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무형 알코올질환전문병원협의회 회장·다사랑중앙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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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의존 치료를 받고 6년간 단주에 성공한 이씨. 그는 최근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아 투병 생활 중이다. 오랫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고 건강을 지켜온 그에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술은 1급 발암 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TO)는 술을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하고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역시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과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함께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다.
1급 발암 물질이란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된 물질이다. 시멘트에서 나오는 방사선 물질인 라돈과 오래된 건물 먼지에 포함된 석면가루와 같이 술이 우리 몸에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을 지녔다는 의미다.
알코올의 경우 인체가 흡수한 발암 물질을 녹여 점막이나 인체 조직 등에 쉽게 침투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알코올이 몸에서 흡수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아세트알데히드 역시 DNA의 복제를 방해하거나 직접 파괴하는데 이때 만들어진 돌연변이 세포의 일부가 죽지 않고 끊임없이 분열해 암세포로 변한다.
또 술을 마실 때 간은 물론 구강 점막, 침 등에서도 알코올을 분해하기 위해 아세트알데히드가 생성된다. 이 아세트알데히드가 장기에 접촉할 경우 암이 발생할 수 있고 몸을 따라 이동하면서 구강에 남게 되면 구강암, 간에 남게 되면 간암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술과 암 발병률과의 상관관계는 이미 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돼 왔다. 실제 하루에 50g(대략 주종별 보통 잔으로 5잔) 정도의 알코올 섭취를 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암 발생의 위험이 2∼3배까지 증가한다.
음주는 간암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다. 알코올을 많이 마시게 되면 간에서 지방 합성이 촉진되고 에너지 대사가 이뤄지지 않아 지방간이 쌓이게 된다. 지방간이 심해지면 염증이 발생하거나 간세포가 파괴되고 더 심하면 알코올성 간경변증, 심지어 간암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알코올은 대장 세포를 손상시켜 대장암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한대장항문학회에 따르면 맥주를 한 달에 15리터 이상(하루에 알코올 30g 이상, 대략 주종별 보통 잔으로 3잔) 계속 마시는 사람은 대장암에 많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을 마셨을 때 얼굴이 빨개지는 등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 술로 인한 대장암 발병 위험도가 6배 높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알코올과 유방암 역시 관련이 매우 높은데 음주가 유방암의 위험인자인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의 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매일 맥주 한 잔을 마실 경우 유방암의 위험률이 3∼4% 정도 높아지므로 매일 가볍게 술을 마시는 여성들에게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술을 마실 때 술과 직접 접촉하는 부위인 식도와 구강, 인후두는 더욱 위험하다. 이들 암은 상대적으로 흔하지는 않지만 소량의 음주만으로도 발병 위험률이 높아진다. 실제 하루 한 잔 정도의 가벼운 술(알코올 12.5g)만으로도 식도암은 30%, 구강암과 인후두암은 17%가량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술을 먹었다고 해서 모두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술을 오랫동안 많이 마실수록 암에 걸릴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즉 이 씨의 경우처럼 단주에 성공해 최근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도 이전에 마셨던 음주로 인해 뒤늦게 간암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술을 많이 마셔왔던 사람이라면 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술을 많이 마셔 왔더라도 단주를 했을 때 알코올로 인한 암 발병률은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그동안의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단주 후 암 발병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술은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음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느니 하루 한두 잔의 음주는 암 예방에 좋다는 생각도 많다. 하지만 술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암 예방과는 무관하다. 현재까지의 수많은 연구를 종합해 보면 암 발생에는 적정 음주량이란 없으며 한 잔의 술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술자리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많다. 술자리를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바른 음주 습관을 통해 알코올 분해가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술자리를 갖기 전에 식사해서 배를 채우고 술을 마실 때에는 물을 자주 마시는 등의 작은 습관이 술에 의한 암 발생 위험을 상당히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가 많은 연말이야말로 술이 1급 발암 물질이라는 경고를 가볍게 흘려 듣지 않는 태도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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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표 기자 su1359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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