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문화재연구원 발굴.."고구려 색채 농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92년 삼국시대 산성이라 해서 사적 372호로 지정되긴 했지만 그것을 처음 만든 시기와 주인공을 알 수 없던 서울 양천고성(陽川古城)은 최소한 7세기 이전 삼국시대에는 존재한 산성이며 더구나 고구려 색채가 농후한 성곽임이 드러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울문화재연구원(원장 양윤식)은 서울 양천구청 의뢰로 유적 정비 차원에서 양천고성 중에서도 남쪽 성벽 일대를 시굴조사한 결과 늦어도 6세기말-7세기 초반 무렵에는 이미 한 차례 대대적으로 수리한 흔적이 있는 고대 성곽임을 확인했다고 13일 말했다.
이번 조사결과 2번 트렌치(시굴조사 지역)에서는 비교적 잘 다듬은 돌을 '品'자 모양으로 최대 6단까지 성벽을 쌓아올렸으며, 그 바깥에는 안쪽 성벽이 밀려남을 방지하기 위한 별도의 성벽 보완시설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4번 트렌치에서는 최대 15단까지 돌을 들여쌓기 한 성벽이 노출됐으며, 그 안팎에서도 성벽 보완시설이 드러났다.
특히 5·6번 트렌치에서는 치성(성벽 바깥으로 돌출한 시설)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드러난 데다, 이곳에서는 고구려 색채가 짙은 성벽 구조를 보였다. 예컨대 옥수수 낱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은 방식에서는 고구려적인 특징을 농후하게 보였다.
양천고성 성벽 |
한국성곽 전공인 자문위원 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은 "이런 고구려계 성벽은 양천고성을 처음으로 축조할 때 사용한 성 쌓기 기법이 아니라 이미 있던 성벽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임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출토유물이나 성벽 구조로 보아 양천고성은 7세기 이전에 성벽이 있었고, 그것을 삼국시대에 한 번 고친 다음 고려시대에 또 한번 대대적으로 수축했다"고 말했다.
이것을 처음으로 쌓은 주체는 백제인지, 혹은 신라인지는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다.
성벽 내부나 바깥 보강층에서는 백제, 혹은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기와와 더불어 백제토기일 가능성이 큰 굽다리접시가 출토됐다.
양촌고성은 강서구 가양동 산 4-7번지 일원의 궁산(해발 74.2m) 정상 주변을 빙 둘러가며 쌓은 석성으로 현재 남은 성벽 길이는 동벽 29m, 북벽 156m, 서벽 84m, 남벽 110m, 전체 379m(면적 약 6천806㎡)다.
한강 하류 바로 남쪽 인접 지점에 위치한 양천고성은 한강 건너편으로 행주산성을 마주한다.
양천고성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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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13 15:3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