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원권 2억5천만원어치 정밀 위조…한은 추산 국내위폐 90% 혼자 만들어
슈퍼ㆍ철물점서 사용 거스름돈 챙겨…가게 주인 할머니에 들켜 덜미 ?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방현덕 기자 = 5천원짜리 지폐 2억5천만원 어치를 대량 위조해 무려 8년 동안 생활비 등으로 써온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5천원권 수만장을 위조해 상점 등에서 사용한 혐의(통화위조 및 사기)로 김모(48)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5년 3월부터 최근까지 8년에 걸쳐 5천원권 5만여매(2억5천만원 어치)를 위조해 슈퍼마켓이나 철물점 등에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기도 성남에 있는 자택 인근에 작업실을 차려놓고 위조감별 체계가 허술한 5천원짜리 구권만 위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업실에서는 위폐 제작에 필요한 노트북, 프린트기, 제단기 등의 설비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는 지폐를 단순히 컬러 복사하는 방식 대신 앞뒤 면을 따로 출력해 붙이면서 홀로그램 효과를 넣고 일련번호 일부를 일일이 고치는 등 정밀 수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5천원권 위폐는 200장당 15시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가짜 지폐 대부분을 전국 각지의 구멍가게를 돌며 사용했다. 껌 한 통을 사면서 위조한 5천원권을 건네고 잔돈을 거슬러 받는 수법이었다. 가게 주인에게 들킬까봐 일부러 구겨 사용하기도 했다.
경찰은 김씨가 이렇게 사용한 액수만 2억2천만원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5천원짜리 위조지폐 수만장이 8년간 시중에 유통됐지만 경찰과 금융당국은 용의자를 찾기가 여의치 않았다.
이 위조지폐는 홀로그램은 물론 뒷면에 비치는 율곡 이이 선생의 그림자 효과까지 구현돼 일반인의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어 한참이 지나고서야 은행에서 발각됐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해서인지 김씨가 만든 지폐는 진짜와 아무리 대조해봐도 알아채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은행에서 적발한 5천원짜리 구권 위조지폐 4천438장 가운데 90%가 넘는 4천239장을 김씨가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신원섭 한국은행 발권국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해당 위폐 일련번호들은 오랫동안 잡히지 않아 그간 조심하라고 홍보해 왔던 번호"라며 "앞으로 5천원 구권 위조지폐가 상당히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8년을 희희낙락하며 살아오던 김씨는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구멍가게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잔돈을 바꾸려다 주인 할머니의 신고에 덜미를 잡혔다.
그곳은 그가 지난 1월에도 위조지폐로 껌 한 통을 산 다음 거스름돈을 챙겨 달아난 곳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주인 할머니가 은행에서 위폐라는 사실을 통보받고 지폐 일련번호를 적어뒀다가 이번에도 비슷한 남성이 동일한 일련번호의 지폐로 물건을 사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며 "할머니의 기지로 신출귀몰한 위조지폐범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업실패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자 범행을 계획, 챙긴 돈을 주로 가족 생활비에 쓴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날 취재진에 "정상적으로 일해 월급받으면 모두 차압을 당하는 상태인데다 아이가 천식을 앓아 돈이 필요했다"며 "처음엔 조금만 만들어 사용하려 했지만 점점 액수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07 15:3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