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증세는 말장난 연결고리가 아니다
<기획>
많은 정책, 조세 전문가들은 최근 연말정산 논란과 어린이집 폭행 사태는 ‘복지지출을 크게 늘린다’면서도 ‘증세는 없다’는 모순된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없는 복지”를 언급했지만 서로 충돌하는 정책들은 각각의 정책효과를 상쇄하거나 이번 연말정산 논란처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근원적인 문제를 회피하는지 아니면 무슨 정부 나름대로 묘수가 있는지는 스포츠닷컴이 알수 없지만 정부정책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짚어 보기로 한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정책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목표한 만큼 세수가 안 걷혀 매년 약10조원의 세수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과세·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정부지출 축소 등 당초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고 있는 것이 아직 거의 없다. 그럼에도 복지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새로운 제도 도입 없이 현 제도만 그대로 유지해도 그렇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계층에게 적용하는 ‘보편적 복지’를 일부 저소득층이나 꼭 필요한 계층에게 적용하는 ‘선별적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또 복지국가의 비전을 실현하려면 국민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해 ‘고세금 고복지’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은 ‘저세금 저복지’냐 아니면 ‘고세금 고복지’냐를 선택할 문제지, 세금도 안 늘리고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라는 점이다. 때로는 진실이 불편하기도 하다.
◆ 비과세·감면과 지하경제 양성화, 이해관계자 반발·기업 아우성에 막혀…정부지출 축소는 경기활성화 위한 확장재정에 굴복
기획재정부는 2013년 5월 31일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지원 실천계획(공약 가계부)’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국민행복연금(기초연금) 도입에 18조8000억원,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확대 11조8000억원,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체계개편 6조3000억원, 자녀장려금 및 근로장려세제 도입 5조원 등 140개 공약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총 134조8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대선 공약 때부터 세율을 인상하거나 세목을 신설하는 직접적인 증세 없이 공약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기재부는 구체적으로 비과세·감면을 정비해 18조원을 조달하고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2000억원, 금융소득 과세강화로 2조9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정부지출을 절감해 84조10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비과세·감면 항목을 줄여서 세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은 현재까지는 거의 달성하지 못했다. 정부는 비과세·감면 항목을 정비해 총 18조원 중 작년말까지 1조9000억원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올해 초까지 4000억원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기재부가 비과세·감면을 대폭 축소하는 세제개편안을 마련해도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국회 통과과정이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연말정산 대란사태에서 보듯 아예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종교인 과세처럼 수십년 동안 추진해도 어려운 과제가 있다. 올해목표 4조800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기대난망이다. 2017년까지 18조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3년이란 시간이 남았지만 목표액에 크게 미달할 전망이다.
정부는 또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직후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세무조사를 강화했고 이를 통해 세금을 거둬들였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3년 세무조사를 통해 부과한 세금은 7조6196억원으로 전년대비 31.5% 급증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징수하기 쉬운 법인사업자(기업)에 세무조사가 집중돼 2013년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는 5128건으로 전년대비 12.7% 증가했다.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 부과세액은 6조6128억원으로 33.9% 급증했다. 이 때문에 ‘무리한 세무조사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국세청은 지난해 9월 국세행정의 기조를 지하경제 양성화에서 경제활성화로 전면 수정했다. 130만명의 중소상공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올해 말까지 유예하겠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2013년에는 지하경제 양성화 목표(2조7000억원)를 초과 달성(3조2000억원)했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지하경제 양성화 목표는 5조5000억원, 올해 목표는 6조원이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지출도 총 84조1000억원 줄이겠다고 했지만 이해 관계자들의 저항과 확장재정 등의 이유 때문에 일부 예산은 오히려 늘었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은 지난해 1조7000억원, 올해 2조7000억원 등 2017년까지 총 11조6000억원을 줄일 계획이고 농림 분야에서는 올해 1조3000억원 등 총 5조2000억원을 줄일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일 국회를 통과한 '2015년 예산'을 보면 SOC 예산은 당초 정부안보다 4000억원이 늘었고 농어촌 사업 예산은 2843억원 증가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부 예산은 늘었지만 전체 지출 감소분이 총 수입 증가분보다 2000억원 많기 때문에 재정수지는 좋아졌다"고 말했다.
◆ 연간 10조원씩 세수펑크에 ‘꼼수 증세’…현 제도 그대로 두면 복지예산 급증
세금 수입은 매년 목표치를 밑돌고 있다. 기재부가 이달 20일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연간 목표 세수 대비 징수실적인 세수진도율은 지난해 11월까지 87.5%에 그쳤다. 이는 8조5000억원의 세수결손을 기록한 2013년 같은 기간보다 1.8%포인트 낮은 수치다. 정부는 지난해 세수를 216조5000억원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예상치보다 11조원 이상이 덜 걷힐 전망이다.
쓸 곳은 많은데 세수가 부족하다 보니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환급액 감축 등 ‘꼼수 증세’를 했다. 정부 관계자는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이 없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증세가 아니다”며 “담뱃값 등 세금이 늘어난 것은 세증(稅增)”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부가 말장난을 하고 있다”며 성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복지 예산은 지난해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115조원에 달한다. 이들 예산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노후생활 보장’으로 잡은 예산은 작년 2조3000억원에서 2017년엔 6조원으로 늘어난다. 무상보육과 무상교육 확대에 필요한 예산도 올해 2조6000억원에서 내년에 3조3000억원으로 늘고 2017년엔 3조4000억원이 필요하다.올해 약 10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기초연금 예산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30년엔 50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증세 없는 복지’ 불가능…“저세금 저복지냐, 고세금 고복지냐?”
전문가들은 ‘증세 없는 복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를 중단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선택적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증세를 통한 복지보다는 선별적인 복지로 돌아서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불필요한 어린이집 이용을 유인하는 체계에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만 5세까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구에 매월 10만~20만원을 지급하고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가구엔 매월 약 20만~4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가구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전업주부들조차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정작 맞벌이 부부는 어린이집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정부는 전업주부는 가급적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게 지원을 늘릴 계획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한계가 있다는 공감대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며 “한번에 바꾸긴 어렵겠지만 결국 선별적 복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세금을 늘리지 않으려면 복지도 적은 예전 수준을 유지하든지, 복지를 확대하려면 국민들을 설득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며 “결국의 저세금 저복지냐, 고세금 고복지냐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충되는 정책은 합리적이지 않고 결과도 좋지 않다는 점이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