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33명이 백두산·고구려 동북 3성·간도 역사문화기행을 다녀오다

posted Aug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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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영산(靈山),  "백번에 두 번밖에 볼 수 없다"

<사진> 참가 문인들이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한국문협 윤유현 제공)

 


이번 행사는 한국문인협회 문인 33명이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우리 민족이 고구려를 중심으로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의 동북 3성과 간도를 둘러보면서 옛날 우리 기마민족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역사문화기행으로 추진되었다. "나의 집은 동북 쑹화강(松花江)에 있어요, 거기엔 산림, 탄광이 있고, 들판을 가득 메우는 콩과 수수가 있어요.."라는 가사로 중국인이 즐겨 부르면서 갈망하는 동북 3성에 대한 묘사로 등장하는 우리 민족의 땅이었기에 더욱 감회가 깊었다.

지난 8월 14일, 한국문인협회 정종명 이사장을 비롯한 문인들이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중국 하얼빈국제공항에 도착한 다음, 8월 15일 하얼빈역사에 마련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의 발자취를 직접 볼 수 있는 감회에 젖기도 했다. 전시관에는 많은 유작들이 걸려 있었고 기념관에 걸린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하는 나라사랑을 느끼게 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라며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또 하나의 역사현장 하얼빈 731부대를 찾아갔다. 일본 731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세균무기 개발을 위해 잔혹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천인공노할 악명 높은 곳에서 지금 보관 중인 자료를 보면서 "어째, 이럴 수가 있는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잔학상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8월 15일, 하얼빈역에서 밤차로 거의 12시간이나 걸려 8월 16일 새벽에 연길역에 도착하니 우리말 간판이 우리 문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서 버스로 1시간 달려서 조·중국경도시 도문에 도착했다. 도문은 중국과 북한의 통관지역으로서 국경이 바로 두만강이다. 강이라고 하기보다는 5∼6미터에 불과한 개천 같은 곳이다. 버스로 1시간 반 이동하여 용정으로 가면서 일송정이 서있던 산을 바라보며 '선구자'의 노래를 합창하면서 윤동주 선생이 태어나 중학교에 다녔던 생가를 둘러보고 뜰과 집안에 들려 있는 윤동주의 시(詩)도 감상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윤동주 선생의 '서시'가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어인 일인고…. 대성중학교에 설치된 윤동주기념관과 시비(詩碑). 그리고 용두레우물도 둘러봤다. 다시 버스로 4시간이나 달려 이도백하로 이동해서 장백산 대하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초청연사로 양왕용 부산대 명예교수의 "윤동주의 신앙 형성과 시인의 길"이라는 문학특강에 이어 문인 33명 모두가 참여하는 작품낭송회가 개최되어 3시간에 걸친 윤동주 시인의 나라사랑을 기리는 '문학의 밤'이 역사문화기행 참석문인들에게 나라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백두산은 영산(靈山)이라 부를 정도로 변화무상해서 "백번에 두 번밖에 볼 수 없다"고 백두산이란 말이 붙었을 정도로 온전하게 보기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전날 밤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씨가 8월 17일 아침은 쾌청했다. 6시 반, 도시락을 버스에 싣고 북파산문으로 달려갔더니 인산인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재치 넘치는 가이드 덕분에 남들보다 빠르게 백두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버스로 달려가서 봉고차로 갈아타고 깎아지른 민둥산에 매달리듯 아슬아슬하게 달려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 길 낭떠러지 같았지만 손 쌀같이 내달리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아찔한 곡예로 20여분 올라가니 백두산 정상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토록 걱정했던 날씨마저 청명해서 상쾌한 기분으로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면서 사진도 찍고 다시 장백폭포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문인들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한 중이라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버스로 6시간 달려 통화에 도착해서 동방가일호텔에서 하루의 지친피로를 풀 수 있었다.

8월 18일 6시 반부터 광개토대왕이 남긴 유물 등 선조들의 유적지가 있는 집안을 향해 2시간 달려가서 주인 없는 돌무덤처럼 표지석도 없이 나뒹구는 광개토대왕릉은 물론이고 일본인에 의해 훼손된 채로 중국 공안이 지키고 있는 광개토대왕비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부도 국민도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는 울분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지만, 중국은 동북공정에 따라 '고구려 역사지우기'에 혈안이 되고 있는데도 정부도 국민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런 항의도 못하고 그냥 돌아서야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장차 이 일을 어찌해야할꼬? 다시 버스로 5시간 걸려 심양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우리말 간판'이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8월 19일 8시, 5시간 걸쳐 여순으로 이동 중에 고구려 비사성을 조망하면서 안중근 의사가 처형당한 항일유적지 여순감옥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확인하면서 관동법원, 관동군사령부도 둘러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대련국제공항을 거쳐 오후 10시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본 포럼(상임의장 최진호, 한림원 종신회원)은 "이번 백두산과 동북 3성 역사문화기행을 추진한 한국문인협회 정종명 이사장께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역사의 수레바퀴 따라 남북통일이 되면 다시 우리의 옛 땅 고구려의 동북 3성을 반드시 찾을 것이라는 기대에 젖어야만 했던 우리 문인들이 잃어버린 우리 땅 고구려 역사문화기행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고 전했다. 
/ 문학과학통섭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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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표 기자 su1359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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