이었다"고 전제했다.

 

이러한 인식의 모순에 문제의식을 느낀 그는 유럽인들의 편협한 냉전 인식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가 냉전을 폭력의 시대이자 비공식 전쟁으로 경험한 한국인이기에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는 "냉전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냉전이 다수의 역사적 현실과 다양한 인간 경험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냉전의 역사에 안과 밖이 있다는 것, 즉 또 하나의 냉전이 있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며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 권 교수는 이 책에서 인류학의 핵심 조사방법인 참여관찰법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이 경험한 냉전이 실제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려 냈다.

 

그는 이 두 지역에서 세계 정치의 주요 이슈가 일상적인 공동체 생활에서 얼마나 친숙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알게 됐다고 말한다.

 

"냉전을 인간의 경험으로 보고, 그 역사를 죽은 이들에 대해 해결되지 않은 기억과 이웃과의 풀리지 않는 관계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지역 기반의 지속적인 역사들로 보게 된 것은 한국과 베트남에서 만나 함께 대화를 나눈 분들 덕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제주 4·3 사건을 통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폭력적 내전과 그에 관련된 반공주의 역사라는 형태로 경험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결국 냉전은 단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수많은 '또 하나의 냉전들'로 이뤄진 복합체라는 것이 권 교수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냉전은 끝났는가? 이에 대해 권 교수는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20세기 후반부에 국가폭력의 힘에 스러져 간 삶을 기억하고 애써야 한다. 냉전은 우리가 그런 비참한 삶과 그들의 썩어가는 유해의 역사에 주목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권 교수는 "냉전 인식뿐만 아니라 20세기 전체적인 역사 인식에서 타인의 역사 경험에 대한 관심이 부재한 것 같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역사거나 자기 중심적인 역사만이 존재하고 있다. 다양성 안에서 자신을 포함하는 시도가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권 교수의 이러한 지적은 편협한 역사인식이라는 잣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되묻게 한다.

 

그의 저서로는 베트남전 당시 벌어진 양민학살을 종교인류학적으로 접근한 '학살, 그 이후',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을 기록한 '베트남전쟁의 영혼', 북한 정치문화에 대해 정병호 한양대 교수와 공저한 '극장국가 북한' 등이 있다.

 

'학살, 그 이후'로 '인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기어츠상을, '베트남전쟁의 영혼'으로는 카힌상을 받았다. 그는 최근에는 한국전쟁의 새로운 연구 틀을 형성하고자 하는 '한국전쟁을 넘어서' 국제연구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changyo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18 1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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