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우즈벡 난민 1호 주바이도바 롤라 씨

posted Jun 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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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우즈벡 난민 1호 주바이도바 롤라 씨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고향에 가지 못해 슬프지만 한국에 와 있는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나 결혼이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0년 우즈베키스탄인으로는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난민 자격을 취득해 한국에 살고 있는 주바이도바 롤라(43.여) 씨는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평소 난민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일이 없지만 가끔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냐고 묻는 사람들 때문에 난민임을 자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00년 가을 처음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다. 당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이들의 한국행이 이어질 때였다. 롤라 씨 가족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어 일단 관광비자로 한국에 왔고 이후 체류기간이 늘어났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남한은 우리의 원수, 북한은 우리의 친구'라고 선전할 때였지만, 직접 보고 느낀 한국은 생각보다 살 만했고 사람들도 친절했다.

 

롤라 씨 부부는 2005년 모국에 돌아갔다 다시 온 뒤 다니던 교회의 도움으로 신학대학원에 다니게 됐다. 이것이 뒷날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게 될 이유가 될 줄은 몰랐다.

 

누군가 부부의 신앙생활과 언행을 정부 당국에 일러바쳤고 이런 사실을 모른 채 2008년 고향에 돌아갔던 남편이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남편은 여러 차례 경찰에 불려다니다 2009년 다시 한국에 올 수 있었고 비자 기한이 만료되는 2010년 봄 부부는 함께 난민 자격을 신청, 그해 가을에 자격을 취득했다.

 

우즈베키스탄은 본래 이슬람 국가지만 구소련 시절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 않았다.

 

1991년 구소련 해체 이후 미국과 캐나다, 한국 등지에서 선교사들이 우즈베키스탄에 몰려왔고 그 영향으로 기독교에 귀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롤라 씨 부부도 그랬다. 지금 롤라 씨는 다니는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고 남편은 목사 안수를 받았다.

 

롤라 씨는 평소 교회에 나오는 외국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민 또는 그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해결해 준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 법원이나 출입국사무소 등에서 우즈베키스탄인 관련 사건에 대한 통역 요청을 받기도 한다.

 

공식 업무 외에도 임금 문제나 부부갈등으로 다투다 전화로 불시에 그에게 통역을 요청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난데없이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나 경찰하고 통화할 때면 동포들의 처지가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 여건이 되면 남편과 함께 한국에 와 있는 우즈베키스탄인들을 위한 쉼터 겸 문화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롤라 씨는 "한국인 남편이 화를 내는 이유를 몰라 무섭다며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며 "한국 사람들도 우즈베키스탄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남편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것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바깥 일이나 집안일, 심지어 육아에서도 남편의 몫이 크다는 점이다. 집안일과 육아를 거의 아내에게 맡기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에게는 한국인 남자들이 좀 무뚝뚝한 편이니까 살살 달래가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2년여 기간을 난민으로 살아온 감회를 묻자 롤라 씨는 "어렵다고 보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일 즐겁게 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인 막내딸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단다.

 

 

kjw@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11 15:3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