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출간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1932∼2007)가 쓴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새롭고 독창적인 책이다.
폴란드 출신의 기자 카푸시친스키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를 접한 것은 기자생활을 시작한 직후 외국으로 첫 취재를 떠날 무렵이었다.
당시 그가 몸담고 있던 기관지 '젊은이의 깃발' 편집장이 비행기에서 읽으라며 선물로 건넨 책이 바로 '역사'의 폴란드어 번역판이었다.
헤로도토스는 10여 년 간 몇 차례에 걸쳐 당시로는 경탄할 만한 긴 여행을 했다.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을 정리했고 각지의 지리와 문화, 역사 등 온갖 지식을 아울러 불멸의 고전 '역사'를 남겼다.
카푸시친스키도 평생 낯선 공간, 미지의 세계를 떠돌았다. 카푸시친스키는 해외 특파원으로 세계 50여 개국에서 취재를 담당하면서 27번의 혁명과 쿠데타, 12번의 대규모 전쟁을 기록했다.
이 책은 '21세기의 헤로도토스'인 카푸시친스키가 그의 멘토이자 '저널리스트의 원조'인 헤로도토스와 나눈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담고 있다.
카푸시친스키는 이 책에서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인용하면서 그 장면이 갖는 의미와 현대 사회와의 연관성을 냉철하게 되짚는다. 이를 통해 2천5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역사'가 가진 불변의 가치와 보편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21세기 기자가 체험한 다양한 스토리를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가 기술한 문화적 맥락을 통해 이해하고 반대로 기원전 5세기에 발발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20세기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면밀하게 분석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헤로도토스는 카푸시친스키가 되고, 카푸시친스키는 헤로도토스가 된다.
아울러 이 책에는 카푸시친스키 개인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가 30여 년의 세월 동안 인도, 중국, 이집트, 이란, 아프리카 대륙, 그리스를 오가면서 몸소 체험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저널리스트로의 삶, 그 애환과 환희가 진솔하게 드러나 카푸시친스키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은 르포르타주(보고기사)이면서 역사책이기도 하고 기행문이면서 회고록이기도 하며 철학적인 단상을 담은 에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명언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길로 힘겹게 걸어가고 있지만, 결국엔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순례자이다."
이 책은 전 세계 17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이탈리아에서 '모란테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가 무려 140여 권에 달하는 참고문헌을 토대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성은 옮김. 크림슨. 448쪽. 2만5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06 11: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