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예술, 서라벌 분청장인

posted Oct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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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라벌요 우향(愚香) 김두선 도예가

                                              <자료 : 월간코리아인>


천년 왕국 경주는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신비로운 도시이다. 시선닿는 곳마다 보이는 둥근 왕릉 사이를 걷다보면 인생이 저절로 고즈넉해진다. 경주를 찾는 해외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더욱 분주해지는 곳이 있다. 오랜 세월동안 서라벌 분청의 기예미를 그려내고 세계에 알리고 있는 우향(愚香) 김두선 선생의 작업실이며 인생의 터전, '인간의 삶' 그 자체인 서라벌요이다.

◇분청의 질박한 아름다움, 세계를 사로잡다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위치한 서라벌요는 약 7,000여 평의 공간에 전시관과 도예체험촌, 숙박시설, 식당 등 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조성된 서라벌민속예술촌이다. 외국인 관광코스로 지정된 서라벌요에서는 매년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는 한편 한국의 전통 예절과 역사, 다도, 도자기 체험 등을 전수받기 위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국인들도 개별 방문은 물론이고 대기업 문화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김두선 선생은 1990년 제10회 현대미술대상전 대상 수상 및 1991년 전통미술대전 대상, 1992년 '한국의 혼' 경진대회 금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1968년 일본 오사카도예협회 초대전으로부터 화단과 대중의 각별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김두선 선생의 작품은 1972년 뉴욕과 LA초대전, 198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1990년 하와이 상공회의소 초대전, 대통령초청 모스크바 전시회, 1992년 영국 한국대사관 초대전, 1994년 브라질 상파울로 개인전 등 70여 회의 전시를 통해 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동양의 백자와 청자에만 익숙한 해외 시민들은 김두선 선생의 분청사기가 뿜어내는 깊고 담담한 멋에 감동하고 있다. 한번의 전시는 연이은 초대전을 이끌었고 상당한 작품판매도 이루어졌지만 김두선 선생이 가장 마음에 두는 것은 도자기에 담긴 혼과 이야기이다.

어리석은 향기라는 뜻의 호, 우향(愚香)이 풍기는 느낌 그대로 김두선 선생의 인생은 어리석을 정도로 우직한 걸음으로 40여 년을 오로지 분청도자 세계에 빠져 살았다. 다채로운 도자를 빚어내고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이야기를 새겨넣는 김두선 선생의 작품은 진실을 담은 불의 예술이다. 사랑, 기다림, 인간사, 기다리는 마음을 오롯이 그려내는 작품에는 김두선 선생의 지난한 삶이 녹아있다.

◇조선 도공의 딸, 분청에 눈을 뜨다

암울했던 일제시기, 도예를 생업으로 삼던 김두선 선생의 부친 김석규 옹은 빼어난 솜씨를 눈여겨 본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가 터를 잡게 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석규 옹의 장녀인 김두선 선생은 어릴때부터 부친의 일손을 도우며 도자기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일가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얼마후 부친을 여의고 모친마저 집을 떠났다. 부지불식간에 5남매의 가장이 된 17살의 김두선 선생은 물려받은 뛰어난 손재주로 가업을 이어 계속 옹기를 구워 가계를 이끌었다.

'부라자종합기술학원'과 '경남종합기술학원'을 열어 후학 양성에도 애를 쓴 김두선 선생은 도자기 연구에도 혼을 다해 30살에 서라벌요를 개설한 후 독특한 분청사기 개발에 성공하였다. 도예는 김두선 선생에게 '생명'이었다. 한겨울에 맨발로 흙을 밟아 다지다가 동상에 걸리고, 수십번의 가마질에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못 구해도 김두선 선생은 "흙은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며 다시 빚고 불 지피기를 거듭했다. 계속되는 실패 속에도 흙과 가마를 오고가며 사투와 같은 시간을 보낸 후 김두선 선생의 작품에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내재되기 시작했다.

김두선 선생은 분청사기에 그림을 음양각하는 상감기법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양 이외에 십장생과 민화, 사람사는 풍경과 자연 등의 소재를 다양하고 독창스럽게 구현하는 김두선 선생은 작품을 통해 대중과 격의없이 소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두선 선생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종심(從心), 70에 들어서면서 국내 활동에도 집중해 세 번의 국내 개인전을 통해 전시된 '십장생문호', '분청민화문호', '분청포도문병', '밤풍경통병', '소나기문병' 등의 연작이 높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경주 서라벌요의 후계자로 수련 중인 아들 윤형철 씨와 함께 우리 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서양화가로 활동 중인 딸 윤수영 씨에게는 도자기 기술을 전수하며, 멈출 수 없는 도예 인생을 이어가는 김두선 선생. 2015년 2∼3월경 미국 전시를 앞두고 있는 김두선 선생에게 도예는 인생이고 삶 자체이다. 도예를 향한 오로지 한길을 걸어온 김두선 선생의 삶이 경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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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표 기자 su1359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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