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존치가 해답이다.

posted Sep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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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빈 기자/스포츠닷컴]

 

1. 로스쿨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법조인력양성제도는 2009년 소위 “일미(日美)식 로스쿨”이 들어오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는 바, 현재 우리가 따르고 있는 로스쿨은 일본에서 따 온 것이고, 일본은 미국식 로스쿨을 가져왔는데, 우린 원조 아닌 짝퉁을 표방하여 이도 저도 아닌 제도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표1> 학부를 통한 법조인 양성기간 비교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한국사법시험

 

학부수업

 

5년

 

3년+1년

 

4년

 

3년

 

4년

 

실무수습

 

2년

 

2년

 

3년

 

1년

 

2년

 

기타

 

 

 

 

 

5년

 

 

최저소요기간

 

7년

 

6년

 

7년

 

4-9년

 

6년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요 국가들 중 대학원 체제를 통해 변호사를 양성하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 밖에 없으며 심지어 영미법의 원조인 영국에서도 학부제를 통해 변호사가 양성되고 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는 기간은 독일이 최저 7년, 영국이 6년, 오스트리아 7년, 스위스가 전문변호사까지 9년, 한국의 현행 사법시험은 최소 6년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 로스쿨은 3년 6개월 만에 변호사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일본도 가장 단기간 양성되는 경우 4년이 걸리지만 우리와는 그 운용과 자질검증에 있어 비할 바 아니라 할 수 있다.

 

 

<표2>

한국과 일본의 로스쿨 운용 및 변호사자격부여 비교

 

 

 

일본

 

한국

 

제도시행과정

 

통로 확보 후 시공

 

시공 후 통로 마련

 

학부법학인정

 

- 미수자 3년

- 기수자 2년 단축

 

15학점(1학기) 이내 재량적 인정

수료요건

- 93학점 이상

- 기수자는 63학점)

90학점

입학시법학소양측정

 

- 학교별로 시험 허용하여

재량적 선발권 부여.

- 법학기수자 실력 측정

 

법학관련평가하지 못하도록 일률적으로 법률로 금지

법조통로의 폐쇄성

 

- 판,검사 임용자체의 개방성

- 예비시험합격자에게도 신사

법시험응시허용

 

- 판,검사는 변호사로 국한

- 변호사시험은 로스쿨출신만 응시

자격시험 합격률

- 2012년 25.1%

- 2011년 23.5%

- 사전합격률 보장제. 75% 이상 의무적으로 합격

- 로스쿨 교수협은 합격률 87% 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

 

구술시험 유무

 

있음

 

없음

 

시험성적 공개

 

공개

 

본인에게도 공개금지, 법에 명시

 

 

일본

 

한국

 

자격시험 응시제한

 

로스쿨 졸업 후 5년간 3회

 

로스쿨 졸업 후 5년간 5회

실무수습

- 1년간 사법연수소 실습

- 종래의 사법연수제도 통한

체계적 실무수습

- 6개월의 형식적 실무수습

- 취업하면 실무수습은 없음

- 개인법률사무소 등에서도 가능

 

실무수습평가

 

- 수습 후 평가시험

- 탈락자 있음

- 없음

- 6개월 경과로 자동자격 부여

 

 

일본의 경우 철저한 자격검정시험으로 25% 내외의 합격률을 통해 합격하고, 그 중 1년은 사법연수소의 체계적인 실무수습과 수습 후 제2회 시험을 또 거치도록 되어 있다. 반면 우리는 기간도 짧을 뿐 더러 변호사 합격률은 75% 이상으로 사전보장되어 있고, 실무수습은 형식에 그치고 있다. 로스쿨 입학에 법학소양측정을 명문으로 금지하고 있는 탓에 헌법과 국회가 법적으로 뭐하는 곳인지도 몰라도 로스쿨 입학이 허용되고, 이들이 변호사로 나오고, 이들 중에서 바로 판사와 검사의 자리가 약속되는 것이 로스쿨을 통한 법조인력 배출 양성의 현 주소라 할 수 있는 바, 로스쿨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로스쿨 졸업생들을 바로 검사나 판사로 임용하지 않고, 일정기간 공, 사기관에 취업하여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쌓은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판사와 검사로 임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짝퉁을 모방한 짝퉁을 통해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최 단기간 내에 변호사를 속성재배하여 시장에 내놓는 괄목할만한 제도를 갖고 있다. 그러면 이 짝퉁의 짝퉁인 ‘일미 잡탕 로스쿨’의 효율성(?)은 차치하고, 공동체 정의의 파숫꾼을 양성하는 취지에 걸맞는 사회적 정의에 충실하고 있는가?

현재 성적도 공개되지 않는 변호사시험, 75%의 사전 합격이 보장된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 중에서 어떤 기준인지는 몰라도 법원과 검찰이 이들 중 소수를 법조공무원에 임용하고 있다. 같이 공부하던 누구는 판사, 검사가 되고, 누구는 6급, 7급 계약직 공무원에도 목을 매야 하는 판이 된 것이다. 알려진 건 학부 학벌, 소위 SKY 명문대 출신이 압도적이며, 사법시험을 통해 임관되는 경우보다 그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고비용의 로스쿨을 졸업하더라도 원초적으로 비명문대를 나오거나 지방대를 나온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차별,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부딪쳐 좌절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로스쿨과 관련하여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는데,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후 사법시험 체제 하에서는 한명의 변호사도 배출하지 못하던 대학에서도 로스쿨에 진학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법조인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사법시험의 소수 독과점이 로스쿨 체제에 의해 와해되었다는 논리인데, 이는 착시현상을 이용한 현실 왜곡에 다름 아니다.

 

사회 정의적 차원에서 비교해야 할 것은 변호사 배출 자체가 아니라, 소위 법조의 주류 직역으로의 편입에 어떤 그룹이 들어가고 있는지를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입학 과정에서의 공정성이다. 여기엔 선발의 공정성과 함께 지원 과정의 심리적 균등, 포부의 불평등도 고려되어야 한다.

 

일단 입학 과정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은 고비용 구조로 인해 경제적으로 아예 처음부터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불확실한 장학금 수혜제도에 기대어, 3년간 학비 외에 생활비의 부담, 기회비용의 부담을 떠안으며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정한 자산이 있는 중산층 이상이라야 한다. 고비용 구조를 만들어 놓고 들어오면 장학금을 주겠다는 이야기는 심리적 격차로 지레 포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경제력과 무관하에 일단 1-2년 정도 내 힘으로 공부에 집중해서 실력을 평가받아 가능성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사법시험 구조와는 원천적으로 다른 불평등 구조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한편 경제력은 되지만, 비명문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로스쿨 입학 과정에서부터 차단된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의 ‘차단’이란 모든 로스쿨에 대한 입학이 불허되는 것이 아니라, 세칭 명문대, 수도권의 로스쿨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로수쿨의 공정성 여부를 법조 주류 직역에 일반인들이 얼마나 차별없이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따져야 하는 만큼, 소위 비 명문, 지방대 출신들의 입학에서의 균등한 기회 보장은 제1차적 요건이지만 현행 로스쿨 입학 기준은 매우 불투명하고, 정성적 평가에 기대어 공정성을 객관적으로 담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지방대의 사법시험합격자 숫자와 지방대 출신의 수도권 로스쿨 입학 숫자는 비교가 안되고 있다. 사법시험 체제 하에서는 비 명문, 지방대 출신들도 사법시험 성적과 연수원의 투명한 성적으로 인해 학부 서열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법조 주류 직역으로 진출할 수 있지만, 현행 로스쿨 체제는 학부의 서열화가 곧장 로스쿨로 이어져 대학 서열화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고착시키고, 패자부활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혹자는 비명문, 지방대 출신의 학생이 지방의 어느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서도 법조 주류에 진입하였다는 성공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반론에 대하여 필자는 그런 사람이 갖고 있는 개인적 능력 외에 그 집안 배경이 무엇인지도 같이 내놓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다시 말해 소위 백도, 돈도 없는 학생이 그런 코스를 걸어갈 수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코스는 아무나 걷는 게 아니라 외적인 무엇이 뒷받침되어 가능했는지 보여달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로스쿨 졸업생들의 진로에 관한 몇몇 기사들은 그런 신데렐라는 없다는 걸 말해 주는 것 같다. 냉정히 말해 사법시험 체제 하에서는 법조 주류에 진입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불확실하지만, 로스쿨 제도를 이용하여 기존에 획득된 사회적 관계망과 배경 자산을 등에 업고 마치 “좋은 대학 안 나오고, 좋은 로스쿨 안 나와도 번듯하게 변호사로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로스쿨의 자기 홍보와 방어논리의 자료로 훌륭하게 쓰일지 몰라도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갉아먹어 “승복기제”를 말살할 것이다.

 

이 장에서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 로스쿨 제도는 세계 최단 기간에 변호사를 배출하면서 프로페셔널 양성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고, 의뢰인으로부터 돈 받아가며 배우는 (Eearning by Learning) 변호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입학에서의 공정성, 배출에서의 공정성, 주류 법조 직역으로의 진출에서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지 못하여 사회통합과 정의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 아래 표로 그 내용을 정리한다.

 

 

<표 3>

한국의 기형적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제도의 이해당사자별 유,불리 분석

 

 

로스쿨

 

국민

 

법률소비자

 

관료

 

학생(1)

 

학생(2)

 

법학사 불인정

 

유리

불리

불리

중립

불리

불리

 

법학소양

불측정

유리

불리

불리

중립

유리

불리

 

법조통로의

폐쇄적 운용

매우유리

매우불리

불리

유리

유리

유리

 

시험합격률

사전보장제

매우유리

불리

매우불리

유리

매우유리

매우유리

 

구술시험

미실시

유리

불리

매우불리

유리

유리

유리

 

시험성적

비공개

매우유리

불리

매우불리

매우유리

유리

불리

 

실무수습 6개월

유리

불리

매우불리

중립

유리

유리

 

실무수습 후

평가부재

 

유리

불리

매우불리

유리

유리

불리

 

 

 

 

2. 대안은 무엇인가?

 

지금의 로스쿨 제도와 변호사자격 부여 및 법조 공직 임용 제도만 놓고 보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건국 당시는 물론, 조선시대 보다도 훨씬 못한 원초적 불평등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내 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과거 시험을 치르면서 혹여 채점관이 글씨체나 특정한 표기 등으로 수험생과 결탁할 우려가 있지나 않을까 하여 답안지를 다른 사람이 옮겨 써서 채점하게 하는 이른바 봉미역서법(縫彌易書法)을 시행하기도 하였고, 구술시험의 경우엔 포장을 쳐서 수험생과 면접관이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할 정도로 공정성 확보에 신경을 썼다.

독일의 경우 1970년대 미국식 로스쿨제를 도입하여 10년 정도 운용하다 되돌아 왔고, 우리의 경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하였다가 부작용과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여 방향을 바꾸어 학부와 전문대학원 선택제로 돌아선 정책적 경험을 갖고 있다. 법조인력 양성정책을 어떤 식으로 전개할 것인가의 문제는 변개할 수 없는 조종지법(祖宗之法)이나 만세지법(萬世之法)이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솔직히 인정하고 대안을 모색해야지, 대증요법으로 대처하려고 하면 그 잔꾀의 수혜자는 소수이고, 그 피해는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나 재학 중인 학생들까지 포함하여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로스쿨이 기왕 도입되었으니 로스쿨이 안착되도록 로스쿨의 존립에 위협 요소가 될 만한 것들은 다 제거하자거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안일한 낙관은 버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간다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최단기간의 변호사 배출, 객관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의 로스쿨 졸업생들에 대한 직접적인 법조 공무원 선발, 입학기준의 불투명, 자격검증이 무의미한 사전합격률제 고시, 형식적인 실무수습의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변호사 단체가 직접 변호사시험을 관장하고, 절대평가로 선회하여 평균적인 합격자 답안과 과락 답안지를 샘플로 공개하여 법률소비자들이 시장에 나온 변호사들을 믿고 채용하거나 의뢰하는 등의 방안이 나와야 될 것이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없이는 정작 실력있는 로스쿨 졸업생들이 도매금으로 평가절하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로스쿨 외에 변호사가 되는 통로를 열어주어 그들이 시장에서 같이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 로스쿨과 변호사자격 부여, 법조공무원 임용에 관하여 제대로 논의를 하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 공동체 구성원간 기회는 균등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사회적 부담과 비용은 최소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며, 셋째, 법률소비자가 원하는 건 양질의 서비스이며, 넷째, 사회적 갈등 보다는 사회적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 왜 사법시험인가?

 

(1) 기회균등의 보장 차원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는 쉽지 않다. 기회균등이란 말도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대법원 판사를 지냈던 포터 스튜어트 (Potter Stewart)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난 포르노가 무엇인지 더 이상 정의를 내리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보게 되면 포르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다." 정의는 그 반대편인 불의를 보면 알 수 있다. 기회 균등 역시 불균등의 사례를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사법시험을 통해 배출된 예비 법조인들은 사법연수원 교육과 성적이 공개되는 시험을 통해 공정하게 경쟁하여 법원, 검찰과 같은 전통적 법조 세계로, 또는 대형 로펌이나 공공기관 등에 들어간다. 불평등이 정당화되기 위하여는 언제나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평등은 스스로를 변론하기 때문이다.

불량 짝퉁 모방 로스쿨 도입론자들은 과거에 사법시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소수에 의한 독점이 갖는 배타성을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그 독점한다는 소수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기회 불균등의 문제는 제기된 바 없었다. 소수가 배타적으로 형성되지 않는 한, 소수 자체가 형평의 차원에서 문제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나 로스쿨을 나와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로스쿨을 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된 특권이지, 국민의 권리가 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사법시험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지만, 로스쿨은 “돈 있고 (그래서 마음의 여유도 있는) 국민”의 것이지, 모든 국민의 것이 아니다. 로스쿨만이 법조인이 되는 유일한 통로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폐쇄주의는 "공동체 구성원간의 기회는 균등해야 한다"는 첫 번째 명제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장학재원을 늘여 사회적 취약 계층을 지원함으로써 기회균등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로스쿨이 대학원 체제인 까닭에 대학 과정까지 의무적으로 마쳐야만 하는 경제적 부담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경제적 취약 계층의 경우엔 입학전형에서의 불투명성과 졸업 후의 장래 직업적 포부에 명확한 한계가 지워짐으로써 처음부터 로스쿨은 “올라갈 나무로 쳐다보지도 못하거나, 쳐다 보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는, 즉 심리적 격차와 불균등이 생래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2) 개인적 및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 차원

 

 

로스쿨이 돈 스쿨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사립 로스쿨을 졸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학부를 세 번 졸업하는데 들어가는 등록금만큼 (국공립 학부라면 다섯 번을 졸업하고 4학기를 더 다닐 만큼) 소요된다. 학부모 입장에서 한 명의 자녀를 로스쿨에 보내는 것은 최소한 세 명 내지 다섯 명의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것만큼이나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사법시험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사법시험도 준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들고, 그 동안 먹고 자고, 학원가고, 교재 사는 것까지 포함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고, 따라서 사법시험도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과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엔 "없는 사람들도" 할 수 있고, 결과도 얻어내기 때문이다. 로스쿨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거나, 아예 꾸지 않았을 사람들이 해마다 사법시험에는 몇 명씩 합격한다. 또 사법시험에 들어가는 비용을 로스쿨의 고비용과 한데 묶어 주장하는 것은 그 전제와 발상이 매우 불순하고 무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로스쿨의 비용은 확정적이다. 지원자의 선택과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강제적 비용이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소요되는 비용은 매우 유동적이다. 수 년을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두 해 공부로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있는 사람들이라야 시험도 단기간에 속성으로 붙을 수 있다는 암시는 근거 없는 계층 간의 이간질이 아닐 수 없다. 2천만원을 훌쩍 넘는 로스쿨의 한 해 등록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고시원 총무로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지만, 사법시험은 그런 식으로 일하면서도 자신의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이다. 금액의 단위, 조달 방식의 선택권에서 양자는 비교할 수 없음에도 사법시험을 마치 호텔에서 기숙하면서 개인 교습 받아야 되는 것처럼 과장하는 행태는 사회적 논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논의에 백해무익한 궤변에 불과하다.

사법시험 폐지론자들의 단골 주장 중의 하나는 사법시험을 없애는 대신 로스쿨 총정원을 대폭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인가기준을 대폭 낮추거나 준칙주의를 통해 원하는 학교들은 로스쿨로 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기회균등의 보장과 공정성의 담보라는 측면에서 로스쿨 제도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본질적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 폐쇄적 일원론과 개방적 이원론이 갖는 의미에 무지하거나 애써 호도하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로스쿨의 문호가 전면 개방되어 전국의 모든 법과대학들이 로스쿨로 된다 한들, 학부를 나와 대학원 과정까지 거쳐야 하는 고비용 구조는 여전히 상존하고, 이 일련의 과정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다. 첫째 명제인 기회균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더 심각한 건 법조인력의 현실적 수요를 무시한 대량 공급은 당사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 큰 부담과 또 다른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우선 전문대학원까지의 고비용을 부담하면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인력들이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 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거나 졸업하자마자 실업자로 전락하는 사회적 문제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들이 눈높이를 낮춰 각종 정부기관 등의 하위직 공무원 등으로 취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사회적 분위기는 7급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업의 스펙의 하나로 변호사 자격증을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쪽으로 흐를 것이 명약관화하다. 학부 과정만의 공부로도 충분히, 아니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공부로도 충분히 시험에 합격하고 공직을 수행함에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직급에 변호사들이 가기 시작한다면, 로스쿨에 갈 수 없는 청년들은 그나마 공무원의 꿈 조차 접어야 할지 모른다. 학력 인플레보다 무서운 변호사 자격 인플레 시대, 거품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세대로 갈 수록 비용 부담이 어려운 계층의 미래의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한편 많은 로스쿨들이 전문대학원 체제를 포기하고 학부제로 돌아가자니 대내외적으로 명분과 실익이 없고, 그렇다고 계속 유지하자니 적자는 눈덩이처럼 쌓이는 딜레마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로스쿨이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스쿨들 사이의 자발적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숨통을 틔어 주어야 한다. 적정한 선발 인원을 전제로 사법시험의 존치가 확정되면 중소 규모의 로스쿨들이 자발적으로 학부제로 전환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변호사 과잉 공급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나, 로스쿨들 간의 인위적 구조조정에 따른 부담도 상당히 줄일 것으로 기대할 있다. 이원화야 말로 대학들에게도 선택의 여지를 주는 길이 아닐 수 없다.

 

 

(3) 법률소비자의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은 로스쿨의 교육이념은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사법시험 폐지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 중의 하나가 법률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었지만, 로스쿨이 도입된 이후 언제부터인가 이 의제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로스쿨 도입에 앞장 섰던 시민단체 역시 이 문제에 관하여 입을 다물고 있는 현상은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어떤 그룹이건 소수의 탁월한 인재들이 있는 건 엄연한 현실이고,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현행 로스쿨 하에서도 분명히 소수 그룹은 현장에 바로 투입되어서 법률 전문가로서 제대로 된 조력을 의뢰인에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인적 자원들이 법조 사회를 활성화하고 경쟁력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로스쿨의 존재의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논의의 초점을 흐리지 않기 위해서는 평균적인 비전공자들에 대한 로스쿨의 교육과 이들이 법조인으로서 갖춘 실력이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 국민들이 더 많이 접하는 변호사들은 이들 평균적인 변호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로스쿨의 취지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인데 지금처럼 깜깜이 식으로 운용하여, 누가 어떤 기준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교육받고, 어떤 성취도를 갖고 나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시험에 의한 법조인 양성"보다 양질의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법률 소비자인 국민을 우습게 알고 기만하는 횡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알게 되는 건 그 변호사의 출신 학부와 출신 로스쿨, 그리고 그 가족, 친지, 학연과 지연이라는 프로페셔널 본연의 정보 외의 것들이 전부가 될 것이다. 로스쿨을 통해 정말 제대로 교육받아 능력을 쌓고 제대로 법률서비스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변호사들을 시장에서 사장시키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다시 말해 변호사로서의 실력 보다는 외적 인적 네트워크, 천부적인 소송 상술이 시장에서 판을 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필자는 불량 짝퉁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고, 지금은 그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는 그룹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이것이 당신들이 원하던 것이었던가? 그래서 만족하는가?” 법무부는 하루 빨리 법을 개정하여 변호사시험성적을 공개하고 합격 최저선의 샘플 답안 등을 공개하는 등으로 법률소비자인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를 해야 한다. 합격률 75% 보장 같은 같은 짓은 세계적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소비자들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길을 터 놓아야 한다. 소비자 권리의 핵심은 시장에서의 선택권이다. 시장 참여자가 하나인 경우 우리는 이것을 독점이라 부른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가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할 때 독점의 폐해는 줄어들고,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돌아가게 될 것이다. "시장이 말하도록 하라!"

 

 

(4) 사회적 통합의 차원에서

 

옛 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나간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사법시험 제도 하에서는 과소선발, 장기간의 수험준비에 따르는 개인적, 사회적 비용의 문제, 인재들의 사법시험에의 쏠림으로 인한 인적 자원의 왜곡, 대학에서의 정상적인 법학 교육의 어려움 등 그 단점이 매우 크게 부각되고 지적되었었다. 이런 비판은 충분히 일리가 있고, 그래서 그간 사법시험의 경우 응시횟수의 제한, 선발인원의 증원, 일정한 법학 과목의 이수 의무화 등의 보완책이 논의되고 있고 일부는 반영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단점에 가려진 탓인지 사법시험이 가진 사회통합적 기능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법시험이 있는 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세상에는 돈이 있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공동체의 황금률에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또 "학벌이 안 좋아도, 집안이 한미(寒微)하여도 현실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있다"는 믿음에 공감하였다. 그렇기에 내가 그에 이르지 못하여도,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성원하고, 경쟁하였던 사람들도 기꺼이 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입학과 교육, 자격취득과 사회진출에서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설득력 있는 기준이 제시되지 못하는 로스쿨 체제만이 남고, 사법시험이 완전히 폐지되는 날엔 "세상엔 돈 있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고, 돈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체념과 좌절만이 남게 될 것이다.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가 된 사람들 역시 "집안의 사회적 관계망과 양질의 법조 미래가 정비례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심각한 패배의식에 젖게 될 것이다. 사법시험 폐지론자들은 사법시험을 남겨둔다고 해도 그 역시 돈 있는 집안의 자녀들이 독식할 거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통합으로서의 사법시험은 몇 명이 선발되느냐의 양의 문제 이전에 공정하고 열린 통로가 있느냐의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쟁점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논의를 이어 가건 분명한 것은 사법시험은 구성원의 승복을 끌어내는 사회통합적 기능에 있어 로스쿨에 비할 바 아니며, 로스쿨 제도는 지금 상태에서 대폭의 개선이 없으면 왕조 시대의 관료 선발제도 보다도 못한 저급한 계층적 독식의 수단이 되어 종국적으로는 사회적 불만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가 진정으로 영속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개인들을 사회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활력 넘치는 개인들이 공동체 속에 소속감을 갖고 결합시킬 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유리 천정이 있는 사회에서 개인, 특히 젊은이들이 활력을 가질 리 만무하고, 계층과 세대가 통합될 리 없다. 사법시험이 갖는 사회통합적 기능에 다시 제대로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 예비시험, 개악(改惡)의 가능성

 

일본의 예비시험은 문부성과 법무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의회 내에서 사회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대한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되어 결국 수용되었다. 이 점에서 한국 국회도 국민의 편에 서서 로스쿨 일원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법조인 양성과정의 다원성을 확보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본식 예비시험을 우리가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기회균등, 사다리가 되기 보다는 악용되거나 오히려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1) 단순한 예비시험은 변호사시험에 “5진 아웃” 된 로스쿨 졸업생들의 구제통로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로스쿨에 갈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예비시험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 시험 낙방자나 조기 합격을 원하는 로스쿨 재학생들로 채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만약 예비시험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로스쿨 졸업자나 재학생에게는 예비시험 응시를 원천적으로 불허해야 한다.

 

(2) 예비시험이 변호사시험 응시자격 부여에 그친다면 학문으로서의 법학은 송두리째 말살되고 말 것이다. 일본식 예비시험은 합격 그 자체로 변호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예비시험 출신자는 신사법시험에서 요구하는 기록식 시험에 경험을 갖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바, 이는 학부에서의 법학 교육이 전면적으로 로스쿨의 아류가 되어 4년의 학부 커리큘럼이 로스쿨의 선행학습의 장이 됨으로써 전통적인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고사하고, 학부에서조차 교육 (education)이 아닌 법 실무적인 직업훈련(job training)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그나마 일본의 경우 법학부와 로스쿨이 병존되어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고사(枯死) 가능성이 없지만, 한국의 경우 로스쿨로 전환하지 않은 학부에서 마저 변호사시험을 염두에 둔 실무교육으로 간다면 한국의 법학의 뿌리는 완전히 마를 것이다. 혹자는 법학의 황폐화를 우려한다면, 일본처럼 로스쿨 내에서의 학부 운영 가능토록 하자는 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주로 로스쿨 측의 입장일 것임), 이는 로스쿨 진입규제의 정당성의 전제였던 학부와 로스쿨 선택의 원칙을 깨는 것이어서 결국 로스쿨 준칙주의로 이어지는 결과가 될 것인 바, 법조인력 수급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변호사시험응시 자격 부여로서의 예비시험은 경제적 약자의 경제적 부담만 더 키워줄 소지가 크다. 변호사시험이 예비시험 출신자들의 최종 관문이라고 하면 결국 예비시험까지는 학부과정에서 소화한다 하더라도, 변호사시험 준비는 학부에서 커리큘럼을 개편하여 따라 간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변호사시험을 준비시키는 사설학원들만 득세할 것이다. 지금 75%의 합격률을 보장해 주는 로스쿨에서 조차 변호사시험을 대비한 외부 학원 강의가 성행하고, 지방 로스쿨에서는 동영상 강의 지원비를 대주는 사례가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예비시험 합격자들 역시 변호사시험을 준비함에 있어 이런 사설기관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 로스쿨 못지 않은 경제적 부담을 지워주는 셈이 되고, 결국 예비시험만으로는 합격하더라도 “돈이 있어야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비시험은 “없는 자의 기회”가 아니라, “있는 자의 옵션”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4) 변호사시험으로의 일원화는 예비시험 출신자들의 공직진출에서의 차별, 법조사회에서의 영원한 소수자로의 왕따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예비시험 도입 논의시 예비시험 출신자들이 로스쿨 출신자들 보다 차별을 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바 있다. 법조인력 양성에서의 진정한 기회 균등은 “변호사가 되는 기회의 균등”이 아니라 “판, 검사가 되는 기회의 균등” 내지 “공무담임권의 기회균등”을 말한다고 할 것인 바, 기회균등을 위한 예비시험을 논의하려면 예비시험 출신자들이 이러한 기회균등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변호사시험 성적이 공개되지 않는 상태에서 예비시험이 도입된다면 예시를 거쳐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어도 그 자신을 대외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없는 반면, 로스쿨 출신의 경우 소위 스펙과 함께 일반적으로 사회 경제적 배경 (로스쿨에 진학할 정도의 최소한의 여유는 갖고 있을 것임)이 판, 검사 임용에서의 한 판단 요소가 될 것이어서, 법원과 검찰 임용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예비시험이 약자의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평가받는 한, 사회적 관계망, 경제적 자산의 배경을 중시하여 변호사를 채용하는 대형 로펌 등에 예비시험 출신 변호사들이 들어갈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것이다.

 

(5) 따라서 이러한 제반 문제 및 원초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방법은 변호사 자격 취득 통로를 이원화 (변호사시험이 아닌)하여, 예비시험출신자들에 대하여는 변호사연수원을 통한 1-2년의 실무수습을 조건으로 변호사자격을 부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예비시험은 변호사시험응시자격시험이 아닌 변호사실무수습자격 시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일본의 예비시험의 경우 그 수준이 현행 우리 사법시험 구조와 다를 바 없어 그 합격만 가지고도 실무기초 능력은 검증된다고 할 수 있고, 여기에 실무 수습 1년을 더하는 것으로 충분한 법조인으로서의 자질을 담보할 수 있다. 예비시험 합격자의 자질은 예비시험합격자들이 최초로 2012년도에 신사법시험에 응시하여 68.2%의 합격률을 보인데서도 검증된 바 있다. 이 해 일본 로스쿨 졸업생들의 평균합격률이 24.6%였음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합격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예비시험 합격자들을 상대로 다시 변호사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것은 순전히 사회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이중 삼중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3. 결론

 

사법시험이 2017년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가 법조 양성의 원 트랙으로 존속할 경우 지금 안고 있는 밀행성, 불공정성, 고비용의 불평등 구조는 그 독점적 지위로 인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설령 변호사시험성적의 공개 등 일부 교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입학과 진로 전형에서의 정성적 평가, 실무 전문가 양성을 위한 절대적 시간의 부족, 고비용은 해결될 수 없는 내재적 한계들이다. 기회균등, 비용의 최소화, 법률 소비자들의 선택권 보장, 사회통합 등의 차원에서 해방 후 지금까지 공정성에서 시비의 문제가 없이 내려 왔던 사법시험은 존치되어야 한다. 이것은 예비시험이라는 생소한 제도를 들여와 개악이 되거나 개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적,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사법시험의 존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장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법시험이 존치됨으로써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살아날 것이다. 법학은 실정법을 넘어선 것까지도 담당하기에, 단순한 법 기술전문가인 변호사 양성제도만 있는 국가의 법치주의는 법 형식주의, 법 실증주의의 한계에 부딪친다. 실정법 만능주의 사고를 못 벗어나는 사회는 경직되거나 소프트규범의 부재로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사법시험은 학부 법학의 현실적 필요를 대두시킴으로써 법학이 갖는 실정법 해석과 그 너머의 이론과 가치까지 존치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적정 인원의 사법시험 존치는 과소인원 배정으로 독자적인 재정적 균형을 달성하지 못하는 일부 로스쿨들에게 학부로 돌아올 명분과 실리를 줌으로써 인위적인 과정을 거치거나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도 구조조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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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빈 기자 chb05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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