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열 "이국의 소리 담은 무국적 음악이죠"

posted May 2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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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가즘' 추구한 앨범 'V'..'전율' vs '난해' 호불호 갈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유앤미블루 출신 싱어송라이터 이승열의 네번째 앨범 'V'는 출시되자마자 또다시 논란을 만들고 있다.

 

'라디오 헤드 류의 멘붕 사운드를 각오했지만 편하다' '전율과 감동, 지금 시장에서 이런 앨범은 기적'이란 호평과 더불어 '난해하고 전위적이다' '대중에 어필할 곡이 없다' 등의 혹평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이승열의 음악은 늘 낯섦과 낯익음이 공존했다. 앞서 세번째 앨범이 그의 낯선 사운드에 대한 예고이자 완충 지대였다면 2년 만에 낸 이번 앨범은 좀 더 상업성을 배제해 불친절해졌다. 그러나 계속 듣다 보면 불편하진 않은 게 묘한 매력이다.

 

모던 록의 대표 주자답게 그는 이번에도 모던 록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록 밴드 편성에 베트남 전통 현악기인 '단버우'(Dan Bau) 소리를 전면에 내세워 동양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8분, 10분에 육박하는 대곡(大曲)들은 가요에 익숙한 팬들에겐 형식 파괴로 느껴질 정도다.

 

최근 을지로에서 인터뷰한 이승열은 이 모든 평가를 인정했다.

 

그는 "3집부터 큰 자유를 누리면서 음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며 "'너무 내 내면만 들여다보는 것 아닌가'란 우려도 하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음악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행보도 상업성에 비껴 있지 않았나"라고 웃었다.

 

3집 당시 밥 딜런의 내한 공연에서 들은 투박한 오르간 소리에 반했다고 말한 그는 이번에도 새로운 소리에 반했다. 평소 즐겨듣던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국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단버우였다. 연주자를 수소문했고 한양대학교 박사과정에서 타악을 전공 중인 베트남인 레화이프엉에게 콜라보레이션(협연)을 제안했다.

 

"단버우 연주를 듣고 기타와의 연관성을 느꼈어요.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기타 사운드와 접해있으면서 앰프로 증폭되는 소리가 기타와 맞닿아 있었죠. 특히 프엉의 연주에 반했어요."

 

단버우를 중심축으로 구상한 곡은 '위 아 다잉'(We are dying)과 '개가 되고'다. 두 곡은 단버우의 묘한 비브라토와 프엉의 음감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기타와 단버우가 동반하며 멜로디를 이끌어 인도와 아랍 풍의 색채가 물씬 풍긴다. '피어'(Fear)에선 피아노를 가미해 한층 클래식한 멋을 느끼게 한다.

 

악기들이 만들어낸 이국적인 이미지는 다양한 언어들이 혼재하면서 증폭됐다.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은 첫 트랙 '미노토어'(Minotaur)에선 모로코인 오마르 스비타르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구절을 프랑스어로 낭독했다. 또 '개가 되고'에선 아랍어 즉흥 연주가 주술처럼 삽입돼 이국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는 "한 팬이 트위터에 '이승열이 인도에 갔다 온 것 같아' '아랍에서 물담배를 피우고 온 것 같아'라고 하더라"며 "난 미국 이민자 출신으로 어디에서도 혼돈을 겪었다. 설정이 아니라 그런 나의 정체성이 음악으로 표현됐을 것이다. 내 음악은 무국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앨범 속 혼돈의 소리는 가장 잘 뒤섞인 상태로 공간감을 가졌다. 이를 위해 마포구 서교동 공연장인 벨로주에서 '원 테이크'(곡을 끊지 않고 한 번에 녹음하는 것) 방식으로 10곡 중 6곡을 녹음했다. 스튜디오 녹음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짚어낸 소리는 인간적인 뉘앙스를 증발시켜 버린다는 게 이유였다. 소리의 공간감을 담기 위해 그는 데모곡을 정교하게 만들고 악기, 마이크의 간격과 배치까지 이상적인 울림이 가능한 상태를 계산해 녹음했다.

 

"스튜디오의 메트로놈 대신 드러머의 비트와 처음 시작하는 연주자의 템포에 맞췄어요. 기술적인 걸 떠나 인간미가 묻어나는 오가닉 사운드를 구현하고 싶었으니까요."

 

마치 소리 연구가 같다고 하자 그는 "(서울전자음악단 출신 기타리스트) 신윤철 씨가 '승열이는 기타를 연구하면서 치는 것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며 "난 기본기가 뛰어난 뮤지션이 아니라 나만이 갈 수 있는 방법에 더 관심이 많다. 내 생리에 맞게 재미있는 장치들을 갖고 싶어한다는 점에선 연구라면 연구"라고 웃었다.

 

다음 앨범의 방향도 궤를 같이하느냐고 묻자 "어제 영감이 왔다"고 답했다.

"전 굉장히 차가운듯 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의 소리에 매력을 느껴요. 지난 1월 뮤지션 카입 등과 공연한 적이 있는데 이때의 기록이 참고되는 부분이 있어서 여기에 집중해볼까 해요. 정규 앨범이 될지, 프로젝트 앨범이 될지 모르겠지만…."

대중친화적인 성향이 옅어지는 건 분명 모험이다. 그는 EBS 라디오 '이승열의 영미문학관'과 TBS eFM의 인디 음악 프로그램인 '인디 애프터눈'(Indie Afternoon)의 DJ로도 활약, "생활인으로서의 음악 영역도 있다. 그래서 난 러키하다"는 말로 에둘렀다.

 

음악으로 돈을 버는 건 자신과 무관했으면 좋겠다는 그에게 소리란 무엇인지 물었다.

 

"아, 어려워요. 제가 좋아하는 소리를 골라내지만 이상적인 소리가 뭔지 아직 모르겠어요. 제 귀와 정신, 육신을 송두리째 빼앗는 '이어가즘'(Ear-gasm)을 추구하는데 영적으로도 자극되는 부분이 있으면 더 좋겠죠."

 

그는 다음 달 주영한국문화원 주관으로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K-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7월 12-13일 종로구 연건동의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연다.

 

mimi@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7 07:0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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