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2013년 7월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한 요양소에서 정신지체 3급 장애인 A씨가 숨졌다. 사인은 소식(小食)에 의한 영양결핍이었다.A씨는 그 해 6월 말께부터 제대로 앉지 못하고 밥을 삼키지도 못해 죽으로 연명할 만큼 건강이 나빠졌지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했다. A씨를 요양소에 맡긴 가족들도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A씨의 죽음은 묻힐 뻔했지만 작년 미신고 요양시설에 대한 경찰의 단속에서 이 요양소가 적발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운영자 맹모(56)씨는 A씨가 음식물을 점점 먹지 못해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서도, 심지어 사망하기 사흘 전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도 A씨를 병원에 옮기지 않았다. 맹씨는 오히려 경찰에서 "A씨의 처가 '남편이 죽을 때까지 돌봐달라'고 했고 '가족들도 신경 쓰지 않는데 죽어도 어쩔 수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이 요양소가 사회복지시설로 신고되지 않은 무허가 시설이어서 당국의 관리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맹씨는 2012년 10월부터 작년 4월까지 그곳에 있던 다른 지체장애 1급인 B씨가 받던 기초생활급여를 월 15만원씩 떼어내 총 285만원을 가로챈 사실도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B씨는 다른 지체장애인 서너명과 함께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에서 이른바 '앵벌이'까지 나가고 있었다. B씨 등은 카세트로 종교음악을 틀어놓고 다리에 고무 튜브를 낀 채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행인들을 상대로 구걸했다. 온종일 구걸해 번 돈은 7만원 남짓이었다.
B씨 등이 이렇게 벌어들인 돈 중 절반은 김모(64)씨에게 돌아갔다. 김씨는 B씨 등 지체장애인을 차에 실어 데려다 주는 대가로 하루에 1인당 3만5천원씩 챙겼다. 그러나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볼수록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애매했다. 요양소 운영자 맹씨도 손발이 뭉툭해지는 희소병을 앓는 장애인이어서 거동하는 것이 힘들었다. 앵벌이를 시킨 김씨도 다리 하나가 없는 장애인이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오히려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사회의 허술한 복지체계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장애인들이 결국 의지할 이는 같은 장애인인 맹씨와 김씨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판에서는 A씨가 영양결핍으로 사실상 굶어 죽은 것을 두고 맹씨가 고의로 A씨를 죽게 내버려뒀는지가 쟁점이 됐다. 법원은 고심 끝에 이들에게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서울동부지법은 25일 유기치사와 업무상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맹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을, 장애인복지법 위반으로 기소된 김씨에게는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맹씨에 대해 "병원과 가족에게 A씨의 위급함을 알리는 등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유기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B씨를 별다른 대가를 받지 않고 보호했던 점 등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김씨에 대해서 재판부는 "장애인을 이용해 개인적인 이익을 취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지만 김씨가 장애인들을 협박·강요해 구걸하게 하지 않았고 장애인들도 처벌의사가 없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