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재한몽골학교 교사 아마르자르갈 씨

posted May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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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몽골학교 교사 아마르자르갈 씨
재한몽골학교 교사 아마르자르갈 씨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재한몽골학교 4.5학년 담임교사인 아마르자르갈(43.여) 씨는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을 쌓은 뒤 훗날 몽골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한국에 왔나보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5.28 kjw@yna.co.kr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왜 한국에 와서 고생했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보고 배운 것을 나중에 몽골 아이들에게 돌려주려 여기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한몽골학교 교사인 아마르자르갈(43.여) 씨는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몽골에 있었으면 고생은 훨씬 덜 했겠지만 한국의 교육과 학교 운영 등을 보고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르자르갈 씨는 2005년 남편과 딸, 아들 등 네 식구가 함께 한국에 왔다. 한국어를 배우던 딸에게 한국을 직접 눈으로 볼 기회를 주고 싶었고 남편이 꿈꾸는 '코리안드림'도 있었다.

 

몽골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을 나와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제13초등학교에서 10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로서는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에 오자마자 남편이 갑자기 위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고 수술 후 요양 차 몽골로 돌아간 남편은 1년 뒤 사망했다.

 

모든 꿈을 접고 몽골에 그냥 있을까도 생각했다. 선생님 일은 그가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일이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이 못다 이룬 꿈을 저버릴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한국에 다시 와 남편이 시작하려다 만 가게 문을 열었다. 한국에 있는 몽골인들에게 몽골 음식재료 등 각종 물품을 공급해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장사가 잘 안됐다.

 

아마르자르갈 씨는 "이후 식당을 개업했고 다시 아동복 코너를 열었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자본금만 까먹고 말았다"며 웃었다.

 

그렇게 된 것은 그가 한국 물정에 어두운 탓도 있지만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데리고 일을 하느라 사업상 필요한 일들을 제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점차 우울증이 심해졌고 멀리 이곳까지 와서 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에 아이와 함께 세상을 등지려는 생각도 했다"며 "그러다 몽골에서 알고 지내던 이의 소개로 재한몽골학교를 알게 돼 새 희망을 품게 됐다"고 밝혔다.

 

아마르자르갈 씨는 학교에서 초등 4·5학년 10명의 담임으로 몽골어와 수학, 자연, 사회, 건강 등의 과목 등 몽골 현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을 가르친다.

 

몽골 정부가 인정하는 유일한 재외학교로서 아이들이 몽골로 돌아가면 곧바로 학습진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를 포함해 재한몽골학교 담임교사 7명이 모두 몽골인이며 한국인 교사를 포함해 모두 20명의 교사와 80여 명의 몽골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교실과 교사가 부족해 학년별 수업을 하지 못하고 있고 다니고 싶어하는 몽골 아이들을 더이상 받지 못하고 있다.

 

재한몽골학교 일 외에 그가 찾은 또 하나의 희망은 아들을 자폐아를 위한 특수학교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학교는 학비도 받지 않고 아침에 학교버스로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갔다 방과 후에는 운동치료 목적으로 다니는 학원으로 보내준다.

 

아마르자르갈 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한국어를 좀 더 익히고 학교 일을 좀 더 잘할 수 있게 되면 특수교육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은 내게 자폐아와 장애아를 돌보는데 필요한 경험과 지식을 쌓은 뒤 훗날 몽골에서 그런 아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에 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kjw@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8 14:3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