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感에서 나오는 디자인"- 대한민국 귀금속 가공' 박창순 명장

posted Nov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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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년간 귀금속공예에 魂을 바쳐


강이환 기자/스포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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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순 명장>

 

박창순 명장은 지난 2000년에 기술 분야 최고의 기능인인 올해의 대한민국 귀금속가공 명장으로 선정되었고, 1999년에는  귀금속대상(노동부장관상)을 수상, 신지식인 인증을 받았다.

 

또한 2002년 WGC(세계금협회) 주최 “GOLD VIRTUOSI 2” 공모전에서 응모된 5098개의 디자인 가운데 최종 당선된 34개 대상작 중 하나인 이주희씨의 디자인을 작품으로 제작하기도 했으며, 한국장신구디자인공모전 특선을 비롯하여 익산 전국귀금속디자인공모전 금상, 귀금속공예 대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귀금속보석학회편집위원 기능대회 심사위원과 출제위원, 감독관으로 활약하며 한국주얼리산업연합회자문위원 귀금속보석기술협회 이사와 디자인협회 이사를 맡아 귀금속공예 발전에 앞장서는 한편,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직업진로특강을 통해서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강의도하고 또한 인천재능대학교에서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박창순 명장이 귀금속공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77년 그의 나이 20세 때이다. “농촌에서 학업을 하는 것 보다는 남이 갖지 않은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갰다고 생각해 배우게 됐다..” 고 한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기술을 배워야 장래성이 있을 것 같아 배우게 되었다는 박 명장.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금은방이라 해서 굉장히 화려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정집 방에서 서너 명이 망치로 두들기고 갈아대는 걸 보니 좀 실망이 되었다.” 고 한다.

 

그래도 기술을 배워야 미래에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하나로 작업도구를 잡고 깎고 갈고 하는 과정에서 그는 금속가공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년 정도 열심히 배우며 일했으나, 부도가 나자 사장이 월급도 주지 않은 채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미래가 불확실하게 되면서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을 했다.

 

“80년대는 일자리 구하기가 지금만큼 힘들었지요. 중간에 다른 일을 잠깐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망치를 잡고 담금질을 하고 줄로 갈고 땜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친구의 소개로 최대의 귀금속거리인 명동으로 진출하여 ‘신화사’에서 새롭게 기술을 익혔다.

 

“인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좌우명대로 36년간  귀금속 공예인으로 일관해 온 박창순 명장. “인내가 부족했으면 이 일에서 떠났을 겁니다. 오랜 세월 하다보면 싫던 것도 좋아진다는 것을 느겼다” 고 한다.30여년 계속하다보니  명장이 되서 기쁨과 함께 보람을 느꼈고 기능인으로서 긍지를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명장이 된다는 것은 기능인들에게는 최고의 영광이다. 박 명장은 귀금속공예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이기에 힘든 과정을 참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인기질을 타고난 그는 작품에 그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박 명장의 손끝에서 자연의 꽃과 풀, 나비와 돌, 물이 작품으로 태어난다. 갖가지 보석이 꽃으로, 잎으로, 줄기로, 나비와 잠자리와 벌들로 살아나 자연의 한 자락으로 다가온다. 보석으로 표현해 낸 자연은 광채를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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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디자인입니다. 나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주제로 삼아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담아보려 합니다.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주고,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그리고 메말라가는 우리네 마음을 풍요롭고 밝게 만드는 그런 모습을 담아보려 했다.”

 

어릴 적 섬진강 변에서 소를 먹이며 보아오던 들꽃과 잔디와 물 등을 떠올려 자연 위주의 디자인을 주로 해왔다. 박창순 명장은 오로지 수작업으로 작품위주의 주문생산만 한다. 핸드메이드 위주로 다량생산은 하지 않고, 디자인을 의뢰해오면 상담해주고 있다.

 

“80년대, 가공 기계의 발달로 다량 생산할 수 있어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손으로 만드는 걸 고집하여 지금까지 일관하고 있고 그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낍니다. 디자인 개발이나 공법 개발에 함께 경쟁하고 있지만, 기술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어 수작업을 고집한다.

 

“나만의 노하우라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의 영감에 따라 디자인이 나오지요. 열심히 작업하다보면 작품에 혼이 실리게 된다.”

 

인천재능대학교에서 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는 박 명장은 경제가 성장되면 귀금속시장은 더욱 커져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된다고 역설한다. 귀금속 가공은 기술 연마에 시간이 많이 걸려 이직하는 경향이 있지만, 수출 쪽 인력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표적 보석은 자수정과 옥이지만 매장량 적어, 원석을 수입하여 입가공해 역수출할 수밖에 없다.

 

인건비가 비싸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는 현실이지만, 고급인력은 줄어들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

 

“박창순명장은 귀금속주얼리 분야는 판매, 감별, 가공, 디자인, 마케팅 등 분야가 다양해서 자기가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여 취업할 수 있다. 요쯤 젊은이들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빠른 결과만을 원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기술력이 곧 나의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적 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 한다."

 

박명장은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손재주와 지식 그리고 노력의 삼위일체가 이루어진다면 빠른 시간에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며, 학교와 자신의 작업장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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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환 기자 smi54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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