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배당 로드맵' SC, 금융당국·靑·국회 로비의혹
SC은행 "3000억 미만 배당" … 한국철수 의구심
지난해 이후 외국계 금융사들의 수익이 크게 쪼그라들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져 글로벌 금융시장의 침체에 본사 사정이 급해진 외국계 은행들은 그간 쌓아둔 이익금을 한푼이라도 더 보내려 한다. ‘한국시장에서 짐싸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비례해 논란이 거세지는 이유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관계자는 1일 “현재 배당을 계획하고 있으며 금액은 3000억원에 훨씬 못미칠 것”이라면서 “정확한 금액은 내년 3월 주총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본적정성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리되기까진 우여곡절이 있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C은행은 한때 1조원이 넘는 배당을 하는 것도 시나리오 중 하나로 검토했다. 그간 누적된 이익과 캐피털과 저축은행을 매각한 금액 등이 포함된 액수다. 하지만 이를 접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검토하다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미 그 안은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최근 SC은행에 대해 종합검사를 벌이고 있다.
‘1조원 배당’은 일단 헤프닝으로 끝났다. 문제는 외국계 은행의 ‘먹튀 논란’과 당국의‘주먹구구식 대응’이 이어지면서 소모적인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당은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내에서 이뤄진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SC가 당초 검토했던 1조원대의 배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사정이 좀 다르다. 금감원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배당은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과도한 배당은 자본 적정성에 문제를 줄 수 있어 감독대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본을 쌓아둬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기준을 어느 수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는 통상 국제기준 이상으로 당국이 정하는 ‘권고 기준’이 적용된다. 은행 업황 전망을 고려한‘정성적 판단’도 개입된다. 이러다보니 외국계 은행들은 이사회 결정에 앞서 배당액을 금융당국에 알리고 사실상 ‘승인’ 받는 절차를 거친다. 금감원이 검사 과정에서 확보한 SC의 연초 ‘배당 계획’ 문서에 금융당국을 향한 설득 작전과 여론전 계획이 포함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고배당’ 비판에 대한 외국계 금융사들의 항변도 이어지고 있다. SC은행측은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해 한국에 진출한 이후 4조6000억원을 투자해 9년 반동안 3010억원을 본사에 배당했다”면서 “연간 수익률로 따지면 약 0.7%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박진회 신임 한국씨티은행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한국씨티은행의 배당성향이 낮았기 때문에 배당 여력은 굉장히 높다”고 우회적으로 고배당 논란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아시아 국가에 진출한 글로벌 은행들의 배당성향은 평균 29%로 국내(18%)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홍콩(42%), 싱가포르(41%) 등 금융허브들은 40%를 넘어선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배당에 대한 감독당국의 지나친 간섭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이라면서 “금융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이라면 금융회사에 맡겨 놔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계 역시 민감한 시기에 대규모 배당을 계획하면서 논란을 자초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이후 외국계 은행들의 실적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SC은행의 당기 순이익은 2008~2009년 4000억원대에서 지난해 1169억으로 반토막이 났다. 급기야 올해는 3분기까지 114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거액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한 영향이다. 구조조정에다 대규모 배당 계획이 나오면서 이들이 철수 준비를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당국내에서도 싹트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SC측은 이를 일축했다. 아제이 칸왈 SC은행 행장은 “투자자에 배당을 통해 수익을 돌려주는 것도 한국에서 은행 사업을 계속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SC, 금융당국·靑·국회 로비의혹
SC그룹이 1조원이 넘는 고배당을 위해 만든 로비 계획에는 금융당국은 물론 청와대와 국회의원까지 아우르는 치밀한 계획이 담겨 있다. '고배당 로드맵'인 셈인 이 계획서를 보면 올 4월엔 자스팔 빈드라 아시아 CEO와 아제이 칸왈 은행장이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만나고, 5월엔 권태신 한국SC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감원 수석 부원장 및 영향력 있는 고위층을 비공식적으로 접촉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또한 6월엔 존 피스 SC그룹 이사회 의장이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접촉하고 7월엔 피터 샌즈 그룹 회장 등이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기획재정부 부총리 등 고위층 인사를 만나는 등 고액 배당을 성사시키려는 광범위한 로비 계획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피터 샌즈 회장과 자스팔 빈드라 아시아 CEO 등 그룹 임원들은 이 일정에 따라 7월에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 등 정부 관계자와 만나는 등 계획안을 이행했다. 7월 이후 계획은 없지만, SC그룹은 지속적으로 한국을 찾아오고 있다. 최근에는 존 피스 이사회 의장이 방한해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를 접촉하고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는 이렇게 확보한 인맥을 써먹을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언론이 고액 배당에 부정적이거나, 감독당국이 명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합병계획승인을 거부하는 등의 방법으로 방해할 경우 정부 내 최고위급 인사 (가령 청와대) 등에게 호소하고, 당근을 더 많이 제시하라는 식으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한국SC은행의 사외이사들을 활용해 정부 고위 당국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접근한다는 표현도 들어 있다는 점이다. SC그룹은 화려한 경력의 한국인 사외이사진을 갖추고 있다. 한승수 전 총리가 2010년부터 SC그룹의 비상임 사외이사로 선임됐는데, 한 전 총리는 SC본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SC은행에선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장관급)이 이사회 의장으로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정기홍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과 이광주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이사), 건교부 차관을 지낸 김세호 전 철도청장도 SC은행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른바 '관(官)피아'들이 대거 SC은행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SC그룹은 권태신 의장의 역할에 특히 의존하고 있다. SC그룹은 보고서에서 금융당국과 적극적으로 접촉할 인사로 피터 샌즈 회장, 자스팔 아시아 CEO와 함께 권태신 의장을 꼽고 있다. 또한 고배당 성사를 위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감원의 정기감사 전 또는 후 언제 배당 관련해 금융당국과 논의를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포함돼 있는데, 여기에서도 '권태신 이사회 의장이 본인의 커넥션을 활용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권 의장은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을 만나 SC그룹의 배당 필요성 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권 의장은 "투자자에 대한 배당은 당연한 것으로 그에 대한 필요성을 당국에 설명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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