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주택대출 금리' 현실-가계부채 더욱 증가
서울에 사는 맞벌이 직장인 김모(37)씨는 전세 기간 만료를 앞두고 요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해 이사할까 고민 중이다. 재계약 시기를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4천만원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은행에 대출을 문의해보니 전세자금은 금리가 연 3.6% 내외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반면 신규 매매 주택담보대출은 금리가 3% 정도에 불과했다.
김씨는 "낡은 아파트에 전세 살면서 집주인과 싸우는 것도 지긋지긋하다"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워낙 싸지다 보니 이참에 대출을 받아 작은 아파트라도 살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로 급증한 가계부채가 대출금리의 추가 하락으로 새해 들어서도 증가 속도가 줄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활비나 사업자금으로 쓰는 생계형 주택대출도 크게 늘고 있어 우려를 더하는 상황이다.
*가계대출 작년 대부분 주택담보대출 역대최대 증가
18일 금융권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12월 은행의 가계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총 406조9천억원으로 전달보다 6조2천억원 늘었다. 한국은행의 관련 집계가 2008년에 시작된 이래 역대 최고 증가폭이다. 가계대출은 지난 7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데 이어 9월 재건축 연한 완화 등 부동산 규제완화책을 내놓으면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8월과 10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해 역대 최저 수준인 2.0%로 낮춘 것도 대출 증가에 영향을 줬다.
이에 따라 지난해 1년간 은행 대출을 통해 늘어난 전체 가계 빚은 37조3천억원으로 전년(23조3천억원)의 1.6배에 달했다. 특히, 은행권 가계 대출 증가에는 주택담보대출(35조5천억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저금리와 규제완화의 영향이 지속된 가운데 신규 분양 호조에 따른 중도금 대출 수요 등이 가세해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2%대' 주택담보대출 등장…"대출 더 늘어날 것"
그러나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3% 금리 선이 무너지면서 주택대출 증가 속도는 새해 들어서도 줄지 않을 전망이다. 3년 후 변동금리로 전환하는 외환은행의 고정금리대출 최저금리는 지난 6일까지 연 3%를 넘었으나, 7일 2.98%로 떨어진 후 매일 하락세를 이어가 15일에는 2.85%까지 내려앉았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고정금리대출도 새해 들어 2%대로 내려앉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 낮출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올해 들어 시장금리가 하락세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갈수록 더욱 싼 값에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보니 지난해 사상 최대 증가폭을 보인 가계부채가 증가속도를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자 가운데 주택 구입 이외에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 용도로 대출받는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해 LTV와 DTI 규제를 완화한 이후 대출 한도가 늘면서 생활자금 등을 위한 추가 대출이 많이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 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1년간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188만여명의 차주 자료를 분석한 결과, LTV·DTI 규제완화 전에 37%였던 추가대출 비중은 규제완화 후에 42%로 상승했다. 반면, 대출금 용도에서 최초 주택구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1%에서 47%로 떨어졌다.
주택담보대출은 크게 늘었는데 주택 이외 자금으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은 자가주택을 보유한 중산층이나 서민이 생활자금, 학자금, 사교육비, 사업자금 등에 사용하기 위해 빚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영업자 등의 생활자금 용도 대출은 애초 목적이었던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면, 차주의 상환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금리 오르면 원리금 상환 부담…소비 더욱 억누를 것"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급증이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주 요인이라고 지목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거시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소득이 정체되고 부채가 가계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출금리가 더 떨어지면 가계부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향후 금리가 올라가게 되면 늘어난 가계부채가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돌아오면서 소비를 더 위축시킨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질임금이 정체된 상황에서 추후 이자 부담이 늘면 가계살림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완중 연구위원은 "정부가 부채의 질을 개선한다며 고정금리로의 전환을 유도했지만 실제로는 혼합형(일정 기간후 변동금리 전환)이 많이 판매됐다"며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부채 구조가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멈추지 않고 폭증하는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작년초 금융위의 업무보고에는 가계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넘지 않게 해 증가속도를 정상화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며 "이런 정책 기조가 새 경제팀 출범 이후 LTV·DTI 규제 완화로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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