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기자/스포츠닷컴]
2014. 9. 15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세미나실에서는 국회의원 김장실 의원과 대한씨름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문회유산 등재 방안’에 관한 포럼회가 열렸다.
대한씨름협회 김학웅 연수원장은 “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 씨름은 한민족의 역사와 늘 함께 해왔고, 삼국시대 고구려 각저총 벽화만 보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씨름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성행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며 “ 신라의 장군들이 씨름을 하였다는 기록을 ‘삼국사기’에서 볼 수 있으며 우리릐 씨름을 벽제에서 일본으로 전파하였다는 기록은 한일 양국의 일반적인 학설이다.
이어 “‘고려사’에는 충혜왕이 소동들과 씨름을 하였다는 기록을 보아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씨름을 매우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씨름에 대한 기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2013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난중일기’에는 전쟁 중에도 밤이 깊을 때까지 씨름을 하게 했다는 기록들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며 ” 승자에게는 쌀을 포상으로 주어 격려하였다며, 이를 보아 군사훈련의 목적이라기보다는 고생하는 장병들의 노고를 풀어주고 사기앙양을 위해서 씨름을 하였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의 동향과 씨름의 과제’라는 주제발표에 나선 허건식 박사는 “국제사회에서 전통문화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무형문화유산으로까지 확산 되고 있고, 1982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세계문화정책회의’에서는 문화를 ‘사회와 사회집단을 특정짓는 뚜렷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정서적 특성의 총체’로 정의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서열적 접근을 지양하는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을 강조했다” 며 “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시도한 동 회의에서 ‘무형유산’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는데, 그로부터 7년 후인 1989년 제25차 유네스코 총회는 ‘전통문화 및 민속보호에 관한 권고’를 채택하고 무형유산 형태를 ‘언어 , 문학, 음악, 춤, 놀이, 신화, 의식, 관습, 수공예, 건축 및 여타의 예술’정의하며, 국제규범을 통해 처음으로 무형유산의 개념을 구체화 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나아가 1993년 제 142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는 한국의 적극적인 주도로 ‘인간문화재 제도’가 소개되기도 하였다”고 말했다.
우리정부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의 등재 건수를 늘리기에만 집중한 나머지 등재 이후의 보호방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지 못했다.
따라서 씨름은 준비단계에서부터 등재이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에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과정을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씨름은 보유자에 대한 규정이 없다.
문화유산의 씨름을 배우고 계승하는 자와 전승활동을 보조하는 지도자 등에게도 정부나 국가는 지원하는 등 씨름의 전승제도의 체계화가 필요하다.
둘째, 씨름에 대한 우리 국민의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보호 작업이 정부만의 의무가 아니고 모든 국민의 의무라는 인식을 갖기위해 대한씨름협회나 정부는 지속적인 홍보와 보급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씨름등재의 노력에는 씨름인, 체육인, 문화계, 문화재 행정가, 학자 등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씨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을 통해 누구나 씨름에 대한 정보의 접근성이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현재 씨름 등재를 위한 일정은 기존 등재 후보 종목이 있는 관계로 수년안에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양한 국가가 비슷한 문화유산을 공동등재하는 것은 유네스코의 권고사항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공동 등재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씨름이 세계에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