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시장 3중 악재 --내년 더 불안
<경제,사회특집>
전세난에 세입자들의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이보다 더 무서운 전세대란이 몰아칠 거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재건축 이주 수요급증, 본격적인 저금리 기조에 따른 월세전환 가속화, 그리고 짝수 해보다 전셋값이 더 뛰는 이른바 ‘홀수 해’ 효과까지 전셋값 고공행진을 부추길 ‘3중 악재’가 도사리고 있는 탓이다. 이렇게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전세시장을 짓누르는 것은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 대책은 “빚 내서 집을 사라”는 매매 활성화에 집중돼 있을 뿐, 전월세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서둘러 세입자 주거 안정책 마련에 팔을 걷어 부치지 않는다면 감당하기 힘든 전세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26일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까지 서울시 내 재건축으로 인해 이주가 예정된 가구는 내년에만 8,763세대가 몰려있다. 올해(3,355세대)의 2.6배 수준이다. 특히 강남 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에 무려 92.6%(8,144세대)가 집중돼 있다. 강남 4구 등 서울의 재건축 이주 수요가 올 하반기 전세난을 주도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의 두 배 이상으로 예상되는 내년 재건축 이주 규모는 전세시장에 엄청난 화약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시가 거론하는 이주 시기 조정은 실효성이 낮아 보인다. 올해도 이주 시기 조정을 내세웠지만 전셋값 고공행진을 막지 못했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강남에 신규 공급되는 주택은 9,000가구인 반면, 같은 기간 이주 규모는 1만2,000가구가 넘는다. 모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이주 시기가 늦어질수록 조합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나 조정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전세 물량 확보가 치열해지면 당연히 전셋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강남의 재건축 이주 수요로 불거진 전세난은 도미노처럼 주변 지역으로 퍼진다는 점이다. 올해도 강남 재건축 이주 수요가 늘어나면서 경기 하남 성남 화성시 등의 전셋값을 덩달아 끌어올렸다. “강남발 전세난은 경기 용인 분당 등으로 외연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함00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 “전체 재고가 줄어든다는 면에서 재건축 이주는 실질적으로 전셋값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00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등의 진단이 나온다.
내년 전세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본격적인 저금리 기조다. 한국은행이 올 들어 8월과 10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하면서 시중은행 예금 금리는 연 1%대까지 낮아졌다. 이런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가 올해는 두 달 남짓이지만, 내년에는 연중 내내 이어질 공산이 크다. 더구나 일각에선 내년 초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전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지금의 금리 수준에서는 이자소득세를 제하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전세금을 받아서 은행에 넣어둬 봐야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당연히 전세 계약 만기 시 월세나 반(半)전세(전셋값 상승 분만큼 월세로 받는 방식)로 전환하려는 집주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전세금(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이율인 전월세전환율은 올 들어 1%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6.4% 수준이지만 여전히 예금 금리보다 3배 정도 높다. 이 때문에 1995년 30%에 달했던 주거형태 중 전세 비율은 2012년 21.7%로 떨어진 반면, 이 기간 월세는 10%포인트 가까이 늘어 전세 비율과 비슷한 점유율(21.6%)을 기록하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더 심해지는 내년에는 월세 전환이 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역시 저금리를 내년 전셋값 상승의 주범으로 꼽는다. 박00 위원은 “최근 재계약에서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비율이 30~50%에 달한다”라며 “주택시장 내부에서 전세 공급이 줄어들면 전세가격만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도 “금리가 낮아지면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리거나 월세 전환으로 줄어드는 수익을 만회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홀수 해’ 효과가 내년 전세대란을 가중시킬 거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세 계약이 2년 주기로 갱신되기 때문에 끝자리가 홀수인 해에 전세난이 심화하는 경향이 있어왔다”며 “홀수 해가 되는 내년에 전셋값이 더 많이 오를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한다.
실제 부동산114 등에 따르면 전셋값은 유독 홀수 해에 급등했다. 전세가상승률은 2010년 10.26%에서 2011년 13.03%로 3%포인트 가까이 뛰었고, 2012년 3.45%로 안정됐다가 2013년 12.8%로 4배 가까이 폭등했다. 짝수 해엔 전셋값 상승이 주춤했다가 홀수 해에 급등하는 패턴이 최근 5년간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짝수 해인 올해 전세가상승률은 10월 현재 5%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전셋값 홀짝 효과는 1990년 전세기간을 최소 2년으로 규정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등장했다. 원래 법 개정 직후 집주인들이 2년치 전세금을 한번에 올리면서 짝수 해마다 전셋값이 급등해 ‘짝수 해’ 효과로 불렸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잠시 역(逆)전세 현상이 나타나면서 홀수 해에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더 오르는 홀수 해 효과로 추세가 뒤바뀌었다.
전문가들은 홀수 해 효과는 좀더 검증을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준공(입주) 물량이 2011년 33만9,000호, 2012년 35만2,000호, 2013년 35만5,000호로 소폭이지만 오히려 꾸준히 늘고 있고, 전세 거래량의 연도별 차이가 도드라지지 않는 등 다른 변수들이 전셋값에 미치는 제한적인 영향을 감안하면 홀수 해 효과를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어 보인다.
김00 부동산114 연구위원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전세 수요가 고루 분산돼 예전처럼 홀짝 효과가 뚜렷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최근 몇 년간 홀수 해 상승률이 높은 건 사실”이라며 “내년에도 비슷한 양상을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00 건국대 교수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이미 높은 상황이라 전셋값 상승 속도는 다소 완화하겠지만 상승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금의 전세난을 부동산시장 활성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차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양00 리얼투데이 팀장은 “미분양 주택이나 다세대 임대주택을 매입해 전세로 돌리고 월세 전환을 늦추는 집주인에게 양도세 부담을 완화해주는 등의 단기 대응과 서울시의 ‘시프트’처럼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장기 플랜을 다각도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세보증금 과세 완화”(박00 위원) “추가적인 월세 관련 대책”(조00 교수)도 거론됐다.
*실효성 잃어가는 임대주택 정책
정작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은 겉돌고 있다. 전ㆍ월세 대책의 일환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 공약보다 후퇴하거나(행복주택), 민간 참여 저조로 실적이 미미하거나(준공공임대), 부동산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희망임대주택 리츠)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임대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전세난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 비등하다. 최소한의 주거 복지 보호라는 명분 역시 퇴색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임대주택 공약인 행복주택 사업의 축소 및 변형이 대표적이다. 당초 2017년까지 주요 도심 내 철도부지 등 공공부지에 20만호의 주택을 지어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구상이었으나, 건설 장소부터 사업 규모까지 모두 후퇴한 상태다. 사업 후보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현재 조정된 사업 규모는 14만호. 그러나 올해 사업이 승인된 곳은 2,259가구로 수정된 전체 목표의 1.61%, 올해 목표(2만6,000가구)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는 연말까지 올해 목표를 맞춘다는 계획이지만, 사업 설계나 관계기관 협의 등 남은 절차가 적지 않아 물리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더구나 서울 목동 송파 잠실 공릉, 경기 고잔 등 정부가 1차 후보지로 발표했던 5곳은 주민 반대가 거세 사업이 진행될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말 도입한 준공공임대주택 등록제 역시 지지부진하다. 정부가 ‘2ㆍ26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신규주택의 준공공임대주택 활용 시 3년간 양도소득세 면제,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의 소득ㆍ법인세 감면율 확대(20→30%)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8월 말 기준 등록가구 수가 161세대에 불과하다. 의무 임대기간이 10년인데다, 임대료 인상률이 연 5% 이하로 제한되는 등 규제에 비해 세제 감면 혜택이 적어 임대인의 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9ㆍ1 부동산대책’에서 다가구주택을 준공공임대주택으로 등록해 임대할 수 있도록 면적 제한(전용면적 85㎡ 이하)을 폐지하기로 한 것 역시 국회가 공전되면서 관련법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설상가상 안전행정부는 지방의 세수 부족을 이유로 추가적인 관련 세제 감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우스 푸어’의 주택을 정부가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운용하는 희망임대주택 리츠(REIT’sㆍ부동산투자회사) 사업은 연내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동산시장이 다소 회복세를 보이면서 하우스 푸어들이 집을 팔기 위해 굳이 정부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1차 사업 때는 신청자들이 몰려 목표 물량(500세대)을 초과해 매입했지만, 이후 연말에 이뤄진 2차 사업은 목표를 채우지 못했다. 현재 심사를 진행 중인 3차 사업 역시 미달이 확실시 된다.
전문가들은 정책 마련 과정에서 소통이 더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조00 단국대 교수는 “그간 지역 주민들과의 긴밀한 협의나 민간의 참여를 높일 방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주거 복지 문제인 만큼 좀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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